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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도 숭실문화상
횡단
최선덕(문예창작·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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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호] 승인 2017.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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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시장에는 네 개의 동으로 이루어진 대형 의류 부자재 상가가 있다. 상가와 상가 사이에는 큰 길이 나 있고 아버지의 공장은 그 길 끝에 있었다. 길 초입에는 양옆으로 생선가게가 늘어섰다. 나는 매번 생선 가게를 지날 때마다 몸을 움츠렸다. 비릿한 생선 냄새가 연탄 연기를 타고 길에 퍼졌다. 길에는 원단 롤을 진 지게꾼들이 아슬아슬하게 지나다녔다. 나는 부딪치지 않기 위해 옆으로 몸을 피하며 걸었다. 생선가게를 모두 지나고 나면 보신탕집이 보였다. 보신탕집 창문 앞 선반에는 둥근 플라스틱 소쿠리에 삶은 개고기가 담겨 있었다. 그 위로 가짜나비가 날아다녔다. 개고기는 투명한 비닐로 덮여 있어 꼬리만 툭 튀어나왔다. 나는 그곳을 지나 낡은 원단 창고 건물로 들어갔다. 아버지의 공장은 건물의 마지막 층에 있었다.

원단 창고는 오 층으로 된 건물이었다. 불이 켜져 있는데도 건물 안이 어두웠다. 공장이 가까워질수록 아버지의 망치 소리가 커졌다. 공장 복도에도 열기가 느껴졌다. 공장은 방음도 되지 않았고 에어컨을 설치할 수도 없었다. 낡은 건물이라 전력이 약해서 여러 대의 선풍기를 켤 때면 전기가 나갔다. 벨트공장은 작은 원단 창고를 개조해서 만들었다. 다른 곳보다 월세가 저렴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있는 502호를 제외하고는 모두 원단 창고로 사용했기 때문에 계단에서 사람과 마주치는 일은 드물었다. 곧이어 망치 소리가 멈췄다. 나는 빠르게 계단을 올라갔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 문을 열고 나온 아버지가 꺼진 복도 불을 다시 켜는 것이 보였다.

자꾸 누가 불을 꺼.

아버지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퇴근할 때까지 502호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했기 때문에 화장실을 갈 때만 복도에 나왔다. 아버지는 복도 끝에 있는 503호를 바라보았다. 나는 아버지를 따라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며칠 전에 한 젊은 남자가 창고를 이전해왔다. 남자가 같은 층으로 창고를 옮기기 전까지 아버지는 공장에 불만이 없어 보였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웠지만, 아버지는 자신만의 생활 법칙을 가진 듯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라텍스 접착제 냄새에 코가 찡했다. 아버지는 곧바로 본드를 바른 가죽에 밑창을 붙이는 작업을 시작했다. 오래된 텔레비전에서는 중국 무협 드라마가 나왔다. 벌써 네 번째 보는 드라마였다. 내가 채널을 돌리려고 하자 아버지는 중요한 장면이라며 내 손에서 리모컨을 빼앗았다. 아버지는 드라마의 마지막 회를 반복해서 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행복한 결말로 끝나는 드라마를. 마지막 악당이 죽는 모습이 나오자 아버지는 작업 중이던 가죽을 놓고 경건하게 텔레비전을 바라봤다. 복도의 불이 꺼진 이후로 텔레비전의 볼륨이 더 커졌다.

나는 아버지가 미리 재단한 가죽 원단 띠를 룰러 기계를 이용해 눌렀다. 공장에는 재단 기계와 가죽 룰러 기계가 놓였고 한쪽 구석에는 쓰다 남은 가죽들이 돌돌 말려 하나의 더미를 이뤘다. 룰러 기계 앞에 서 있으면 오래된 가죽 냄새가 났다. 아버지의 책상에 새로운 문제집이 보였다. 공장에는 벨트를 만드는 작업 책상 말고도 철제 책상이 있었다. 책상 위에는 한자, 기초 영어회화, 요트 조종사 자격증 등의 문제집이 놓였다. 요트 조종사 자격증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일하다가 책상을 바라보고는 했다. 공장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새로운 문제집을 사 오는 것 같았다.

