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김현승 시문학상 수상작 발표

 

 

  본교는 지난 9월 4일(월)부터 15일(금)까지 김현승 시문학상을 공모했다. 김현승 시문학상은 평양 숭실의 학사 출신이자 서울 숭실의 문리대 교수였던 김현승 시인의 유족들이 그의 문학정신과 민족의식을 기리고자 만든 상이다. 이번 김현승 시문학상은 본교 국어국문학과와 문예창작학과가 주관해 개최됐다. 주제는 자유 주제였으며, 심사는 △광주대 문예창작과 이은봉 교수 △숭의여대 미디어문예창작과 강형철 교수 △본교 국어국문학과 엄경희 교수가 진행했다. 당선작 1명에는 상장과 150만 원, 가작 2명에게는 각각 상장과 70만 원의 장학금을 지원했다.
 
  김현승 시문학상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세 번째로 개최됐다. 전국 대학의 학부생 및 대학원생 118명이 참여했으며, 그중 3명의 작품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당선작으로 본교 불어불문학과 3학년인 장경동 군의 <어제>가 뽑혔다. 또 가작에는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4학년 재학 중인 최재영 군의 <동거인>과 한남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과 1학년인 박준수 군의 <튀어 오르다; 썩다>가 선정됐다.
 
 

 당선작

어제
 
 장경동(숭실대·불어불문)
 
올라야할 계단이 많아졌다
맨 꼭대기에서 산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아니
 
나는 이곳이 너무 싫어
어제는 오래된 도서관 맨 끝 책장에 박힌
20년 된 문학서적에 핀 먼지를 생각했다
고딕체로 누워 있는 시간
수중엔 돈이 없고
나는 눈을 감지 않기로 했다
 
하늘이 밀물처럼 몰려와서 아침을 자꾸 까먹고
구름들이 젖은 휴지마냥 축축했다
숨 쉴 때마다 유통기한이 오래 지난 우유 맛이 나
계단으로 달빛이 소나기처럼 달려들었다
 
어제 살던 고양이가 허물어진 담벼락에서
몸에 새겨진 냄새를 혀로 마구 긁었다
고개 숙인 가로등 때문에 뒤통수가 아렸다
 
미끄럼틀 타는 게 좋아
그곳에선 누구든 미끄러지고
 
나는 한참 동안 창문을 만지작거렸다
눈은 감은 적도 없는데
그 동안 반쯤 잘려나간 시간이 추락했다
안 되겠다
나와 바깥 사이의 시간을 재활용해야지
올라야할 계단이 더 많아졌고
 
생각해보니 어제 투성이다
 
그 사이
추락하는 어제가 자꾸 생겨나기 시작했다
 
 
  수상소감
 
  문학을 계속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차에 상을 받게 되어서 ‘그래도 시를 계속 써야겠다, 그래도 문학으로 밥은 먹고 살 수 있겠구나’하는 용기를 받았어요. 감사합니다.
 
 
 
  가작
동거인
 
 최재영(서울대·국어국문)
 
인천 남동구 구월동 농산물도매시장 100번집을 향해 아버지가 고추를 팔러 나간다 그 옆 구월동 로데오거리란 곳으로 나도 출근한다 아버지는 개구멍을 빠져나가는 모양으로 모기장을 탈출하고 고추박스들을 1986년형 기아 베스타에 담고 다시 내 손을 잡고 기도하고 나니 이제야 나가시나 보다 하고 나도 꿈뻑꿈뻑 눌린 머리를 정리하며 거리로 나가자 탈출이다 원심력은 구심력을 찢음으로써 가능하다는 진리는 계속 유효할 것이라고 다짐하며 서너 번 뺀지를 먹고 소주도 먹고 하다 보니 또 새삼스레 오늘도 기어코 해가 뜨긴 뜨는구나 늦은 오후 빈 지갑으로 퇴근하는 길에 보니 아파트 뒤 베스타가 이제야 탈탈 거리며 선다 게으른 귀환이다 나의 칼 같은 복귀 부엌에 선 채 두부가 들어간 김치찌개에 밥을 만다 대여섯 숟갈로 해치우고 얼른 모기장 안으로 은폐엄폐한다 일격필살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때 가지고 나갔던 고추박스를 다시 가져온 아버지가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더니 금세 다시 들어와 옆에 눕는다 김치 쪼가리와 밥알을 몰래 삼킬 수 있는 나는 이 정도면 복화술을 해도 꽤 잘하겠다 싶은 마음으로 실눈을 살짝 떠보는데 내 입냄새인지 아버지 입냄새인지 모를 김치 냄새 너머 글쎄 아버지 이빨에 고춧가루들이 껴 있어서 그저 내 이빨을 핥고서는
 
