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소제목에는 피해자의 고발 글 속 구절과 피해자를 지지하는 운동 문구를 인용했다.

  ‘#ㅇㅇ계_내_성폭력’부터 ‘#MeToo’까지,
  “나도 성폭력 피해자입니다”

  지난해 10월 중순, ‘#○○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으로 온라인이 뜨거웠다. 이 운동은 트위터에서 시작된 성폭력 피해 사실 공론화 운동으로, ‘#○○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를 단 트윗을 올리고 이를 리트윗해 트위터 내 실시간 트렌드(트위터 내에서 실시간으로 이슈가 되는 단어)로 띄우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지난해 10월 17일(화) 서브 컬처 계 내부 성폭력을 고발하는 ‘#오타쿠_내_성폭력’ 해시태그로 처음 시작됐고, 점차 △운동계 △공연계 △문단(문학계) △대학 △교육계 △미술계 △음악계 등 다양한 분야 내 성폭력 공론화로 확대됐다.

  ‘#MeToo’ 해시태그 운동(이하 ‘미투 운동’)은 해외에서 먼저 시작돼 ‘#○○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과 비슷한 방식으로 전개됐다. 국내에서 ‘미투 운동’이 시작된 것은 지난 1월 서지현 검사가 검찰청 내 성폭력을 고발하면서부터다. 현재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고발에 불을 지핀 것은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가 이윤택 연출가의 ‘연희단거리패(이하 연희단)’ 극단 내 성폭력 가해 사실을 폭로한 사건이다. 이후 연극단 중 하나인 연희단 출신 배우, 특히 △조민기 △조재현 △오달수 등을 시작으로 문화·예술계 전반에 걸친 성폭력 가해자가 드러났으며, 문화·예술계 외 다양한 분야에서도 고발이 시작됐다.

  한국 ‘미투 운동’의 시발점이 된 해외 ‘미투 운동’은 미국의 영화배우 알리사 밀라노로부터 제안됐다. 당시 밀라노는 성폭력 문제의 규모를 알리고 심각성을 일깨우기 위해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면 트위터로 ‘me too’를 써달라”고 SNS 계정에 호소했다. 이후 24시간 만에 약 50만 건의 트윗이 뒤따랐으며, 5만 3천여 건의 답장이 달렸다. 이어 ‘미투 운동’의 움직임이 가장 확산된 것은 할리우드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수많은 성범죄 가해 사실이 폭로되면서부터다.


  폭력을 낳는 위계 구조, 위계를 재생산하는 폭력
  “그는 내가 속한 세계의 왕이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지난달 21일(수) 성명서를 통해 성폭력이 관습이 되고 은폐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차별적인 사회문화 △여성혐오(misogyny, 여성을 일반화·대상화하는 등 차별하고 배제하는 문화를 가
리키는 개념)적인 남성문화 △권위적인 조직문화가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이나영 교수는 “남성 중심적인 문화 속에서 여성은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되고, 여성을 배제하는 기제 중 하나가 성폭력”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김현미 교수는 우리 사회가 표방하고 있는 사회화 과정에 문제를 제기했다. 김 교수는 “우리 사회는 좋은 시민을 키우는 사회화보다는 자신보다 약한 자를 어떻게 억압할 것인지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많은 성폭력 폭로가 이루어지고 있는 문화·예술계의 경우가 권위적인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예시다. 교수(스승)나 선배가 업계 동료, 심사위원, 비평가 등으로 이어져 이후 생계와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김수희 대표는 “그(이윤택 연출가)는 내가 속한 세계의 왕이었다”라고 표현했다. 시 ‘괴물’을 통해 고은 시인의 성폭력 가해 행위를 고발한 최영미 시인도 기득권 남성 시인의 도움 없이는 활동 지속이 어려운 문단의 구조를 지적했다. 계속해서 작품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작품에 대한 평론을 받아 인정받거나 문학상 후보에 올라 상을 수상해야 하는데, 신인 여성 문인이 남성 시인의 성폭력을 거부하거나 지적할 경우 이런 사항들을 놓치는 불이익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악습이 반복된다는 견해도 있다. 김소연 시인은 “피해자들은 경제적으로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는 지망생들인 경우가 대다수”라며 “지망생들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 한계 때문에라도 가해자의 밖으로 나올 수 없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구조가 답습되다 보니 피해자들조차 자신이 당한 폭력을 인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성폭력 반대 연극인 행동’에 소속돼 있는 오성화 기획자는 “여성으로서나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연극 제작환경에 익숙해져야했고, ‘이게 이상한 거야?’라고 질문하는 것도 오래 걸렸다”라고 말했다. 이윤택 연출가 또한 기자회견에서 “18년 가까이 진행된 관행이고, 관습적으로 생겨난 나쁜 행태라고 생각한다”라며 “(성폭력이)나쁜 일인지 모르고 저질렀을 때도 있다”라고 진술한 바 있다.