공장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등을 타고 땀이 흘렀다. 나는 여름이 다가오는 것을 공장에서 처음 느꼈다. 이맘때가 되면 공장은 열로 뜨겁게 달궈졌다. 선풍기에서 더운 바람이 불어왔다. 공장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작은 개미떼가 등을 기어 다니는 것처럼 간지러웠다. 나는 세수를 하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서 나와 다시 공장 문 앞에 섰을 때 나는 아버지의 쪽지를 발견했다. 그새 아버지는 스위치 위에 쪽지를 붙여놓았다. ‘불을 끄지 마세요.’ 아버지는 남자가 습관적으로 불을 끄는 것 같다고 말했다.

 

스위치에 붙은 쪽지의 내용은 매번 바뀌었다. 그런데도 남자는 계속 불을 껐다. 스위치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면 아버지는 신경질적으로 공장 문을 열고 복도로 뛰어나갔다. 그럴 때마다 계단을 내려가는 남자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나는 허탕을 친 아버지에게 차가운 물을 건넸다. 더워서 붉어진 아버지의 얼굴에서 귀걸이가 유독 눈에 띄었다. 아버지는 귀를 뚫어서 작은 금색 링 귀걸이를 했다. 두통에 좋다는 말을 듣고 귀를 뚫은 것이었는데, 어린 의상 디자이너에게 멋있다는 말을 들은 이후 귀걸이를 뺀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나이보다 다섯 살 정도 어려 보인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는 듯 보였다.

여름방학이면 나는 아버지의 공장에서 잡일을 했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아버지는 하청업자에게 일을 맡기는 대신 스스로 벨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벨트의 버클을 조립하거나, 벨트 가락지를 만들었다. 집게손가락만 한 가죽 띠의 끝과 끝을 가운데로 모아 가운데 부분에 스테이플러를 두 번 찍으면 가락지가 만들어졌다. 가락지는 벨트를 착용할 때 벨트의 꼬리를 끼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보통 다른 공장에서는 전용 가락지 기계가 따로 있었다. 단가가 싼 막 벨트의 경우에는 낮은 단가를 맞추기 위해 손으로 가락지를 만들었다. 벨트의 버클은 가시메를 이용해 가죽에 고정했다. 나는 가시메를 조립할 때 나는 소리가 좋았다. 나사처럼 생긴 가시메는 한 쌍으로 이루어진다. 앞면은 나사처럼 뾰족하고 뒷면에는 나사가 들어가는 구멍이 있다. 가시메 한 쌍을 가죽의 앞뒷면에 끼우고 힘으로 누르며 똑 하는 소리가 난다. 그러면 나는 무언가가 드디어 제 자리를 잡았다는 생각이 들어 안심이 되었다. 조립한 가시메는 망치로 한 번씩 두드려주면 가죽에서 벨트 버클이 빠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불을 끄는 남자의 현장을 잡기 위해 공장 문을 열어두었다. 문을 열어두는 날에는 남자가 원단 창고에 오지 않았다. 어느덧 그 남자를 기다리는 것이 아버지의 일과가 된 것 같았다. 아버지의 생활에 묘한 활력이 생긴 것처럼 보였다.

공장의 작은 창문으로 비가 내리는 것이 보였다. 나는 서둘러 붉은 대야를 공장 중간에 놓았다. 공장은 비가 오면 천장에서 물이 떨어져 벽에 곰팡이가 슬었다. 벽에 붙여놓은 포스터 위로 작은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아버지는 금이 간 곳이나, 곰팡이가 생긴 곳마다 영화 포스터를 붙여 놓았다. 처음에는 한두 개의 영화 포스터가 붙어있었는데 지금은 한쪽 벽면 전체가 포스터로 뒤덮였다. 영화 포스터를 벽에 붙이는 데도 아버지만의 규칙이 있는 것 같았다. 벽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주인공의 나이가 많아졌다. 포스터의 색감이 화려한 것도 특징이었다. 결말이 아버지의 마음에 든 영화만이 벽에 붙을 수 있는 듯했다.

