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로 영화를 만들어 상영한 사람은 형제인 루이 뤼미에르와 오귀스트 뤼미에르였다. ‘사람은 이름대로 간다’는 말은 맞는 것인지 뤼미에르(lumière)는 불어로 ‘빛’이라는 뜻이다. 영화를 필름에 투영되는 빛의 양으로 특정한 모습과 동작을 연속적으로 담아낸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그들은 정말 이름에 걸 맞는 일을 한 것이다. 선택적 지각오류(selective perception)겠지만 이름에 관(官)자나 성(星)자가 들어있는 고위 공무원이나 장군(將軍)을 보고 그들이 이름값을 했다고 느끼는 상황과 흡사하다. 그러나 우연의 일치도 이런 우연의 일치가 없다. 중요한 것은 ‘뤼미에르’의 이름을 딴 이 도시의 극장에서 매년 기라성(綺羅星)같은 배우들이 영화 축제를 벌인다는 것이다. 올 해로 70주년을 맞은 깐느 영화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겐 영화가 도시의 브랜드인 프랑스 꼬뜨 다쥐르 지방의 깐느(Cannes)에 도착했다.  
 
  샤갈과 마티스가 여생을 보낸 휴양도시라고 하지만 이미 모나코와 니스를 거쳐 이 도시에 들어와서인지 ‘휴양’이라는 말보다는 ‘영화’라는 말이 나에게는 더 실감나는 주제였다. 깐느 영화제에 출품된 작품 중 최고의 작품에 수여하는 ‘황금종려상’이 왜 열대성 식물인 종려나무에서 모티브를 찾았는지 이해가 될 정도로 남국(南國)의 풍미를 느낄 수 있는 훈훈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지만, 나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인공 줄리 앤드루스(Julie Andrews)의 핸드프린팅을 찾기 위해 뤼미에르 극장 주변을 헤매었다. 이것 역시 심리학적 편견이겠지만 찾고 싶은 것은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그래서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라는 속담이 만들어 진 듯하다. 다른 배우들의 것은 쉽게 보이는데 왜 현존하는 배우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녀의 손바닥은 눈에 선뜻 안 들어오는 것인지. 어렵사리 찾고 손을 핸드프린팅에 맞추며 좋아하는 난 아직 천진난만한 것 같다. 스스로를 천진난만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천진난만한 것은 아니지만.
 
  뤼미에르 극장 주변에서 긴 시간을 보내고 깐느의 영혼을 담고 있다는 슈발리에 언덕으로 갔다. 불어로 ‘Chevalier’는 영어로 ‘기사(Knight)’를 뜻하는 데, 우리나라에서도 레스토랑이나 의류 브랜드로 적잖이 귀에 익은 낱말이다. 불어를 사용하면 왠지 모르게 ‘고품격 무언가’를 상상하게 되는데 이곳 깐느에서 언어 사이에도 ‘권력’이 있음을 다시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은 이미 없어졌지만 강남 논현동에도 뤼미에르 극장이 있었던 걸까. 이 도시에 있는 뤼미에르 극장이 뜬금없이 서울에도 있었다니 촌스럽기 그지없다. 영혼 없는 한국의 불어 간판을 슈발리에 언덕을 오르면서 생각하고 있다니 왠지 슬프다. 언덕을 오르며 만나게 되는 넓고 좁은 계단만이 이곳에 있는 것들이 복제품이 아닌 진품임을 말한다. 
 
  영화를 잘 모르는 사람도, 딱히 좋아하는 배우가 없는 사람도 깐느에 오면 기분이 좋아지는데, 그것은 영화제 기간이 아니더라도 일 년 내내 레드 카펫이 깔려있는 뤼미에르 극장의 화려함과 언젠가 나도 레드 카펫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꿈을 이 도시가 갖고 있기 때문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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