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청년의 상황이 어렵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취업이 안 된다. 취업 준비생인 A 씨는 2015년 서울 소재 대학을 졸업하고 꾸준히 구직 활동을 했다. 그러나 아직 취업을 못 한 상태다. 그에겐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기자를 직업으로 삼으면 그 꿈을 실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21살부터 대외활동을 꾸준히 했다. 대기업 블로그 기자단 활동, 잡지 에디터, 학생 기자 활동, 유명 신문사 교육연수생 경험을 하며 착실하게 꿈을 키워 나갔다.

A 씨는 수상 경력도 있고, 자기 이름을 걸고 인터넷에 기사를 올리기도 했다. 당연히 취직이 쉬울 줄 알았다. 그러나 졸업 후 2년간, 서류 지원에서 탈락하고 최종 면접에서 떨어지는 일이 50여 차례 반복됐다. 최근에는 3개월 인턴 근무 조건으로 월 40만 원을 제의한 곳도 있다. “진짜 깜짝 놀라서 표정 관리가 안 됐다고 말한 그는, “40만 원은 내 용돈이라고 덧붙였다. A 씨의 마음속엔 여전히 기자라는 꿈이 있지만, 실패가 반복되자 현재는 지친 상태다. A 씨는 남들은 쉽게 취직하는 것 같은데, 왜 나한테만 자꾸 이런 일이 생기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A 씨만 겪는 일이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9월 기준 전체 실업률은 3.4%인데 청년(20~29) 실업률은 9.4%3배나 높다. 그런데 통계청의 수치는 비경제취업인구가 반영되지 않은 보수적 수치다. 비경제취업인구란 노동시장 여건이 좋지 않아 구직활동을 하다 취업을 포기한 사람을 말한다. A 씨와 유사한 사례다. 청년 실업 집단의 유형별 분포를 살펴보면, 포기형(청년 니트)84%를 차지한다. 20165월 기준 비경제취업인구를 포함한 전국청년실질실업률은 34.9%, 전국 청년 3명 중 1명이 실업자임을 알 수 있다.
청년실업 문제는 역사가 깊다. 최근 10년 동안의 청년고용 정책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 노무현·이명박 정부가 각각 2번씩 총괄 대책을 제시했으며, 박근혜 정부가 청년 고용절벽 종합대책을 진행했다. 정책마다 표현은 다르지만, 인턴제·단기 일자리 제공, 직업훈련·연수,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 기업에 지원금 지급 등 기본 정책 틀은 비슷하다.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현 정부의 청년 고용 정책 계획은 다음과 같다.
 
 
<1>을 살펴보면 현 정부의 청년고용 정책은 일자리 안정성 확보 정책이 추가됐을 뿐, 기존 정책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기존 정책은 청년 고용률 증가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지난 19년간 우리나라 전체 고용률은 꾸준히 증가했다. 그러나 청년 고용률은 40%에서 정체되었으며, 200445.1%를 기록한 이후 장기적으로 하락하고 있다(국회입법조사처, 2015). 따라서 문재인 정부의 정책 또한 청년고용 창출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청년고용 정책이 실업률 완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데, 왜 같은 정책을 고수할까? 해답은 청년고용 정책이 바탕을 둔 노동 윤리에 있다. 청년고용 정책은 청년의 불안정한 삶은 일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일은 인간의 조건이자 의무라는 생각이 반영된 정책이다. 그 증거로 청년은 근로 의욕을 증명해야 직업훈련 기회·지원금을 받을 수 있으며, 중소기업에 취업해야만 정책 혜택을 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청년고용 정책의 기저에 숨은 노동 윤리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청년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할 것을 주장하고자 한다.

 

1. 누가 청년을 일하게 하는가?

2014, 김무성 의원이 열악한 아르바이트 처우 문제에 관해 인생에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해야 한다. 방법이 없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여기에 젊어서 그런 고생을 하면 사회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라 덧붙였다. ‘일이 힘들다는 청년의 말을 철없는 투정 정도로만 받아들인 것이다. 김무성 의원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보통은 일하기 싫어도 참는다. 적당히 경력을 쌓아 더 나은 직장으로 옮기려 하고, ‘다른 직장도 다 똑같을 것이라고 합리화하고, 더 나은 직장에 취업 못 한 자기 능력을 탓할 뿐이다. 불합리한 상황을 겪어도, 일이 싫어도, 일 때문에 몸과 마음이 힘들어도, 힘든 감정은 견뎌야 하는 상태일 뿐, ‘사람이면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바뀌지 않는다.

