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1 때 담임선생님은 여러 이유에서 매우 특별한 분이셨다. 선생님은 자신이 담임인 모든 학생의 생일에 책을 선물하셨는데, 책 안에는 선생님이 직접 쓰신 편지도 함께 들어 있었다.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공지영 소설가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와 박상우 소설가의 이상문학상 수상작 <내 마음의 옥탑방>이 담긴 ≪제2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선물로 받았다. 이후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책장에서 뿌연 먼지에 뒤덮여 있는 공지영 소설가와 해후할 수 있었다.
 
  이 소설에는 대학을 졸업한 후 미래의 꿈과 희망에 부풀어 있는 세 여성이 나온다. 그러나 이들은 결혼하고 나서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갈등하고 상처받는 인생을 산다. 이를 통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억압, 차별, 불평등, 결혼 등을 여성의 시각에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남편과 자식에게 당신의 인생을 다 내어준 희생자인 엄마의 인생에 대해서도 조용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지금이야 여권이 신장되고 남녀평등 지수도 높아져 차별이나 불평등 같은 문제가 과거에 비해 크게 줄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성차별을 표상하거나 남성 중심 가치관을 담고 있는 단어와 표현이 사회에 통용되고 우리 입에도 오르내리곤 한다. 
 
  예컨대, ‘미혼모’는 일상어처럼 익숙하고 사용 빈도도 높지만 여기에 대응하는 ‘미혼부’는 생경하고 사용 빈도도 훨씬 낮은 것 같다. 경력이 단절된 여성을 뜻하는 ‘경단녀’는 여성이 직장을 작파하고 육아와 가사를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담겨 있는 불편한 표현이다. 이에 반해 ‘경단남’은 종이 사전에도 인간의 머릿속 사전에도 존재하지 않는 우연한 빈칸이다. 
 
  소설 제목은 마치 작가 자신이 이 시대의 여성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을 담고 있는 듯하다. 작가는 “누구도 너를 욕실 앞의 발판처럼 밟고 가게 내버려 두지 마라”, “온 힘을 다해 행복해져라”라고 말한다. 억압당하고 상처받고 꿈을 포기한 채 살아가는 이 시대의 여성들에게 홀로서기를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자기를 가꾸고 사랑하는 행복한 삶을 살라고 주문한다. 그 삶이란 의미와 희망으로 가득 찬 삶, 당당하고 독립적인 삶을 뜻하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는 길이 꼭 외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인생의 어느 순간에 평생 함께하고픈 생각이 드는 상대와 만나 결혼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10대, 20대에 이성과 교제하는 것 역시 결혼 생활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 배우자를 선택하는 연습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성 교제를 하면서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과 잘 맞는지, 어떤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즐겁고 행복한지, 이성을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지를 경험적으로 학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들처럼 결혼 생활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 결혼 전에 다양한 사람과 만나 보고 나에게 딱 맞는 배우자를 골라야 하는 게 아닐까. 확률적으로 이성 교제를 많이 하면 결혼에 실패할 확률도 줄어드는 게 아닐까.
 
  심심파적으로 읽을 만한 재미있는 부류의 소설은 아니지만, 읽는 내내 별별 생각이 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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