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17.12.7 목 15:24
교양옛 발자취 따라 걷는 역사기행
장기려, 우리 곁에 머물다 간 성자
이상혁(문예창작 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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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호] 승인 2017.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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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술(醫術)은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기술이기에 ‘어진 기술’, 인술(仁術)이라고도 불린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인술(仁術)을 베푼 인물을 꼽아보라면 단연 장기려를 떠올리게 된다. 장기려는 한평생 아무런 욕심 없이 자신의 의술을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베풀었기에 ‘바보 의사’라는 별명으로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장기려는 1911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장운섭과 최윤경 사이에서 차남으로 출생했고, 1928년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외과 의사 백인제 박사의 수제자로서 수련했다. 이후 1940년에 나고야제국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평양연합기독병원에 외과 과장으로 부임한다. 장기려는 1947년 평양의과대학의 외과 교수로 지내던 중 6‧25 전쟁이 발발하자 자신의 차남 장가용과 함께 월남하고, 1951년 1월 부산 서구 암남동에서 오늘날 고신의료원의 전신이 되는 복음병원을 세운다. 당시 부산은 6·25전쟁 중 대한민국의 피난 수도이자 전쟁피난처의 끝이었기에 어딜 가던 지치고 병든 피난민으로 가득했는데, 장기려는 자신이 세운 복음병원에서 피난민과 가난한 이들을 위해 대가 없이 무료로 진료를 해주었다. 장기려는 1976년 6월까지 복음병원 원장으로 밤낮없이 직접 인술을 베풀었다. 복음병원 외에도 부산에는 장기려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의료시설이 많다.


   장기려는 일제강점기부터 의사로서는 최고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고, 해방 이후에는 최고의 기술을 가진 외과의로 인정받았기에, 북에서도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와 특권을 받을 수 있었다. 장기려는 북에서 제공하는 각종 혜택을 마다하고 월남했지만 월남 초기에는 북에서 우대받은 일을 문제 삼아 정보기관에 끌려가 억울하게 문초당한 일도 잦았다고 한다. 병들어 고통받아도 병원에 가서 치료받을 돈이 없어 병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어려운 이들을 위해 헌신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의심의 눈초리였다. 하지만 장기려는 그저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소신을 지킬 뿐 세상을 향해 원망을 품지 않았다. 장기려는 무료 진료로 사람들을 돌보는데 그치지 않고, 1968년 대한민국 최초의 사설 의료보험조합인 부산 청십자의료협동조합을 설립했고, 1976년에는 청십자의료원을 설립해 환자를 구제할 수 있는 활동을 계속해나갔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의 시선을 갖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돌보는 것, 그 이상의 일을 하기 위해 구체적인 시스템과 조직을 정비하여 많은 사람을 보다 효율적으로 돌볼 수 있게 한 것이다. 또한 장기려는 의사로서의 실력도 대단히 뛰어났다. 그는 1943년 우리나라 의사로는 최초로 간암 환자의 간암 덩어리를 간에서 떼어내는 수술에 성공했고, 1959년에는 간암 환자의 간을 70% 정도 절제하는 대량 절제술에도 성공했다. 이후에도 장기려는 간의 혈관과 미세구조 등에 대한 간 연구에 매진, 간 질환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보다 빠른 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수많은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장기려는 사회적·학문적 공적을 인정받아 1976년에 국민훈장동백장을, 1979년에는 막사이사이상을 받았고, 1995년 인도주의 실천 의사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장기려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청빈 그 자체인 삶을 살며 노년에 사택도 없이 고신대학교 복음병원의 옥탑방에서 기거했다. 그 와중에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자신에게 진료를 받고 싶어 하는 어려운 이가 있으면 직접 찾아가 진료해주길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장기려는 당뇨합병증으로 1995년 12월 25일 성탄절 85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이들을 위해 한평생 자신의 의술과 능력을 온전히 베풀다 살다간 장기려를 우리 곁에 머물다 간 성자(聖者)로 기억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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