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여성 인권 운동의 한 전기를 가져온 1986년의 ‘부천성고문’ 사건은 부천경찰서 문귀동 형사가 서울대 학생으로 노동운동을 하던 여성 피의자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성고문을 했다고 폭로한 사건이다. 당시 전두환 정권에서는 노동운동 등을 폄하하고자, ‘성을 투쟁의 도구’로 삼았다는 발표와 함께 불기소처분과 오히려 명예훼손죄로 고소하는 등 폭로자에게 2차 피해를 가했다. 그러자 고 조영래 변호사를 중심으로 166명의 변호사들이 재정신청 등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처벌을 받게 하였다. 3류 연애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내용의 재정신청서를 읽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공부하던 법학도로서 분노를 금할 길이 없었다. 한 여학생의 희생을 각오한 의로운 행동 하나가 여성 인권의 신장뿐만 아니라 한국의 사법(司法)발전을 10년이나 앞당겼다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폭로자인 권 양과 대 화를 나눈 적이 없지만,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권 양(현재는 서울의 모 대학 여성학 교수로 재 직 중임)에게 존경과 함께 부채의식을 느끼고 있다. 강의나 강연에서 ‘여성 인권’과 ‘신체에 대한 불법행위’를 이야기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언급 하고 있으며, 그러한 부채의식에서 예링의 “권리 를 위한 투쟁”이라는 책을 번역 출간하기도 하였 다. 이 사건 후에 발생한 서울대 우 조교 사건은 우리 법학계에 ‘성희롱’의 개념을 정착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조교, 그것도 비서울대 출신의 서울대 조교였던 우 양에게 가해진 성희롱은 대법원 판결로 종결되었다. 이것을 계기로 직장 내 성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양성평등과 관련한 법이 제정되었다. 그런데 최근에 정의구현과 인권보장을 핵심 가치로 삼고 있는 검찰에서, 현 직 검사에게 가해진 성추행에 대한 서지현 검사의 폭로는 가히 메가톤급 폭발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 사회에 미투운동이 들불 처럼 번졌다. 그리고 마침내 최영미 시인의 폭로로 이어져, 소문으로만 돌던 문학계와 연극이나 방송계에서 최고 권력을 휘두르던 인물들의 민낯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다. 노벨상 후보로 추천되었던 시인이나, 연극계의 대부인 감독과 극작가, 힘깨나 쓰던 중진 배우들의 성추행 모습이 날마다 새롭게 밝혀지고 있다. 이러한 행동들에 대한 법적 사회적 책임이 강구되어야만 한다. 특히 큰 용기로 결단한 피해자들이 2차 피해를 입지 않도록 배려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미투운동이 한국 여성들의 인권 보호에 새로운 지평을 여 는 계기가 되길 빌어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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