제레미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에서, 지식과 기술이 진보하면 인간이 노동할 필요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러나 4차 산업 혁명을 앞둔 지금, 노동 시간은 아직도 줄어들지 않았다. 2015OECD 취업자 연간 평균 노동 시간·실질임금 현황 지표에 따르면, 한국은 2,113시간으로 노동시간 세계 2위를 달성했다. 5일 기준으로 45시간씩 일해야 2,113시간이다. 2004년 고용노동부가 휴일 근로는 연장 근로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행정해석을 내린 뒤, 한국 노동자는 합법적으로주당 68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즉 주 6일 기준 11시간씩 근무해도 위법이 아니다.

일하지 않을 권리의 저자 데이비드 프레인(영국 사회학자), 생산 효율이 향상됐는데도 노동 시간이 길어진 이유로 자본주의를 꼽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 시간이 절감되면 실업이 발생한다. 생산의 효율성이 높아지면, 필수품 생산에 필요한 사람이 점점 줄어든다는 뜻이다. 따라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 현대 자본주의에서 우리는 기이한 상황에 맞닥뜨린다. 고급 노동자는 장시간 일하느라 괴로워하는데, 다른 편에서는 자기 노동력이 더 이상 유용하게 쓰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이다.(p.55)

 

생산 효율성이 높아지면 그만큼 일할 사람이 줄어든다. 따라서 최소한의 인원으로 기업을 운영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가의 입장에서 생산 효율성만 높아지면 경기 침체다. 소비가 같이 증가해야 높은 생산량을 유지할 수 있다. 기업은 늘어난 생산만큼 소비를 늘리기 위해 시장을 만들어내고, 소비자의 욕망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이로 인해 사람들의 소비의존도가 높아지고, 선택 가능한 일자리 유형의 폭이 좁아졌으며, 일자리의 질 또한 낮아졌다. 킴 험프리는 이러한 현상을 포위라고 개념화했다. 포위란 인간의 일상적 활동, 생활 공간, 공동체를 자본주의에 맞게 개조하려고 경제적, 시간적으로 우리 삶을 조정하는 방식을 말한다.

힘들게 일할수록 그로 인한 소비가 정당화된다. 일을 하면서 시간도 기운도 뺏기기 때문이다. ‘편리함을 강점으로 내세우는 상품과 서비스가 확장되는 이유다. 예를 들어 요리는 시간과 기력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쁠수록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즉석식품이 생기고 식당이 늘면서, 요리는 취미 또는 식비를 아끼려고 하는 활동으로 전락했다. 노동자의 소비 의존도가 높아지면, 소비하기 위해 일을 반드시 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인간은 소비하기 위해 일하고, 일하기 때문에 소비를 더 많이 한다.

더 큰 문제는 소비자의 일자리 선택 폭이 기업의 필요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의 영원한 과제는 소비자의 욕망 끌어내기다. 이에 따라 기업이 해야 할 일도 결정된다. 대표적인 예로 마케터가 있다. 마케터의 역할은 소비를 촉진하는 것이다. 마케터는 유행을 선도하고, 불편하지 않던 것을 불편하게 만들고,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자아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다고 설득한다. 소비 촉진은 기업의 목표이자 요구일 뿐, 사회에 기여하는 방식도 아니고, 인간의 자아 정체성 실현 수단으로도 적절하지 않다.

기업에서 제공하는 일자리가 자아실현 수단으로 적절하지 않은 이유는 기업의 이익이 최우선이고, 감정 노동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주어진 일이 본인의 가치관과 달라도 해야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 함께 일해야 한다. 게다가 모든 기업에는 고객 서비스 센터와 영업사원이 필요하다. 두 업무는 저임금과 강도 높은 감정노동의 상징이다. 근무 환경이 개선되려면 기업의 수지타산에 맞아야 한다. 좋은 근무 환경을 제공하는 회사를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구글이 회사에 정원을 만들고, 내부를 카페처럼 꾸미고, 빈백(bean bag)을 가져다 놓는 이유는 직원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지, 인권 때문이 아니다.

