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대, “대학 경영권은 어디로?”

 

 

  일부 사립대학교에서 여전히 적립금을 축적하는 관행을 일삼는 것으로 드러났다. 적립금은 대학이 앞으로 진행할 특정 사업에 투자하려는 목적으로 누적하는 금액이다. 지난해 전국 사립대 144개교의 누적적립금 총액은 8조82억 원으로 2015학년도보다 653억 원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사립대 144개교 중 18개교가 1000억 원 이상의 누적적립금을 보유 중이며 이 대학들의 누적적립금 총액은 4조 7967억 원에 달했다(표 참고). 가장 많은 적립금을 누적한 대학은 7천429억 원을 보유한 홍익대였다. 이어 △이화여대: 6천736억 원 △연세대: 5천307억 원 △고려대: 3천568억 원 △수원대: 3천510억 원이 뒤를 이었다. 즉, 일부 대학이 대규모의 적립금을 축적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해당 대학들의 적립금 재원을 분석한 결과 상당 금액이 출처를 확인하기 어려운 기타재원이기도 해서 적립금이 어떠한 수입으로 누적되고 있는지 불분명한 상황이다.


  교육부는 대학이 거대한 규모의 적립금을 축적하고도 등록금을 계속 인상한다는 비난이 빗발치자 지난 2011학년도에 사립학교법을 개정해 학생들의 등록금을 적립금으로 누적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로써 대학 적립금은 교육부에 지침에 따라 △기존 적립금에 따른 이자 수입 △기부금 수입 △건물 등의 감가상각비에 따른 수입 등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일부 대학들은 여전히 등록금으로 건물이나 설비 등에 대한 감가상각비(건물이나 설비가 노후했을 때 수리하는 데 사용되는 금액)를 지출했고, 이를 통해 수입을 얻어 적립금을 누적했다. 이는 대학이 적립금을 감가상각비에 따른 수입으로 누적할 수 있고, 건물 등에 대한 감가상각비는 비등록금회계뿐만 아니라 등록금회계로도 지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교육연구소 임은희 연구원은 “등록금으로 적립금을 누적하지 못하지만 교육부가 건물의 감가상각비만큼은 적립금으로 누적할 수 있게 해주면서 대학이 등록금으로 적립금을 축적하는 관행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학생들, “복지나 교육에 더 투자해야”
  많은 학생들은 무분별하게 적립금을 누적하는 대학들을 상대로 학생 복지나 교육에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이화여대의 일부 학생들은 지난 2014학년도부터 페이스북에 ‘돈만 쌓는 학교에 맞선 이화여대 학생들의 도전’ 페이지를 개설해 학교가 적립금을 누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론화했다. 이들은 지난해에 ‘학교의 상업화? 그리고 쌓아놓은 적립금!’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진행해 “학교 당국은 7천억 원에 달하는 적립금을 쌓아뒀지만 학생들을 위해 돈을 쓰지 않고 상업시설을 늘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지난 9월 20일(수)에 이화여대에서 열린 ‘총장과의 공개면담’에서 일부 학생들은 “적립금이 과도하게 누적됐으나 학교는 학생들을 위해 적립금을 사용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에 이화여대 류한영 재무처장은 “적립금을 쌓기 위해서 학생들의 등록금을 사용하는 경우는 없다”며 “현재 적립금 중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은 약 30억 원으로 정해져 있고, 이 이상을 사용하려면 구성원들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해명했다.


