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재인 정부는 여성 고용 정책안을 다수 내놓았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던 문 대통령의 첫 번째 도약인 셈이다. 한 명의여성으로서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이런 정책이 여성우월주의로 번질 수도 있는 역차별이라는 의견들 또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본 기자는 이와 같이 역차별이라고 주장하기 이전에 그러한 정부의 정책적 판단이 어디서 비롯되었는가를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을 하다보면 ‘유리천장’이라는 단어를 자주 볼 수 있다. 이 단어는 여성들이 충분한 능력과 자질을 갖추었음에도 ‘여성’이라는 성적 특성 때문에 승진이 비교적 어려워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하지만 근 몇 년 동안 ‘페미니즘’이라는 화제가 떠오르면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었음에도 여전히 ‘유리천장’은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다수의 여성들은 지금도 ‘워킹맘’이라는 수식을 달고 일과 가정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고, 해고당하는 것이 두려워 육아휴직을 내는 것을 고민한다. 경제활동에서 점점 멀어지는 여성들을 다시 끌어올 방법은 무엇일까.

   직장 내 성차별은 이미 우리 사회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단기간의 노력으로는 근본적인 차별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성차별적인 행동을 행하고 있는 지금, 정책적으로 여성의 사회진출을 돕는 것은 우리 사회가 진정한 평등을 위해 이행할 수 있는 첫 번째 움직임이다.

   물론 최근 지속되는 취업난에 일부 남성들은 여성들에게 취업에 대한 이점을 주는 것에 대해 역차별이라 느낄 수도 있지만 이는 다소 편협한 생각일 수 있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이 박힌 수많은 불평등을 고려한다면 사회적 정의를 우선할 수밖에 없는 정부로서 당연한 정책적 결정을 이룬 것은 아닐까? 여성과 남성 간의 임금격차, 낮은 여성임원의 비율 등이 그러한 정책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에서 손아람 작가는 역차별을 남성들이 만들어 낸 차별에 대한 차별비용이라고 칭했다. 역차별이라고 느껴지는모든 것들이 결과적으로는 차별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이미 기울어진 저울을 맞추기 위해서는 한 쪽에 더 많은 추를 올려 둘 수밖에는 없다. 역차별에 대한 반감을 가지기 전에, 우선 역차별이 생긴 이유부터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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