일자리는 기업의 필요 때문에 만들어지며, 근무 환경 또한 열악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본주의 사회의 일자리는 인간의 자아실현 수단으로 적절하지 않다. 형편없는 일자리만 넘쳐나는 상황에서, ‘사람이면 일해야 한다는 생각은 자본주의의 무한동력일 뿐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아직도 일이 자아실현의 수단이라고 생각할까? 왜 청년은 진로를 탐색할 때 꿈을 중요시할까?

 

2. 왜 청년은 열정을 품어야 하는가?

사람들은 보통 청년이라 하면 열정을 떠올린다. 그런데 꿈과 열정은 청년의 실제 모습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스펙’, ‘고학력 저임금 노동자’, ‘학자금 대출같은 말이 청년과 더 가깝다. 사람들은 단지 청년에게 꿈 많고 열정적인 모습을 기대할 뿐이다. 언론은 앞장서서 돈보다 꿈을 택한 청년들의 성공담을 조명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고 비판한다. ‘헬조선의 취업 관문을 통과하는 청년의 비결은 꿈을 향한 열정이다. 취업준비생은 자연스레 꿈도 없고, 노력도 안 한 실패자가 된다.

꿈이 있는 청년꿈 없는 취업준비생이라는 이분법이 생기는 이유는, ‘일은 개인의 꿈을 이루는 바람직한 수단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 명제는 보통 요즘 젊은이들은 꿈이 없어서 문제’, ‘좋아하는 일을 하라’,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말로 둔갑한다. 일을 통해 꿈을 이룬 청년은 사회가 지향하고 장려하는 청년의 모범이다. 반면 하고 싶은 일 없이 조건만 따지는 청년은 질타의 대상이 된다. 어른들은 꿈 없는 청년에게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고 충고하며, ‘눈을 낮추라는 말을 덧붙인다. 꿈을 찾더라도 근로 경험이 없으니 조건 따지지 말라는 것이다. 이렇게 청년의 젊음과 열정은 노동 시장에서 미숙련의 지표로 탈바꿈한다.

현대 사회에서 일이란, 소득을 얻는 유일한 방법이자 자아실현 수단이고 사회에 기여하는 활동이다. 일이 자아실현 수단이라는 말은, 꿈과 장래희망이 동일한 말로 쓰인다는 점에서 추측할 수 있다. 꿈이 곧 직업일 수도 있지만, 직업이 꿈을 이루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꿈을 이루려고 기자를 선택한 A 씨처럼 말이다. 또한 일은 소득을 얻는 유일한 방법이자 어떤 활동이 일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즉 소득이 없으면 로 보지 않는다. A 씨는 같은 글쓰기 활동이라도 취미와 일을 명확히 구분한다.

 

교육단체에서 기자단을 하고 있어요. 단체장이 임의로 인터뷰 대상자를 추천해주면, 그 사람을 인터뷰해서 기사를 작성해요. 한 달에 한 번 정도 기사를 쓰는데 약 5만 원을 받아요. 괜찮은 일인데 수입원은 아니죠. 그냥 용돈 벌이? 취직을 안 하더라도, 지금 기자단 활동을 계속할 건가요? 취직 안 되면 안 되는데. 만약 기자가 안 되면 그냥 조그만 회사라도 들어갈 거예요. 왜냐면 이걸론 살 수가 없으니까. 언제까지 (기자) 준비를 할 수가 없으니까. 그러면 지금 하는 활동은? 취미 생활이에요.

 

꿈과 관련된 활동을 하더라도, 돈을 안 받거나 생활비에 못 미치는 금액을 받으면 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은 유급 노동에 한정된다.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의 유급 노동 과정에서 노동자가 소외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소외는 마르크스가 산업 사회 노동을 비판하기 위해 고안한 개념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 과정이 세분화되면서, 노동자가 창조성을 빼앗기고 책임감도 줄어들며, 생산물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지 못한다고 여겼다. 특히 기계 기술은 노동자를 단지 기계의 부속물로 전락시킨다고 보았다. 그는 산업 사회의 일이 노동자를 파편화된 인간으로 망가뜨리고 기계를 구성하는 부속품으로 전락시켜, 생산적 역량의 활용을 통한 인간의 성취 가능성을 억눌렀다고 묘사한다.

