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이 대학가에 남긴 것들
페미니즘이 대학가에 남긴 것들
  • 조연우 기자
  • 승인 2017.11.20 20:50
  • 호수 1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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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대학가에서는 페미니즘과 관련된 동아리나 소모임, 그리고 학회 등의 자치 조직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스펙 쌓기와 취업 경쟁에 휩쓸려 각종 교내 단체가 회원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에 비하면 이례적인 경우다. 성균관대학교 여성주의 교지 ‘나은’의 한 회원은 “개별 학과에 속하지 않은 큰 페미니즘 소모임이 두 개 있는데, 모임원도 열 명에서 스무 명으로 많은 편”이라며 “다른 학회들은 하락세를 보이는 반면 페미니즘 모임은 인기 상태”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페미니스트들은 “2015년도부터 계속되고 있는 페미니즘 리부트 현상의 일종이다”라고 해석하고 있다.

  2017년 현재, 페미니즘 리부트(Feminism Reboot)

  지난 2015년도 이후 페미니즘 흐름의 별칭은 ‘페미니즘 리부트’다. 리부트는 시리즈 작품에서 시리즈의 연속성을 배제하고, 등장인물과 주요 골격만 차용하여 새로운 시리즈를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손희정 대중문화연구가는 “지난 2015년도에 트위터 해시태그 운동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이후 온라인을 중심으로 전개된 페미니즘 운동의 흐름을 ‘페미니즘 리부트’로 정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자신의 SNS에 “나는 페미니스트가 싫기 때문에 ISIS(이라크 시리아 이슬람국가)를 좋아한다”며 수니파 원리주의 무장단체인 IS에 가입한 김 군 사건과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해요’라고 주장한 칼럼니스트 김태훈의 칼럼이 페미니즘 리부트에 큰 영향을 미쳤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전에는 ‘영 페미니스트(Young Feminist)’가 있었다. 영 페미니스트는 1990년대 중반에 등장해 2000년대까지 대학 반(反)성폭력 운동을 주도한 페미니스트들을 가리킨다. 영 페미니스트 이전에 활동한 기존 페미니스트들이 법적인 활동에 집중한 것에 비해 영 페미니스트의 활동은 비교적 급진적인 운동으로 회자된다. 영 페미니스트의 활동은 PC 통신이 보급되며 온라인으로 빠르게 확산되었고, 이때의 활동이 현재의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의 주축인 ‘넷 페미니스트(Net Feminist)’의 기반이 된다.

  넷 페미니스트는 메갈리아를 기점으로 생겨난 여성주의 사이트, 트위터 등의 SNS에서 활동하는 젊은 페미니스트 세대를 가리킨다. 메갈리아는 여성 혐오적 발언의 주어를 남성으로 바꾸어 여성 혐오의 심각성을 고발하는 미러링 기법을 차용해 한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커뮤니티 사이트이다. ‘새로운 방식의 여성운동’이자 ‘신선한 자극’이라는 순기능과 동시에 ‘혐오 재생산’, ‘성별 대립의 격화’라는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된다. 이후 메갈리아는 소수자 혐오에 대한 갈등 등으로 페이스북 페이지 메갈리아4, 워마드 등으로 분화되고, 이후 사이트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트위터의 경우 2011년도 한진중공업 투쟁과 2012년도 ‘나는 꼼수다’ 비키니 사건 등을 겪으며 꾸준히 페미니즘 담론의 장이 되어왔으며,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에도 여성 혐오 공론화 및 논의의 공간으로서 꾸준히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에서 페미니즘이 보편화되는데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은 지난해 발생했던 강남역 살인사건이다. 메갈리아가 여성에 대한 한국 사회의 폭력성을 일깨우는 데 일조했다면, 강남역 살인사건은 여성에게 ‘단순히 여성이기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심어준 사건이다. 여성주의 단체 ‘강남역 10번 출구(현 페미몬스터즈)’의 안현진 씨는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스트가 대중적인 이름이 된 것이 처음인 것 같다”고 말했다. ‘페미니스트’, ‘페미니즘’, ‘여성 혐오(Misogyny)’는 이전에도 존재하는 개념이었으나,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잘 알지 못하는 어휘였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다양한 여성운동이 전개되었고, 젊고 새로운 페미니스트가 다수 탄생했다. 강남역 살인사건 1주기 추모제의 슬로건 ‘우리의 두려움은 용기가 되어 돌아왔다’는 이러한 페미니스트 진영의 현재를 잘 반영하고 있다.
 