장마철이 되면 선풍기를 돌려도 라텍스 본드냄새가 쉽게 빠지지 않았다. 본드가 빨리 마르지 않아서 작업 속도가 반으로 줄었다. 아버지는 다시 재단 기계 앞에 섰다. 가죽 원단을 기계에 넣고 발로 페달을 밟으면 가죽이 밀리면서 일정하게 잘렸다. 나는 기계에서 잘려 나오는 가죽 띠가 바닥에 떨어지지 않게 기계 앞에 서서 가죽 띠를 손으로 받았다. 마주 서 있는 아버지의 어깨가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것이 보였다. 오랜 일을 통해 몸의 균형이 변한 것이다. 아버지는 벨트를 한 줄로 모아 작업 책상 위에 올렸다. 그리고 재단 칼로 가죽 끝을 잘랐다. 아버지의 모든 힘이 칼을 잡는 오른쪽으로 쏠렸다.

학교는?

평소에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다가 아버지는 가끔 내게 질문을 던졌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아버지는 질문할 때면 앞뒤 부연 설명 없이 이렇게 물었다. 딸인 내게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조심스러워 하는 듯했다. 성격 급한 아버지가 차분히 기다려주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질문하고 내가 대답할 때까지 궁금해 하며 나를 기다렸다. 그것은 아버지가 좋아하는 나와의 대화법이었다.

 

질문을 잘해야 해.

J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21살에 대학에 들어왔다. J는 나와 동갑이었지만 한 학년 선배였다. 신입생 환영회 때 처음 봤는데 단발머리에 꼭 다문 입술이 어딘지 모르게 야무져 보였다. 환영회 모임에서 J는 자신이 심리동아리에 회장직을 맡고 있다는 사실과 동아리 원을 모집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 제대로 밥을 먹지 못하는 내 앞에 음식을 말없이 놓아주기도 했다. 특별히 나를 챙겨주는 것은 아니었다. 환영회에 온 모든 사람이 소외되지 않게 그 사람의 몫으로 주어진 것들을 챙겨주는 것뿐인 듯했다. J는 나에게 동아리에 들어올 것을 권유했었다. 내가 거절을 못 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 앳된 신입생 한 명이 J에게 물었었다.

학교생활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질문을 잘해야 해요.

J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었다.

신입생이 다시 질문했지만, J는 웃음을 지을 뿐 더는 그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었다.

 

나는 질문을 하는 것보단 대답하는 것에 더 익숙할지도 모른다. J의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몰라서 나는 꺼내지 못했다. 아버지는 내게 고민이 생겼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 대신 아버지는 심부름을 시켰다.

나는 사이다를 사러 공장에서 나왔다. 높게 묶은 머리가 계속 흘러내렸다. 나는 다시 머리를 내려 묶었다. 앞머리가 땀에 젖었다. 아버지의 공장이 있는 B시장의 입구는 지하철 D역과 가까웠고 시장이 끝나는 지점은 지하철 A역과 가까웠다. 나는 골목에서 실습을 나온 대학생들과 마주쳤다. 원단 샘플을 손에 잔뜩 쥔 대학생의 손을 바라봤다. 나는 무언가를 세게 쥐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인 관광객이 생선가게의 사진을 찍는 것이 보였다. 공장으로 들어가는 큰길가 입구가 현대식품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주변 식당들은 간단한 물품을 현대식품에서 받아썼다. 나는 가게의 문을 열었다. 문은 미닫이문이었는데 문을 옆으로 밀고 들어가는 짧은 시간 동안 나는 과거로 돌아간 느낌을 받곤 했다. 가게에선 마른 흙냄새가 났다. 식품의 선반 끝마다 비닐 포장이 되어 있는 쥐포나 마른오징어가 매달려 있었다. 과자나 컵라면은 선반에 진열되어 있지 않고 커다란 종이 상자 안에 담겼다. 나는 상자 안에 손을 넣고 컵라면을 고르는 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했다. 아버지는 내가 일을 돕지 않을 때는 간단한 컵라면이나 음료수를 이곳에서 사 갔다. 나는 깔끔한 성격을 가진 아버지가 이곳을 싫어할 거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꼭 이곳으로 심부름을 보냈다. 식품 주인은 중년 남자로 아버지와 동년배처럼 보였다. 주인은 항상 작은 텔레비전으로 축구를 보곤 했다. 나는 주인의 불이 붉은 것을 보고 오늘이 목요일임을 알았다. 주인은 늙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목요일에만 술을 마신다고 아버지에게 들은 적이 있다.