21세기 들어 새로운 소외 양상이 나타난다. 노동 과정에 노동자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착취하는 것이다. 노동자가 일과 하나 되어 책임 의식을 갖도록 요구하는데, 대표적인 예시로 감정노동과 적성검사가 있다. 산업 사회의 고용주는 노동자가 무슨 생각을 하건, 직무 수행에 영향이 없는 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인간관계론이 등장하면서 중간관리자의 의사소통 역량이 강조되었고, 서비스 노동에서 노동자의 성격이 생산성과 연관이 높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성격은 평가 대상이 되었다. 생산성이 높은 노동자는 조직의 목표에 몰입하며,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다. 즉 일을 통해 꿈을 이루려 할 만큼 열정적인 사람이어야 유용한 사람인 것이다.

노동을 표준화하고 감시하면 노동자는 일에서 소외감만 느끼지만, 일에 감정적인 투자를 요구하면 소외감은 물론 스트레스와 번아웃 상태에 시달린다. 노동 강도가 높을수록 사람들은 우울증을 겪을 확률이 높다. 개인이 노동에 감정적으로 거부반응을 보이는 현상을 막기 위해 기업은 개성과 자유를 최대한 허용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강조하며, 꿈을 포기하지 않는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태도를 장려한다. 그런데 실제 업무는 개인의 자아실현보다 생산성 중심으로 구성된다. 야근, 단순 문서 작성, 감정노동에 시달리며 사람들은 꿈과 일 사이의 괴리감을 느낀다. 결국 좋아하는 일을 하라’,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행복하다는 말은 열악한 근무 환경을 이겨 내기 위한 환상에 불과하다.

인간이 꿈을 좇아 사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이 꿈 자체이자 꿈을 이룰 유일한 수단이 될 만큼 적절한 조건을 갖췄는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일은 마치 즐길 수 있는 대상이고, 꿈을 이루는 과정이며, 나답게 행동하는 방식처럼 묘사된다. 그러나 꿈이 일과 동일시될수록 노동 윤리는 세련된 방식으로 노동자를 통제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순간조차 일에서 소외되는 청년에게 주목하면, 자본주의 사회의 일 개념을 비판할 가능성이 열린다. 진정한 일이란 이익 창출과 관련 없이, 활동 자체가 목적이 되면서, 개인이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활동이어야 한다. 스스로 주도하고, 자율적으로 자기 특징을 드러내는 활동이어야 한다. 나아가 공동체 속에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활동이어야 한다.

청년이 취업에 실패한 원인을 자기 탓으로 돌리고, 꺼져가는 열정의 불씨를 살리고, 꿈을 찾아 헤맬수록 자본주의 사회를 정당화하는 노동 윤리관이 재생산된다. 사람이면 일을 해야 하고,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 하는 분위기 속에서 구조의 비합리성은 사라지고 청년은 우울증과 불안함, 자괴감에 시달린다. 청년 실업률이 높은 이유가 진정 청년에게 꿈과 열정이 없어서인가? 직장에서 돈 벌어야 사람 구실 하고, 일한다고 믿는 사회 때문에 청년의 불안정한 사회적 지위가 굳어지는 것이다.

 

3. 청년수당 대신 기본소득을 지원하라

이명박 정부의 청년고용 정책 시행 이후, 고용 문제가 심화되었다. 정부는 청년들이 눈높이를 낮추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주장했다. 편하고 쉬운 일만 찾는청년이 높은 실업률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은 비정규직 규모가 고용시장의 45%를 차지하며,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이다. 지금의 청년들은 학력 수준도 높고, 능력도 뛰어난 세대다. 그에 걸맞은 일자리가 없으면 청년의 노동 시장 진입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즉 높은 실업률의 진짜 원인은 양질의 일자리 부족 때문인데, 현 정부는 여전히 청년에게 눈을 낮춰중소기업 취직을 권유하고, 취업 의사가 있는 사람에게만 실업 수당을 지급한다.

