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 성북구에 소재한 용문(龍文)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경기도 양평(楊平)에 있는 용문(龍門)고등학교와 구별하기 위해 누군가 출신 고등학교를 물어볼 때면 늘 ‘서울에 있는’ 용문고등학교를 나왔다고 말하곤 했다. 사람들은 이상하리만치 용문고등학교라고 하면 양평에 있는 용문고등학교를 먼저 떠올렸는데, 그건 아마 천년 고찰 용문사(龍門寺)와 해발 1,157미터의 고산(高山) 용문산(龍門山)이 워낙 유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용의 문을 뜻하는 이 절과 산의 입구에 천년의 생명력을 자랑하며 서있는 은행나무는 스토리텔링의 보고(寶庫)가 아닐 수 없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의상대사가 땅에 꽂은 지팡이에서 싹이 돋고 가지가 생겨 은행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일 것이다. 마의태자와 관련되었다는 설도 있고, 한국 전쟁 당시 폭격으로 주변의 나무와 사찰이 불탔을 때도 이 은행나무에는 불이 옮겨 붙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 많은 이야기들을 고려하면 양평의 ‘용문’이라는 브랜드에 정작 내가 졸업한 ‘용문’이라는 학교 이름이 묻혀버렸던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중요한 것은 평생을 한국 기독교 발전에 헌신하셨던 나의 아버지 정장근 목사님이 청소년 시절을 양평에서 보내셨고, 인생의 말년과 2015년 소천(召天)하실 때까지 이 도시에 계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물 맑고 공기 좋은 도시 양평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양평읍 양근리에서 5일마다 열리는 정기 재래시장은 참 볼 것이 많다. 용문산의 등산객과 가족 단위로 서울에서 온 사람들로 꽤 붐비는 시장이다. 용문산의 나물 냄새를 즐길 수 있는데, 매년 5월에는 ‘용문산나물축제’가 열릴 정도다. 재래시장에 가면 대형마트에서는 맛볼 수 없는 정감을 느낄 수 있고, 기분 나쁘지 않은 가격 흥정의 재미도 있다. 물건의 종류마다 다르겠지만 물건의 가격을 흥정할 수 있다는 것은 모든 것이 정찰제로 이루어진 세상보다는 인간적이라 할 수 있다. 30년 후에는 이런 재래시장이 모두 없어지고 내 몸 속에 내장된 칩으로 결제가 이루어지는 환경이 도래할지는 모르겠지만 흥정할 대상이 없어진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양평에서 빠질 수 없는 명소는 두물머리다. 양수리(兩水里)라고 부르던 동네를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두물머리’라고 부른다. 나는 표음문자인 한글의 우수성에 한자가 보조적인 역할을 하면 좋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꼭 한글로 된 우리의 명칭을 사용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두물머리가 그 좋은 예다. 두 개의 물줄기가 합쳐지는 동네 두물머리는 유럽의 웬만한 강변도시가 부럽지 않다. 큰 부자가 아니라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전원주택을 짓고 싶어 하지만 국내외의 프랜차이즈카페들과 음식점들이 이곳을 뒤덮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두물머리라는 이름과 ‘스’자로 시작하여 ‘스’자로 끝나는 카페는 도저히 어우러질 수 없게 보이니까.


   당일치기 여행이라도 좋다. 용문산의 정상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좋다. 그저 물이 합쳐지는 곳의 영화적 미장센을 카메라에 담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장터 냄새와 용의 문을 천 년 동안이나 지킨 은행나무의 기(氣)를 느끼러 양평행 기차를 타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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