현대 식품이 있는 큰길을 지나 공장 쪽으로 걷다 보면 좁고 짧은 샛길이 나왔다. 샛길은 아버지의 공장으로 가는 짧은 길에 가운데에 있었다. 나는 사이다를 들고 길을 걷다가 염색 집 앞에 걸음을 멈췄다. 샛길에는 원단 띠나 단추를 염색하는 작은 염색 집이 있었다. 문 앞에는 막 작업을 끝낸 색색의 원단 띠가 쌓여 있었다. 열린 문 사이로 염색집 주인의 모습이 보였다. 염색집 주인은 단추를 소쿠리에 담아 뜨거운 염색물에 넣고 연신 흔들렸다. 작은 자갈이 서로 부딪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염색집이 위치한 골목의 막다른 벽에는 투박한 글씨로 쓰인 길 없음이란 글씨가 보였다. 사람들은 그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가 길을 찾으려고 염색 집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참다못한 주인이 벽에 글을 써놨지만 소용없었다. 나는 막다른 길을 볼 때마다 J의 질문들이 떠올랐다.

 

입학 후 몇 달 동안 나는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전공이 나와 맞는 것인지 확신도 없었다. 나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 정도로 예쁘지도 않았고, 말솜씨도 없었다. 동아리에 들어가서도 쉽게 J에게 말을 붙이지 못했다. 동아리에서 J가 주도한 MBTI 성격 유형 검사에서 나는 ISEF가 나왔다. 결과지에는 자신을 드러내는 연습을 하라는 조언이 적혀있었다. J는 성격 유형 검사지를 읽고 있는 내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었다.

진짜 하고 싶어?

J는 자주 동아리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곤 했다. 하지만 J가 내게 개인적으로 질문한 것은 처음이기 때문에 나는 당황했다. J의 얼굴에는 어떠한 악의도 담겨있지 않는 듯 보였다. 뭐가?라고 J에게 묻고 싶었지만, J의 얼굴을 보니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넌 자신을 잘 몰라.

J의 말투에는 어떤 확신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J가 왜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질문하지 않으면 알 수 없어.

J는 평소처럼 자신의 할 일을 마무리하고 나가기 전에 다시 내게 말했다. 그리고 동아리방을 나갔다. 그 이후 J와 여러 번 마주쳤지만, 나는 J에게 어떤 것도 묻지 못했다.

동아리방에서 당연하지게임이 유행한 것은 그 무렵이었다. 평소 노는 것을 좋아했던 김이 동아리방에 사람들이 모이자 당연하지게임을 제안했다. 당연하지 게임은 한 방송사에서 십 년 전에 유행한 게임이었다. 상대방이 어떤 질문을 하든 당연하지라고 대답을 해야 하는 게임이었다. 질문과 답변은 반말로 했다. 진실게임이나 거짓말 게임과는 달리 그 상황을 거짓말로 인정하며 넘어간다는 점이 어려웠다. 몇몇 학생들은 유치하다는 이유로 게임을 하기 싫어하는 눈치였다. 게임은 이미 김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동아리 선배들은 아주 사소한 질문부터 부끄러운 질문들까지 주고받았다. 좋아하는 남자에게 차여본 적이 있지. 당연하지. 술 먹고 노상 방뇨를 한 적이 있지. 너도 이기적인 거 알지. 엉덩이에 주먹만 한 점이 있지. 당연하지. 웃거나 당황하면 지는 게임이었다. 남들이 모르는 상대방의 약점을 많이 알고 있을수록 게임의 승부에서 유리했다.