서울시의 실업수당인 청년수당은 기본소득과 거리가 멀다. 청년수당은 저소득층 청년을 대상으로 지급되며, 취업과 연계된 일자리 정책이다. 기본소득 지구네트워크에 따르면, 기본소득이란 정치공동체가 심사와 노동요구 없이 모든 개인에게 주기적으로 무조건 지급하는 현금이다. 성남시 청년배당 정책은 이 기준에 따라 국내 최초로 청년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정책이다. 성남시는 성남시에 3년 이상 거주한 만 19세부터 24세 청년이라면 무조건 분기별로 25만 원씩 총 100만 원을 연간 지급한다. 성남시가 청년배당 정책을 도입한 이유는 청년을 사회 취약계층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절박한 상황에 부닥친 청년에게 소득을 보장해서 희망을 주자는 것이 성남시 청년배당 정책의 목표였다.

청년이 사회취약계층인 이유는, 높은 취업률에 시달리며, 취업한다 해도 비정규직이고, 소득이 없거나 부족하면 주거 빈곤에 시달리는 데다, 대학 등록금 때문에 상당수가 채무자이기 때문이다. 청년 10명 중 6명은 부채를 지고 있다. 기업에서는 청년을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하거나 비정규직으로 고용한다. 제대로 된 경력을 쌓을 기회가 없으니 청년의 생애소득이 감소하고, 결국 빈곤의 길에 접어든다. 성남시 청년배당 정책은 청년이 청년이라서 가난해진다는 점을 짚어낸 정책이다. 억지로 청년의 눈높이를 낮추고 꿈과 열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소비와 생산을 반복하는 유급 노동보다, 더 나은 내일에 기여하는 에 돈을 줘야 한다. 취업 안 한다고 철없고, 꿈 없고, 열정 없는 것 아니다. 취업 포기했다고 능력 없고, 한심하고, 게으른 것 아니다. 청년이 꿈꾸는 ’, 열정을 쏟는 ’,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을 취업으로 제한할 이유는 없다. 다시 A 씨의 사례로 돌아가 보자. A 씨는 취미 활동으로 인터뷰를 한다. 우리 주변에 있는 평범한 사람의 삶을 재조명하고, 존재 의미를 찾아 주는 일이다. 인터뷰를 해서 얻는 금전적 이득은 고작 5만 원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그는 그 일을 한다. 또한, A 씨에게 기자는 돈과 상관없이 하고 싶은 일이다. “OO 신문사가 다른 곳보다 연봉이 2배나 낮아도, 진짜 기자라는 명예가 있어요. 다들 그거 하나 보고 가는 거예요라고 말하는 A 씨가 과연 능력은 없는데 눈만 높은 청년인가.

꿈이 있건 없건, 청년 노동의 대가는 생활이 가능한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그러나 기업은 불안정한 일자리 환경을 유지하는 대신, 청년의 꿈을 이용하고 있다. 청년 실업은 자본주의 사회 구조의 문제다. 따라서 청년 개인의 능력으로 극복할 수 없을뿐더러, 사회 구조 문제니 사회 정책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청년에게 기본 소득을 지급하자고 주장하는 이유다.

 

4. 청년에게 꿈과 열정을 돌려주자

지금까지 청년 실업 문제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청년고용 정책의 내용을 살펴봤다. 기업에 지원금을 지급하거나, 구직 의사가 있는 청년에게 제한적으로 수당을 지급하고 교육 기회를 주는 정부 정책이 기업에 유리한 방식임을 지적했다. 기업에 지원금을 지급하면 청년이 눈을 낮춰중소기업에 취직할 이유가 생긴다. 구직 의사가 있는 청년만 돕는 이유는 사람이면 누구나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좋은 일자리가 부족한데도, 꿈과 열정을 앞세워 청년에게 취직을 강요하는 정책은 다시 실패를 반복할 것이다. 친자본주의적 노동 윤리를 내면화하고, 실패를 자기 탓으로 돌리는 한 청년은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없다. 게다가 혼자서는 일에 저항하기 어렵다. 실제로 사람들에게 일은 주요 소득원이다. 누군가는 일에서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청년의 일 경험은 사회의 모순을 드러낼 뿐, 그 자체로 청년에게 자유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따라서 청년에게는 쓸모없이 보낼 시간이 필요하다. 같은 고민을 나누고, 꿈을 되찾고, 일의 새로운 모습을 상상할 기회 말이다. 청년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왜 사람은 일해야 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지 고민할 시간이 생길 것이다. 청년이 즐겁고 행복하게 일하면 일자리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일자리 창출을 청년에게 맡기자. 청년에게 꿈과 열정을 돌려주자. 청년의 꿈과 열정은 사회에 필요한 덕목이지, 기업에서 착취당할 요소가 아니다.