  현재 고발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사각지대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 김은실 교수는 “현재 유명한 사람들을 둘러싼 문제 제기가 이뤄지고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작은 회사·작업장 등 소규모 조직에서는 성폭력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일상에 편재된 권력을 성찰하지 않고는, 문제 제기하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폄하하고 그들을 주변인으로 계속 머물도록 만드는 사회 분위기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피해자의 침묵을 조장하는 것들
  “가해자에게 치욕을 증언자에게 명예를”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인 이선경 변호사는 “대한민국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게 되면 사법적 구제 절차를 밟거나 가해자가 속한 조직에 징계를 요청할 수 있도록 법제도가 완비돼 있음에도 피해자들이 공식적인 창구가 아닌 ‘미투’ 대열에 합류하고 있는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투 운동이 활발해진 이유 중 하나는 법이 해결수단으로 작용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인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성폭력 범죄가 보도될 때마다 빠지지 않는 것이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와 ‘무고죄’다.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의 경우 지난달 2일(금)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에 폐지 요청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던 사안이다. 무고죄의 경우 온라인상에서 폭로전의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이번 운동의 한계로도 지적되고 있다. 근거 없이 폭로를 막을 수단이 없고, 이에 희생되는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할 가능성 때문이다. 본교 법과대학 이지은 교수는 “개인에 대한 무분별한 명예훼손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라며 “단지 특정 주제, 즉 성폭력에 한해서 무고죄와 명예훼손죄를 부정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가 피해자를 대하는 방식도 피해자들을 침묵하게 한다. 전국 성폭력상담소협의회 배복주 상임대표는 “조직 내에서 피해여성은 자신이 겪은 성적 침해, 성적 괴롭힘, 성폭력 경험을 말할 때 ‘다른 의도’를 의심 받고, 자신을 ‘꽃뱀’으로 몰아가는 주변인의 시선과 맞서야 하고, 가해자의 역공에도 단단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만화가 민서영은 “나의 피해 사례는 불행 포르노(흥미를 끌기 위해 자극적으로 소비됨을 비유하는 표현)로 소비되기 좋은 것들로 가득하기 때문에 ‘#MeToo’ 관련 인터뷰 요청을 모두 거절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나를 피해자1로, 만화가 A씨라는 피해자 포르노에 소비하지 말라”며 “나는 미디어가 원하는 순결한 피해자가 아니고, 나의 피해 사실은 미디어의 도구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피해자들의 2차 피해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박우성 영화평론가는 “고은이나 이윤택을 찾아가 해명을 요구하는 언론을 보지 못했다”며 “대개의 언론은 피해자에게 전화해 피해 상황을 질문하기에 바쁘다”고 지적했다. 언론을 비롯해 가해자보다 피해자에게 집중되는 성폭력 사건이 미래의 가해자를 안심하게 하고, 피해자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구조를 재생산 한다는 견해다. 또한 서울경제 신다은 기자는 지난달 22일(목) 배우 J씨의 성폭력에 대해 폭로한 후 피해자가 누군지 알려달라는 J씨의 전화를 5차례나 받았다. J씨는 친했다는 스태프를 거론하며 “이 사람이냐”고 묻고, 피해자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려달라고 말했다. 신 기자는 사설을 통해 “밤 늦은 시간 휴대폰을 붙잡고 피해자의 두려움을 간접적으로나마 실감했다”고 밝혔다. 지난 1일(목) MBC 뉴스데스크 박성호 아나운서는 클로징 멘트를 통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사과하고자 연락하는 것도 2차 가해에 해당한다”며 “그걸 사과라 부르는 것도
가해자 중심의 사고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해자 폭로가 계속되며 민·형사상 처벌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우선 처벌 가능 여부를 따지기 위해서는 각 개별 사건으로 따져보아야 한다. 이때 처벌 여부에 주된 영향을 끼치는 것은 △친고죄 규정 폐지를 기준으로 언제 발생한 사건인가 △고소 기간이 초과됐는가 △피해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가 등이다. 친고죄는 범죄의 피해자 또는 기타 법률이 정한 자의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범죄를 뜻하며, 지난 2013년 6월부터 폐지됐다. 성폭력 피해 발생 시점이 친고죄 규정이 폐지되기 전이라면 피해자의 고소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피해자의 고소가 있거나 친고죄 이후에 발생한 사건이더라도 경우에 따라서 고소 기간이 만료됐을 수 있다. 또한 앞선 조건을 모두 만족하더라도 피해 사실을 입증할 수 없다면 처벌할 수 없다. 지금까지는 김해 극단 ‘번작이’의 조증윤 대표가 지난 1일(목) 유일하게 구속됐다. 또한 지난달 28일(수) 이윤택 연출가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피해자 16명이 공동변호인단 101명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소장을 접수해 귀추가 주목된다.