술이 들어가자 질문들은 더욱 유치해졌다. 나는 내 차례가 다가올까 봐 조급해졌다. 화장실을 가는 척 빠져나오려는데 김이 내 팔을 붙잡았다. 김은 술에 취해서인지 들떠 보였다. 김은 내가 한 번도 제대로 게임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큰 소리로 동아리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김은 나와 J를 불러 세웠다. 내가 아무것도 묻지 않자, 김은 자신의 말을 따라 하면 이길 수 있다면서 나를 부추겼다. 나는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김의 말을 따라 했다.

너 성격 이상한 거 알지.

내 말이 끝나자마자 학생들은 웃었다.

당연하지.

J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내게 묻기 시작했다.

너 사랑 받아본 적 없지?

J의 질문에 동아리방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나는 아버지가 떠올랐다. 여름이 돼야 나를 찾는. 더워서 붉어진 아버지의 얼굴이 생각났다. 김은 J가 아직 게임의 규칙을 모르는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선배들은 재밌는 질문의 예시를 J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그런데도 J는 내게 다른 질문들을 던졌고 나는 대답을 해야만 했다.

당연하지.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떨렸다. 내가 질 것 같으면 김이 대신 옆에서 J에게 질문하기도 했다. 나는 김과 J의 싸움에 어설프게 끼여 버린 것 같았다. 동아리 사람들은 재미가 없어졌다는 이유를 핑계로 상황을 마무리 지으려고 했다. 그때 J가 나의 눈을 바라보며 질문했다.

너 진짜 모르지?

당연하지.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김은 나를 대신해 J에게 장난스러운 질문을 던졌고, J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동아리 사람들은 김의 개입이 불공평하다고 했다. J가 나를 향해 다시 물었다.

너 되고 싶은 것도 없지?

뜨거운 것이 확 가슴으로 올라왔다. 손이 떨렸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이 게임에서 도망가는 일은 어려워 보였다.

당연하지. 그런데 그런 너도 모르지?

게임이 시작되고 김의 도움 없이 내가 스스로 J에게 한 첫 질문이었다. J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동아리 사람들은 상황을 마무리 지으려고 애를 썼다. 김은 게임을 다시 하자고 떼를 썼다. 결론적으로 나는 처음으로 게임에서 J를 이긴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는 내일은 조금 더 일찍 공장에 나오자고 내게 말했다. 나는 미술 전시회를 가기로 한 약속이 있었지만 말을 하지 못했다. 일 년 동안 기다린 전시회였다. 내일이 전시회 마지막 날이었다. 아버지는 누군가에게 거절을 당했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어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자신의 성격을 할머니 탓으로 돌렸다. 어렸을 때 할머니가 아버지의 부탁을 자주 거절했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아버지는 한번 거절을 당한 사람에게는 다시 부탁하지 않았다. 아주 사소한 거절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오는 길에 사이다를 사와 달라는 부탁을 거절한 후 나는 오랫동안 아버지의 눈치를 살핀 적도 있었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지내면서 거절하지 못하는 아이로 자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내 의사를 전할 때마다 상대방이 화를 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눈치를 보곤 했다. 아버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버지는 젊은 남자가 불을 끄는 순간을 계속 기다리는 듯했다. 불을 끈 남자에 대해 아버지는 이기적이고 뻔뻔한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다. 아버지는 할 말은 하고 사는 사람이었고 성격이 급했다. 식당에 들어가 직원이 메뉴판을 바로 갖고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으면 화를 내며 식당을 나오기도 했다. 여름은 아버지와 가장 많은 대화를 하는 계절이었다. 학기 중에 아버지는 나보다 먼저 출근을 하고 내가 집에 들어 왔을 때는 이미 주무시고 계셨다. 집은 공장과 한 시간 거리였고 방 두 개에 작은 거실과 부엌이 딸린 빌라였다. 아버지와 단둘이 집에 있을 때면 그 집마저도 넓게 느껴지곤 했다.