  넷 페미니스트, 대학가로 스며들다

  ‘넷 페미니스트’가 활동하는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를 맞으면서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은 대학가다. 지난 3월에는 12개 대학의 단체 및 학생들이 연대한 ‘펭귄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펭귄 프로젝트는 인권 네트워크인 ’사람들‘사람들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로, 대학 내에서 여성 및 소수자가 겪는 불편과 불평등을 이야기하고 용기와 연대로 변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시작되었다. 펭귄 프로젝트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페미니즘 관련 물품을 판매하고, 대학 여성주의 단체를 중심으로 페미니즘 세미나와 캠프를 개최했다. 또한, 지난 3월 30일(목) 신촌에서 ‘평등한 대학을 위한 3.30 펭귄들의 반란’ 행사를 열어 성폭력 관련 경험을 나누고, 평등한 대학을 만들기 위한 선언문을 발표했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포스트잇 액션’도 벌어지고 있다. 포스트잇은 강남역 살인사건 당시 강남역 10번 출구 벽이 추모 메시지를 전하는 포스트잇으로 메워지며 여성 운동에서 상징적인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본래 ‘포스트잇 액션’은 지난해 9월 한국여성민우회(이하 민우회)가 주도한 프로젝트의 이름이다. 한국여성민우회는 ‘고조선이야, 뭐야~’, ‘안 웃겨요’ ‘반말하지 마세요’ 등의 포스트잇을 통해 일상적으로 여성이 겪어온 성차별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민우회는 ‘신봉선을 아이유로 만들어주는 통기타 레슨’이라고 쓰인 전단에 ‘안 웃겨요’ 포스트잇을, ‘다리는 여자의 자존심’이라는 카피 문구에는 ‘왜 때문이죠’ 포스트잇을 부착했다. 

  이후 여성 전용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중ㆍ고등학교 및 대학가 교실, 강의실, 화장실 등에 ‘실천하는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포스트잇 액션이 전개되었다. 한 커뮤니티에서 제안된 포스트잇 액션이 타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퍼진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은 ‘82년생 김지영’,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등의 페미니즘 도서 인용구나 ‘왜 여성 개인의 잘못은 여성 집단의 특성으로 확장되고 여성 집단의 경험은 여성 개인의 경험으로 축소될까요?’ 등의 여성 인권 관련 문구를 포스트잇에 써넣어 각자의 일상적 공간에 붙였다. 

  한편 이에 대한 반발도 크다. 대자보와 여성주의 교지를 찢거나 버리는 행위는 물론, 드러나게 페미니즘 활동을 하는 학생은 교내 익명 커뮤니티나 남성 중심 커뮤니티에서 신상 정보가 공개되기도 한다. 고려대학교 지리교육과 여성주의 소모임 ‘난파’의 한 구성원은 교내 구성원들로부터 배척당하고, 일간베스트 등에 신상 정보가 공개되었던 경험에 대해 “처음에는 너무 무서워서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이처럼 여성운동이 보편화되며 여성운동이 반발에 부딪히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어 페미니스트들의 피로도 큰 상태다. 이에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의 저자 리베카 솔닛은 “반발이 나온다는 것은 페미니즘이 힘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수천 년간 계속되어온 성차별의 문제를 짧은 시간 안에 완벽하게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좌절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대학가를 물들인 페미니즘, 대학 측의 노력은?

  대학가의 학생들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나, 대학 내의 노력은 부족한 상태다. 대표적으로 최근 총여학생회(이하 총여)가 사라지는 추세고, 지난해를 기준으로 총여가 실질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서울권 대학은 경희대학교와 연세대학교로 두 곳에 불과했다. 본교의 경우에도 지난해 총여 회장 후보가 출마하지 않아 결국 총여가 폐지되었다. 이후 교내 인권 관련 자치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나, 운영비 지원이나 활동 방향이 불확실하다는 학생 대표들의 반대로 학생인권위원회의 설립이 무산된 바 있다. 

  본격적인 페미니즘 관련 교육도 찾아보기 힘들다.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이나영 교수는 이에 대해 한국의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학문 체계와 돈 안 되는 학문이 퇴출당하는 상황이 맞물렸다고 해석한다. 해외의 경우엔 모든 학문의 기저에 페미니즘이 존재하고 실제 많은 분야에 페미니스트 학자들이 포진해있으나, 국내에는 여성 교수의 숫자도 적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여성주의적인 시각을 가졌는지도 확신할 수 없다고 분석한다. 손동현 한국교양기초교육원장은 “젠더 교육이 교양 교육 틀에서 이루어져야 모든 학생이 올바른 성 관념을 가질 수 있고 자연히 성차별도 해소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어떤 사안들이 성차별과 연결되는지에 대한 학습과 교육, 이해가 필요하다”며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생물학적 여성에 대한 논의로 그치기 쉽다”고 말했다. 

  서양권 대학은 인문사회계열 필수 교양에 페미니즘 강의를 포함하고 있다. 또한, 이공계열 학생들도 ‘젠더와 테크놀로지’와 같은 필수 과목을 이수해야 한다. 국내의 경우 이화여자대학교가 여성주의를 대표학문으로 내세우고 있고, 서울대학교가 교양 수업에 여성주의 과목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중앙대학교 사회학과는 전공과목 중 다섯 과목이 페미니즘과 관련되어 있으며, 정치국제학과 학생들이 지난 5월부터 ‘젠더정치학’ 과목 개설을 요구해 내년 1학기부터 해당 과목이 개설될 예정이다.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정윤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페미니즘과 젠더에 대한 공부는 여성이라면 나를 포함해서, 남성이라면 내 주변의 여성들을 이해하는 데 폭넓은 시각을 제공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숭실대 조은별 전 총여 회장은 최근 통일 교육이 강조됨에 따라 교양 필수 과목에 통일 관련 과목이 늘어난 본교의 사례를 예시로 들어 대학 총장과 주요 보직자의 권한에 따라 대학 교육이 바뀔 수 있음을 지적했다. 또한 “정부에서 젠더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해 대학들의 교육 수준을 균일하게 했으면 좋겠다”며 “젠더 및 인권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계속 요구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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