 홍익대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0월, 홍익대 총학생회는 ‘누적적립금 사용 및 등록금심의위원회 합의문 이행 촉구 투쟁 결의문’을 학교에 제출했다. 이 결의문을 통해 총학생회는 “학생들의 교육에 쓰여야 할 돈을 매년 적립해서 지금 같은 적립금 규모를 만들었다”며 “전국 1위의 적립금을 축적한 홍익대는 적립금을 학생 공간이 부족한 문제를 해결해야함에도 학교 측은 개선하려는 의지가 없다”고 비판했다. 또한 2018학년도 홍익대 총학생회 선거운동본부 ‘HERE FOR YOU’는 등록금을 인하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고, 이 공약에 대해 “지금까지 쌓여온 본교의 누적적립금을 생각해본다면 현재 등록금 산출 방식은 결코 합당하지 않다”라는 근거를 내세우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임 연구원은 “대학은 학생들이 지불한 등록금만큼 교육서비스를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적립금으로 적절한 교육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립대, 적립금으로 ‘돈놀이’
  일각에서는 사립대가 적립금으로 실효성 없는 ‘돈놀이’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립학교법에 의하면 사립대는 학생들의 등록금 수입에서 비롯된 적립금을 제외하고, 적립금의 2분의 1 이하를 증권에 투자할 수 있다. 이에 일부 사립대가 적립금을 유가증권에 투자했지만 수익률이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사학진흥재단의 ‘2016학년도 회계연도 사립대학 및 전문대학 금융투자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적립금을 유가증권에 투자하고 있는 사립대 64개교의 총 투자액은 1조 4200억 원에 달했지만, 전체 수익률은 –0.1%였다. 또한 사립대 64개교 중 수익률이 0% 미만에 이르는 곳이 37개교였고, 100억 이상의 적립금을 유가증권에 투자한 29개교의 전체 수익률도 –0.77%에 머물렀다.


 정부가 적립금을 증권에 투자할 수 있게 법령을 마련한 것은 재정이 열악한 사립대의 자립적인 수익 창출을 도모할 수 있게 돕기 위함이다. 그러나 대학은 증권 투자에 수익을 창출하고 있지 못하고 오히려 손해를 보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자유한국당 김석기 의원은 “유가증권 투자는 수익창출을 보장할 수 없는 분야이기 때문에 사립대 재정이 오히려 손해를 보고 있다”며 “적립금의 유가증권 투자에 대해 각 대학은 신중히 검토하고, 적립금이 안정적으로 운용될 수 있도록 다른 방안을 마련해야”고 주장했다.

 


  “적립금 축적에 관여하면 안돼”
  대학들은 적립금 축적에 관여한다면 더 이상 대학 경영을 하기 힘들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최근 정부와 일부 시민단체가 대학 측에 △입학금 폐지 △등록금 인하 △대입 전형료 인하 등을 요구하면서 적립금 관리에까지 관여한다면 대학 경영의 자율권이 박탈당한다는 것이다. 서울 소재 ㄱ 사립대의 기획처 관계자는 “적립금에 관한 결정은 대학 경영진이 해야하는데 대학 속사정을 모르는 정부나 시민단체가 나서서 간섭하면 부작용만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국회의원은 과도하게 대학 경영을 간섭하는 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지난달 12일(목),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교육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자유한국당 한선교 의원은 교육부 이진석 대학실장을 향해 “등록금 동결하고, 입학금도 받지 말고, 적립금도 남기지 말라니요?”라며 질의했다. 이어 한 의원은 “대학이 입학금과 등록금 일부를 적립금으로 두는 이유는 추후에 투자할 사업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라며 “대학이 장기적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여유자금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적립금을 누적하는 것 이외에도 사립대가 예산을 합리적으로 편성하지 않고 이월금을 축적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월금은 예산을 편성 및 집행한 후 결산했을 때 해당연도에 사용하지 못하고 남은 금액으로, 그 금액이 많을수록 예산이 올바르게 편성 및 집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사학진흥재단의 전국 4년제 사립대 154개교의 결산자료에 따르면, 2016학년도에 사립대가 예산을 편성할 때 예상한 이월금은 867억 원이었다. 그러나 결산 결과 사용하지 않고 남긴 이월금은 7천62억 원으로, 애초에 편성했던 예산보다 6천195억 원을 덜 지출해 이월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기타이월 금액이 약 7천억 원으로, 이월금 중 해당 금액의 비율이 27.3%에 달했다. 기타이월은 불가피한 사유로 인해 이월하는 사고이월과 달리 학교가 편성한 예산에서 절감한 금액을 다음 해로 이월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유은혜 의원은 “사립대가 등록금 인상을 못해 재정이 어렵다고 주장하지만 이월금 규모와 예·결산 이월금 차이를 보면 이런 주장을 납득하기 어렵다”며 “교육부는 사립대가 예산을 과하게 부풀려 편성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고 선을 넘은 대학에 대해선 행정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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