 

아버지와 나는 지하철 첫차를 기다렸다. 아버지는 나와 달리 생선 가게와 가까운 D역 대신 A역을 이용했다. 첫차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는 아버지를 보며 나는 아버지의 자리는 저 자리구나, 하는 묘한 생각이 들었다. 내 자리는 어디일까. 있다면 아버지와 조금 떨어진 곳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출근할 때와 퇴근할 때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눈을 감고 있어 쪽잠을 자는 것으로 짐작했지만, 내리는 역의 안내방송이 나오기도 전에 아버지는 문 앞에 먼저 서서 아버지는 대기했다. 제일 먼저 원단 창고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가면서 건물의 불을 모두 켰다. 그것이 아버지의 아침 일과였다. 나는 아버지가 가죽재단을 할 때 젊은 남자처럼 불을 끈 적이 있다. 여름에만 나를 찾는 아버지보다 그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내가 더 답답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화를 내며 복도로 뛰어나왔고, 나는 모른 척 했었다. 때때로 나는 아버지에게 저 남자처럼 모르는 사람이 되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공장에 들어오자마자 오늘 납품일인 원피스 어깨끈으로 쓰이는 가죽 비조를 조립했다. 아버지는 벨트뿐만 아니라 강아지 목줄이나 가방 장식 고리 같은 것도 쉽게 만들었다. 아버지는 가죽 원단의 치수를 재며 오 년 안에 망할 거라고 장담했던 아버지의 옛 직장 상사 때문에 이 일을 이십 년 넘게 지속해 올 수 있었다고 내게 말했다. 나는 선풍기의 머리를 아버지 쪽으로 틀었다. 공장 문도 살짝 열어 두었다. 아버지는 손에 묻은 가죽 염색약을 지우기 위해 공장을 나서려고 했다. 그 순간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복도의 불이 꺼진 것이 보였다. 남자가 일주일 만에 다시 공장에 온 것이다.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아버지는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드디어 아버지는 젊은 남자와 마주친 것 같았다. 열린 문틈으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체 왜 자꾸 불을 꺼요.

죄송해요. 사람이 있는 줄 몰랐어요.

남자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말끝을 흐렸다.

쪽지도 붙여놨는데.

아버지는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남자의 목소리를 듣고 아버지의 말이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험상궂게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마른 체격에 키가 작고 아버지가 붙여놓은 쪽지를 확인하지 못할 정도로 어수룩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예상과 달리 싸움은 시시하게 끝난 듯 했다. 남자는 정말로 뻔뻔하고 예의가 없었어야 했다. 그래야 아버지는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속 시원하게 화내고 훈계하며 자신의 공간을 지켜냈다는 승리감을 얻었을 것이다.

그 이후 아버지는 불이 꺼져 있어도 복도의 불을 다시 켜지 않았다. 어두운 복도를 걸어 화장실에 들어가 손에 묻은 염색약을 말없이 씻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미리 싸놓은 여행 가방을 바라보듯 자신의 철제 책상을 자주 바라봤다.

B시장은 의류 부자재 상가의 여름휴가 기간이 되면 함께 문을 닫았다. 아버지에게 따로 휴가 기간이 없었다. 밤 시장에서 주문이 끊기면 그때 시간을 내서 나와 여행을 다녀오곤 했다. 경기가 안 좋아진 탓인지 여름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밤 시장의 주문량이 점점 줄어들었다. 공장에서 내가 하는 일이 점점 줄었는데도 아버지는 그만 나와도 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처음 아버지의 일을 돕게 된 것은 아버지의 부탁 때문이었다. 그 부탁을 몇 년 동안 거절하지 못했던 것은 거절하지 못하는 내 성격 탓도 있었지만, 아버지의 생활을 너무 많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샛길에 멈춰 길 없음이란 글자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옆모습이 자주 떠올랐다. 구부정한 자세로 힘없이 걸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무더운 여름이 되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누군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가 생긴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J가 내게 그만 알고 싶지? 라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할 것이다.