 

각주

1) 우리나라의 청년 니트 개념은 성별, 나이, 공백기간 등을 이유로 취업이 되지 않아 결혼을 하거나, 공무원 시험, 고시 준비를 하는 경우를 통칭한다. 즉 취업 포기형이라 해서 근로 의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주희진·주효진, 2017) 

  2) 김무성 열악한 알바,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라”, 프레시안, 20141226,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2769, 2017116일자 확인.
3) 주당 노동 ‘52시간합의휴일수당 할증률·유예기간 이견, 한겨레, 2017321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787456.html, 2017118일자 확인.
  4)데이비드 프레인, 일하지 않을 권리, 동녘, 2016, p.121
  5)돈보다 꿈 우선한 청년 사장이 더 성공했다, 조선경제, 201775,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04/2017070403428.html, 2017116일자 확인.
  6)대한민국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공시족급증, 서울신문, 2017108,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71009023006&wlog_tag3=naver#csidx668bd4622971f2c930b2bd92e4b898b, 2017116일자 확인.
  7)경제학에서 금전적 소득을 얻는 모든 활동은 노동으로 지칭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말인 이 유급 노동을 포함하여 인간의 전반적인 활동을 지칭하는 개념이므로 굳이 구분해서 쓰지 않으려 한다. 이 글에서 노동은 작업 행위를 표현하는 말로 쓰였다. 금전 소득을 얻는 활동은 유급 노동으로 표현했다. ‘일할 권리유급노동과 관계없이 의미 있는 활동 전체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의도를 담기 위함이다.
  8)마르크스, 경제학-철학 수고, 강유원 옮김, 2006. p.89
  9)에바 일루즈, 감정자본주의, 김정아 옮김, 2010. 심리학이 발전하면서 감정을 대상화·측정하고 평가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20세기 중반에 의사소통능력이 뛰어나고 갈등을 잘 조절하는 사람이 중간 관리자를 맡으면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서비스 산업이 발달하자 특정한 감정 상태가 생산성과 관련이 깊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기업은 특정한 감정 상태를 가진 사람을 찾기 위한 검사 도구를 개발했는데, 바로 인성검사(적성검사). 이 검사는 개인의 생산성을 판단하기 위한 것으로, 감정이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한 수단 중 하나임이 드러나는 사례다. 이러한 역량은 감정 지능으로 불리며, IQ와 같이 사람을 계층화, 서열화하는 새로운 도구가 되었다. 감정은 중간 계급에 진입하는 문화자본이자 사회자본이라는 것이 에바 일루즈의 주장이다.
  10)어떤 정책이 기본소득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보편성의 원칙과 무조건성의 원칙을 충족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보편성의 원칙이란, 기본소득 지급 대상이 시민권에 기초하여 자격이 부여되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 규정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로 시민권을 보편적으로 적용하는 경우와, 둘째로 성남시 청년수당처럼 시민권을 특정 생애주기 등으로 제한해서 적용하는 경우이다. 무조건성의 원칙이란 유급노동 참여 여부, 소득 수준, 가구 형태, 사회적 기여 여부와 무관하게 기본소득이 주어져야 한다는 원칙이다. 따라서 장애수당이나 실업수당, 기초생활수급자 생활비 지원정책은 기본소득이 아니다. 특히 실업수당은 면접을 보거나 취업교육을 받는 등 근로 의사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받을 수 있으므로 무조건성의 원칙에 위배된다. (백승호, 기본소득 실현을 위한 기본소득 모형들: 무엇이 기본소득이고 무엇이 아닌가?)
  11)손애성(2017), 성남시 청년배당정책은 어떻게 만들어졌나-당파성 이론을 중심으로, 아세아연구, 601, 52-102p.
  12)성남시, 2015, 성남시 청년배당 실행 방안 연구, 성남: 성남시 정책기획과

