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성들의 인권 신장 운동이 눈에 띤다. 당장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페미니즘 관련 용어들이 이를 예증한다. 반면 여성들의 인권이 낮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페미니즘을 반대하는 이들도 볼 수 있다. 본 기자는 이들의 이견 중 어느 한쪽이 옳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과연 상호 간 온전한 이해가 이루어진 채로 다툼이 진행되고 있는가? 긍정하기 쉽지 않지만 어떤 갈등이 일어나건 염두에 두어야 하는 질문이다. 이해가 없으면 혐오로 이어지고, 혐오로 이어진다면 진전 없이 상처만을 남기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성 간 다툼’을 보자면 양 측 모두 귀를 막는 것에 더 적극적인 것처럼 보인다. 서로가 본인의 피해에 우선적으로 관심을 두고 상대방의 가해 동기에 대해서는 크게 주목하지 않는 것이다. 이에 상호 간 남는 것은 상처와 청자 없는 욕설 뿐, 아직까지 눈에 띄는 진전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욕설 아닌 이해다. 서로에게 갖는 감정의 불씨는 죽이자. 피해를 외치는 이가 있다면 다가가 그 피해가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 알고 감싸야 한다. 동시에 가해한 사실이 있다면 그 가해가 어떤 가해였는지, 가해자의 동기는 무엇이었는지 알아야 한다. 모름지기 가해자의 동기가 항상 악하지만은 않다는 점에서, 그의 동기를 알고 그것을 사전에 예방해야 추가 피해를 막을 수 있단 점에서 그렇다.

  그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페미니즘 운동에 주목해야 한다. 그들이 피해 사실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연민으로 다가가야 하며, 운동의 규모가 점차 증가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합리성을 확보한다고 보아야 한다. 마치 바닥을 치는 노동자의 인권이 노조 파업 등의 노동 운동으로 이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는 여태껏 노동 구조에 의해 발생한 피해자에 대해 주목하고 그들의 슬픔에 공감하지 않았던가? 여성 운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그들이 부르짖는 아픔에 먼저 다가서야 한다. 덧붙여 여성 운동에 반대하는 이들 역시 그들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지 고려해야 할 것이다.

  마땅한 논리도 없이 자기 주장이 옳다며 상대방의 이야기를 무시하는 이를 우리 사회에서는 종종 ‘꼰대’라고 부른다. 당신은 눈 앞에 울며 욕설을 내뱉는 자가 있다면 두 귀를 막고 꼰대가 될 텐가?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