 

8월 말이 되어 학교일 때문에 평소와 다르게 아버지와 따로 출근했다. 아버지와 함께 출근할 때면 성격 급한 아버지는 지하철의 문이 열리기도 전에 손으로 서 있는 나의 등을 밀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도 모르는 곳으로 밀려나는 기분이 들어 불안해졌다. 혼자 타는 지하철은 더는 불편하지 않았다. 공장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얼린 수건을 목에 두른 채로 달력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달력에 자신만 아는 숫자들을 잔뜩 써 놓았다. 발주서를 걸어두는 벽에 발주서가 보이지 않았다. 텔레비전에서는 한국기행 프로그램이 나왔다. 처음에 아버지는 세계 테마 여행 프로그램을 즐겨봤었는데 어느덧 한국기행이란 프로그램으로 관심사가 이동했다. 나는 어쩌면 외국은 갈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텔레비전에선 여수의 바다가 나왔다. 공장은 열기에 습기가 더해져 끈적끈적했다. 리포트는 전망대에 올라가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벨트 재 주문 전화가 오는 시간인데 전화기는 울리지 않았다. 보통 밤 시장에 넘기는 벨트는 오전 열 시에 주문을 받고 오후 여섯 시에 납품을 했었다. 미리 벨트를 만들 준비를 다 해놓았는데 업체에서 연락이 뚝 끊긴 것이다. 공장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목을 타고 땀이 흘러내렸다. 아버지의 등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텔레비전을 집중하며 보던 아버지가 말했다.

여수에는 가 본 적이 없다.

나는 아버지를 바라봤다.

어디든 여기보단 낫겠지?

아버지의 달력을 보니 벌써 9월이었다. 아버지는 하루 먼저 달력을 미리 뜯어냈다. 우리는 더운 날씨를 핑계로 여수로 떠나기로 했다. 계획적으로 모든 행동을 하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나는 당황했다. 아버지가 여행을 가자고 내게 말한 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처음이었다. 아버지와 공장에서 나와 B시장을 걸었다. 보신탕집을 지날 때 아버지얼굴에 주름이 졌다. 펄펄 끓는 육수에서 누린내가 올라왔다. 연탄을 가는 생선가게 주인을 피해 아버지는 내 쪽으로 바짝 다가섰다.

나와 아버지는 계획 없이 여수를 돌아다녔다. 사람들이 많이 서 있는 유명 수제 햄버거 매장 앞에 우린 걸음을 멈췄다. 아버지는 팔꿈치로 나를 툭 쳤다. 젊은 사람에 둘러싸인 아버지는 남의 자리에 잘못 앉은 여고생처럼 어쩔 줄 몰라 보였다. 주문하는 것은 나의 몫이 되었다. 여행에서 나는 아버지가 젊은 사람들 무리를 무서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젊은 사람 한 명 앞에서는 당당했으나, 무리 앞에 서면 기가 죽었다.

여수에는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가 많았다. 신호등이 없는 이 차선 도로를 건너기 위해 우리는 꽤 오랫동안 달리는 차를 바라봤다. 숙소에서 가까운 식당에 가는 길이었다. 선두에 아버지가 서서 길을 건너려고 시도했다. 차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앞만 보며 달렸다. 아버지는 나에게 손짓을 하며 신호를 보냈다. 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달리기 시작했다. 길을 건너는 것이 대단한 작전인양 우리의 모습은 진지했다. 길을 다 건너고 나서야 우리는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아버지와 무단횡단을 한 기분이 들어서 조금 흥분되었다. 여수를 여행한 지 이틀째가 되자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에도 요령이 생겼다. 아버지는 횡단보도를 건너고 나서 내게 말했다.

길을 잘 건널 줄 알아야 한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는 멈춰야 하는 순간이 따로 없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우리는 용기를 내야 했다. 횡단보도를 같이 건너고 나서 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그전에 없던 감정이 생긴 것 같았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는 스스로 길을 건너는 순간을 정하지 않으면 영영 건널 수 없을 것 같았다.

 