  그럼에도 계속:
  “피해자의 침묵으로 유지되는 평화는 필요 없다”

  미투 운동이 큰 파장을 일으키며 피해자들을 위한 사회적·제도적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25일(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앞 인도에서는 연극·뮤지컬 관객 3백여 명이 ‘#WithYou’ 집회를 열었다. 관객들은 가해자들이 무대를 만들고 무대에 오른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피해자들의 폭로를 지지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집회를 개최했다. 관객들은 이날 집회에서 “성폭력은 실수가 아니다”, “예술가는 무대 위로, 범죄자는 감옥으로 가라”라며 연극계 내부 변화를 촉구했다.

  지난달 26일(월) 문재인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미투 운동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라는 말을 하는 등 정치권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은 “피해 사실을 폭로한 피해자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하며 미투 운동을 적극 지지한다”며 “사회 곳곳에 뿌리박힌 성폭력을 발본색원한다는 자세로 유관부처가 범정부 차원의 수단을 총동원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부는 지난달 27일(화) 여성가족부 장관을 가족위원장으로 해 성희롱·성폭력 근절 대책을 세우는 범정부협의체(이하 협의체)를 구성했다. 협의체는 이번 달부터 100일간 공공부문 성희롱·성폭력 특별 신고 센터를 만들어 피해 신고를 접수받고, 필요시 가해자를 수사기관에 신고하거나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 징계 수위를 높이고, 성희롱으로 징계된 공무원은 관리자 보직 선발에서 제외되는 제도 도입을 검토하는 등 성폭력 근절을 위해 노력을 기울일 전망이다.

  민주평화당은 지난 1일(목) <권력형 성폭력 근절법(총 8건)>을 발의해 지난달 28일(수)에 국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민주평화당이 발의한 주요 법안으로는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해 과태료 벌칙 대신 전과기록이 남는 징역형으로 강화하는 법안 △권력형 성폭력의 경우 업무 연관성 때문에 현실적으로 즉시 신고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공소시효 제한 규정 삭제 △공직사회 권력형 성폭력 근절을 위해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도>를 도입하고, 벌금 백만 원만 선고받아도 퇴직하도록 하는 법안 등이 있다.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윤김지영 교수는 미투 운동에 대해 “과거 문화예술계 성폭력 고발이 주로 수습생 등 사회적 지위가 확고하지 않은 여성들이 주도했다면, 서 검사 이후의 폭로는 계층적으로 높은 여성들이 동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 같다”며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적으로 착취당할 여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지은 교수는 “가해자의 높은 사회적 위치와 권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영향력 아래에 있던 피해자들은 심각한 수준의 성범죄조차 은닉하고 피해를 감내해야 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피해자들이 이러한 무형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 이번 운동의 가장 긍정적인 효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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