 
  수상소감
 
  시를 읽기도 쓰기도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러한 시대 속에서도 이런 자리를 만들어 주신 분들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가작
 
튀어 오르다; 썩다
 
 박준수(한남대·국어국문창작)
 
냉장고 안에는 썩어야할 것들로 가득하다 마늘을 두른 비닐 위에 찍힌 손바닥, 들어가 나오지 못한 손들이 벽을 긴다 꽃들이 기었다 수많은 냄새가 눈을 찌른다 냄새는, 그래 냄새는 방아쇠다 냉장고에 들어가지 못하고 침대 위에서 침전하는 나를, 몸을 기어 다니는 우울 함의 수법이 터져 나오게 한다 이제 나는 침대를 벗어나 씻으러 들어간다 내 얼굴에 붙어있던 누군가를 욕하던 침과 손가락과 발가락 틈에서 솟는 새살을 씻어낸다
나는 끊임없이 떨어질 테다 구태여 설명 못할 생의 신비를 떨쳐내고 구더기와 곰팡이의 나라로 갈 테다 썩는다는 것은 끝없는 추락이다 떨어지고 떨어지다 바닥에 닿으면 나는 조금이나마 뛰어 오를테지
나는 헐벗은 몸으로 방을 나간다 복도에는 축축한 형광등뿐이니, 나를 밀고 있는 냄새들아 멈추지 마라 썩지 못한 이의 마지막이다 멈춰 살았던 자의 걸음에서는 깊은 숨이 배여 있다
복도의 끝에서 나는 뛰어 내린다 떨어지며 만나는 모든 이들의 얼굴에 침을 뱉자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바닥에 닿아 내 몸을 터뜨릴 것이다 그렇게 나는 썩어갈 것이다
 
 
수상소감
 
  국어국문창작학과에 진학하고 난 후부터 부모님께 잔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글 쓰는 것이 좋아서 계속 써왔는데, 이 상이 저에겐 부모님을 설득시킬 수 있는 하나의 동기가 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심사평
 
  제3회 김현승 시문학상에는 각 대학의 학생 118명이 응모하였으며 그 응모 편수는 무려 610여 편에 달하였다. 심사위원들은 김현승 시인의 시 정신을 염두에 두면서 특히 ‘모국어’에 대한 섬세한 애정을 담은 시편들에 주목하였으며, 아울러 삶에 대한 진지한 고뇌와 생각의 깊이를 담은 시편에 관심을 기울이며 심사를 진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지나치게 시류를 따라 흉내내기에 열중하거나 문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채 거친 실험적 형태를 보인 시편에 대해서는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보다 창의적 실험을 위해서는 모국어에 대한 깊은 성찰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기본 입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심사 과정을 거쳐 장경동(숭실대학교 불어불문학과·3학년)의 「어제」가 당선작으로 선정되었으며, 최재영(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4학년)의 「동거인」, 박준수(한남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과·1학년)의 「튀어 오르다; 썩다」가 각각 가작으로 선정되었다. 이들의 시적 열정이 앞으로 더 큰 문학의 장에서 꽃피우길 기대한다. 당선작이나 가작으로 선정되지 않았지만 김유희(강원대학교), 조주안(경희대학교), 이윤정(추계예술대학교), 박서령(단국대학교), 정승민(숭실대학교), 조찬연(남서울대학교)의 시편들도 심사위원들의 관심을 끌면서 아쉬움을 남겼던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시에 대한 사랑으로 응모에 참여했던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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