여수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나는 이른 오후에 먼저 잠든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봤다. 손톱에 남은 가죽 염색약이 보였다. 얼굴에 전에 없던 주름이 많이 잡혔다. 어쩌면 아버지는 내가 J처럼 질문을 한다면 기다렸다는 듯 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잠든 아버지에게 생수를 사온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잠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숙소에서 나와 숙소의 반대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멀리 여수의 바다가 보였다. 가족 단위로 놀러온 사람들이 내 옆을 지나갔다. 나는 숙소에서 멀어질수록 아버지와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계속 걷다보니 막다른 길이 나왔다. 나는 여수에 와서 처음으로 혼자 길을 건너야 했다. 차들은 멈추지 않고 빠르게 달렸다. 숨을 참고 앞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길을 다 건너고 나서야 나는 숨을 몰아셨다. 이 길은 아버지 없이 처음으로 내가 선택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름이 끝나도록 아버지와 함께 일을 했다. 그 사이 아버지의 책상에는 책 두 권이 더 늘어났다. 주택관리사 자격증과 제빵사 자격증 문제집이었다. 가을이 다가오자 공장에 열기가 사라졌다. 벨트 공장과 염색 집은 이미 겨울을 준비하고 있었다. 염색되는 원단 띠 색이 어두워졌다. 지게꾼들이 들고 있는 원단이 두꺼워보였다. B시장에 있는 샛길의 계절은 한 계절이 더 빨랐다. 디자이너들은 겨울 샘플 옷을 들고 염색집과 시장을 뛰어다녔다. 식당의 메뉴들도 따듯한 음식으로 바뀌었다. 나는 그 샛길을 지나가고 막다른 벽을 볼 때면 길 없음에 대해 생각한다. 당연하지 게임 이후 J와 마주친 일이 있었다. J는 다시 게임을 시작하듯 내게 물었었다. 대답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니? 내가 말 하려고 하자 J가 먼저 대답했다. 아니야. J가 처음으로 게임의 규칙을 어긴 것이었다. J의 눈빛이 게임을 할 때와는 달랐다. 나도 아직 찾는 중이야. J는 당연하지 게임에서 내가 물었던 답을 지금에야 대답하는 것 같았다. 막다른 골목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들어와 염색 집 앞을 어슬렁거렸다. 나는 그 벽을 볼 때마다 질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J를 떠올리게 된다. J가 그랬었던 것처럼 내게 묻는다. 길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 나는 조금은 망설이다가 처음 혼자 길을 건넜던 그때처럼 대답한다. 당연하지.  

 

소설 부문 심사평
조경란 교수(문예창작학과)
김선아 교수(문예창작학과)

“무엇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이것이 모든 창작자의 과제이자 고민일 것이다. 응모된 작품들을 통해서도 예외 없이 그런 고민을 읽을 수 있었다. 또한, 제각각의 방식으로 ‘낯설게 말하기’를 고투한 흔적들이 역력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소설적 개연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실보다 더 사실 같은 거짓말. 그게 소설의 완성도를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압축된 삶의 단면을 제시함으로써 독자가 전체의 삶을 조망케 하는 것이 소설(단편)의 묘미라고 한다면 다수의 작품에서 이 묘미를 해치는 약점들이 보인다. 서사를 엮어가는 힘은 있지만 정작 그 서사의 주인공인 인물을 형상화하는 것에 소홀했거나 이야기의 맥락을 놓쳐 결말이 아쉬운 작품들이 있었다. 묘사가 배제된 서사는 인물과 사건을 평면적으로 만들 뿐 아니라 소설적 공간을 모호하게 만든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불어 체험적 사실과 소설적 사실이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횡단」은 체험적 공간이 어떻게 이야기의 무대가 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작품이었고 「검은 빙하 쪽으로」는 개인의 내면이 섬세하게 진술되고 있는 작품이었다. 두 작품 모두 문장을 다루는 힘과 각각의 방식으로 이야기의 맥락을 강화해가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소설이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진심을 구체화하려는 과정과 노력이 필요하다. 「횡단」을 당선작으로 뽑은 이유다. 축하를 보낸다.

소설 부문 당선 수상소감

최선덕(문예창작·14)

제가 쓴 소설 횡단에서 ‘나’는 J의 질문을 듣고 자신의 정체성에 관해 생각하게 됩니다. 저 또한 소설의 ‘나’처럼 글을 쓰면서 정체성에 대해 많이 고민했었습니다. 횡단을 쓰는 과정에서 저는 소설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소설을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저는 소설 앞에서 스스로 부족한 점이 많다고 느낍니다. 앞으로 더 많이 읽고 열심히 쓰겠습니다. 글을 지도해주신 선생님, 학과 교수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성실해야 한다는 말 잊지 않고 더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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