참고문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청춘의 가격, 사계절, 2017

데이비드 프레인, 일하지 않을 권리, 장상미 옮김, 동녘, 2016

버트런드 러셀, 게으름에 대한 찬양, 송은경 옮김, 사회평론, 2013

에바 일루즈, 감정 자본주의, 김정아 옮김, 돌베개, 2010

이반 일리치,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허택 옮김, 느린걸음, 2014

지그문트 바우만,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안규남 옮김, 동녘, 2014

김성희, 2015, “박근혜 정부 노동개혁과 청년실업-정책의 도구화와 반복되는 실패에서 벗어나기”, 노동연구31, pp.5-37.

백승호 외 2, 2016, “한국의 불안정 청년노동시장과 청년 기본소득 정책안”, 비판사회정책52, pp.365-405.

손애성, 2017, “성남시 청년배당정책은 어떻게 만들어졌나-당파성 이론을 중심으로”, 아세아연구, 601, pp.52-102.

주희진·주효진, 2017, “우리나라 청년실업자들의 유형 및 특성에 대한 연구-청년패널조사 자료를 중심으로”, 한국인사행정학회보16권 제2, pp.51-73.

 

 

논문 부문 심사평

박준상 교수(철학과)

황민호 교수(사학과)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을 전공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어떤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그 문제를 정식화해서 제기하는 것, 그리고 그 문제가 향해 있는 방향과 귀결점을 제시하는 것이다.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전공생들의 경우, 자신의 전공이 이런저런 텍스트 및 이론을 잘 숙지하고 정리하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물론 그러한 작업도 중요하지만, 최초이자 최후로 중요한 것은 어떤 문제를 탐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글쓰기 능력이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고 여러 외국어를 할 수 있고 아무리 지식이 많다고 할지라도 그 모든 역량이 글쓰기로 수렴되어 표현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학업의 목적과 핵심을 놓치게 되고 만다. 이번 이당 논문상 심사위원들은 그 두 가지 점을 염두에 두고 심사에 임했다.

김완희의 헤겔의 절대정신과 아랍 민주화와 민예람의 그들은 어떻게 신천지에 빠지게 되었는가-라캉의 이론을 바탕으로는 각각 고유한 문제의식을 잘 드러냈지만, 미리 정립된 하나의 이론(헤겔의 이론이나 라캉의 이론)의 틀에 관건이 된 현실의 사건(아랍 민주화 운동이나 신천지)을 끼워 맞추려는 시도였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전신형의 도덕적 평등의 정당성에 대한 고찰 - 인간의 존재론적 측면에 기초하여의 경우, 문장도 명료했고 논의도 논리적으로 전개되었으나, 설정된 평등의 문제가 다소 추상적으로 보였다. 양지선의 청년에게 꿈과 열정을 강요하지 마라의 문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청년 실업과 어느 정도 공론화된 청년 기본소득인데, 현재의 어두운 청년의 상황에 대한 묘사와 고발이 매우 설득력 있고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또한, 논의 전개도 매우 긴장감 있었고, 그 배면에 나타난 고민한 흔적도 뚜렷했다. 이에 심사 위원들은 이 논문을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었다. 논자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하면서, 숭실대학교 구성원들에게는 일독을 권한다.

 

 

논문 당선 수상소감

양지선(철학·11)

삶 속 모순과 맞닥뜨리는 순간 철학은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철학하기에 부적합한 삶은 없습니다. 진리는 어디에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 철학할 수 있습니다. 자기 삶의 모순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은 당사자뿐이기 때문입니다. 이 논문은 제 삶을 철학한 결과이자, 어려운 현실을 함께 겪어내는 20대에게 전하는 글입니다. 희미한 진리보다 생생한 삶을 논하고 싶었습니다. 공허한 비판보다 문제의 뿌리를 가리키고 싶었습니다. 이곳 숭실대학교에서 교수님들께 배우고 문제의식을 벼린 덕분입니다. 제게 정말 의미 깊은 상입니다. 앞으로도 눈앞의 현실에 젖어 들어 살겠습니다.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