1981년 9월 30일 고(故)사마란치(Samaranch) IOC 위원장의 입을 한국인들은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단상에 올라 맑은 스페인어 어조로 쎄울(Seúl)을 발음했을 때, 조금 과장하여 표현하면 한반도는 흔들렸다. 전 국민은 환호했고 언론은 하루 종일 서울이 올림픽 개최지가 된 것을 찬양했다. 어렸을 때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 법인지 아직도 내 머리 속에는 14, 2, 1이 각인되어있다. 대한민국은 근대 올림픽을 개최한 열네 번째 국가가 되었으며, 아시아에서는 두 번째 국가, 개발도상국가에서는 첫 번째 국가로 기록되었다. 시험에 나오지 않는 것인데도 이 숫자는 외워야 할 것 같은 마음이었다. 우리의 서울을 외국에서는 ‘쎄울’로 발음한다는 것도 이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이름도 독특한 독일의 작은 도시 바덴바덴(Baden-Baden)은 한국인에게는 올림픽 성지가 되었다. ‘온천’이라는 뜻의 ‘Baden’이 두 번이나 반복되는 것을 보며 얼마나 온천이 많아서 그럴까를 상상했던 기억이 새롭다. 황제들이 휴양을 즐겼다는 이 도시에 내가 처음 방문한 해는 1997년. 큰 기업을 운영하는 독일인 친구가 바덴바덴 근처의 아헤른(Achern)이라는 마을에 살아서 그 후로도 독일에 갈 때마다 ‘온천온천’시에서 온천을 즐겼다.
 
  로마 역사상 네로 황제와 더불어 최악의 폭군으로 일컬어지는 카라칼라 황제는 포도주와 온천에 탐닉했던 사람이었는데, 그의 이름을 딴 카라칼라 온천(Caracalla Therme)이 바덴바덴에 있다는 사실이 참 재미있다. 폭군이 향락을 위해 건설했던 시설이 바로 이곳이라는 느낌이 팍팍 올 정도로 근사하고 그럴듯한 시설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독일에서의 사우나는 한국과는 달리 몸을 감쌀 수 있는 큰 수건을 가지고 들어가야 하는데 남녀가 같이 입장한다는 것이 나로서는 문화적 충격이었다. 하물며 근처에 있는 프리드리히스 바트(Friedrichsbad)는 남녀가 알몸으로 이용하는 혼탕(混湯)으로 탕 안의 분위기에 적응하느라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지금이야 전혀 그렇지 않지만 맨 처음 갔을 때는 예술과 외설, 휴양과 향락, 문화와 도덕의 경계에서 내 정신작용은 규정할 수 없는 호르몬을 활발하게 온 몸의 세포로 전달하라는 명령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내가 가르치는 무역경영론과 협상론에는 ‘문화’라는 것이 중요한 키워드이지만 문화라는 말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덴바덴이 그 예이다.
 
  바덴바덴에 온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이 도시에서 오전에 예술을 즐기고, 오후에 나른한 몸을 온천에서 쉬게 하고, 저녁에는 고품격 도박을 한다고 한다. 주립 미술관과 프리더 부르다 미술관(Sammlung Frieder Burda)은 가치 높은 소장품으로 알아주고, 드레스 코드가 맞지 않으면 입장이 거부되는 쿠어하우스(Kurhaus)는 독일에서 가장 크고 역사가 오래된 카지노이다. 각종 공연과 무료 음료수 서비스를 제공하는 화려한 라스베가스 카지노에 비해 쿠어하우스는 엄숙하기까지 하다. 똑같이 돈을 잃고 따는 카지노인데 여기서는 도박의 행위마저 숭고해 보인다. 운동화를 신고 들어가면서 미안해지는 마음은 뭔지.
 

  휴양의 모든 것을 가진 도시, 하지만 휴양에도 격이 있음을 보여주는 도시 바덴바덴. 유럽인들은 이곳에서 평균 2주를 쉬다가 간다는데 나는 왜 매번 하루 이틀 만에 떠나야 하는지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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