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교 단과대, 장기자랑 강요 논란에 휩싸이다. 

  지난달 23일(금), 대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서 자신을 본교 소프트웨어학과에 신입생으로 밝힌 익명의 글이 게시됐다. 글 작성자는 “새내기 새로 배움터(이하 새터)를 신청한 뒤에야 장기자랑이 필수인 것을 알게 되었다. 장기자랑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공지가 있었다면 새터에 참가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장기자랑에 불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선배의 어투와, 장기자랑의 상품을 기대하는 듯한 선배의 말에 새터를 취소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이 글을 시작으로 “새내기를 위해 만들어진 새터에서 오히려 새내기만 힘들다”, “선배들이 장기자랑을 직접적으로 강요하진 않아도 강압적인 분위기를 생각하면 반강제나 다름없다”는 글이 에브리타임과 페이스북 페이지 ‘숭실대학교 대나무숲’에 연달아 게시되며 새내기들의 새터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다.
 
  이에 새터를 주관한 인문대와 경제통상대 학생회 등 일부 단과대 학생회는 “새터에 대한 신중하지 못한 판단으로 문제가 불거졌다”며 사과의 뜻을 담은 댓글을 달았다. 또한 소프트웨어 학생회장은 “새내기분들이 지적한 점들에 대해 사과드린다”며 “새터에서 장기자랑 프로그램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 이를 대체할 행사를 찾지 못해 그대로 진행했다”고 밝혔다.
 
  매년 2월, 전국의 대학가는 ‘새터 주의보’
 
  올해 본교는 ‘새터 장기자랑 강요’로 논란을 빚었지만, 선후배간의 위계질서를 바탕으로 발생되는 ‘새터 논란’은 본교에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다. 대학가는 매년 새터 기간마다 지나친 음주 강요,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술 게임, 군기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시행되는 가혹행위 등 비틀어진 음주문화와 놀이문화로 논란을 일으켰다.
 
  지난 2016학년도 건국대의 생명과학대학은 새내기를 대상으로 시행된 오리엔테이션에서 ‘25금, 몸으로 말해요’라는 게임을 진행해 논란을 빚었다. 당시 게임을 직접 경험한 건국대의 한 신입생은 “유사 성행위를 몸으로 표현하는 선배들에게 충격을 받았다”,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함이겠거니 하고 그 상황을 넘겼지만, 이후엔 높은 수위의 러브샷을 시키는 선배들이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과 껴안고 그러는 게 너무 싫었다”며 불만을 표현했다. 건국대는 지난해에도 상경대학이 주최한 오리엔테이션에서 선배가 후배의 가슴과 허리를 만지는 성추행을 일어나 물의를 빚었다. 연세대의 글로벌인재학부에서도 신입생을 대상으로 러브샷 3단계(여자가 남자의 무릎에 앉아 술을 마시는 게임), ‘산 넘어 산’(이성간의 스킨쉽을 유도하는 게임) 등의 선정적인 술 게임을 진행했고, 지난해 한양대의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과는 새내기에게 선배의 내신, 첫키스 장소 등을 외우게 하고, 틀릴 때마다 술을 마시게 하는 게임을 진행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새터에서는 ‘군기’를 잡는다는 명목 아래 각종 가혹행위가 발생하기도 한다. 지난해 연세대 작곡과는 새터 첫날밤 새내기들을 모아 선배들이 만족할 때까지 FM을 외치도록 했다. ‘FM’이란 야전구호를 뜻하는 군사용어로, 학과 구호에 자신의 학번과 이름을 붙여 큰 소리로 말하는 자기소개 방식이다. 만약 선배가 만족하지 않을 때면 폭언을 들어야만 했다. FM이 끝난 뒤에는 선배들을 웃기기 위해 개인기를 선보이고 술을 받아야 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대학가의 어긋난 음주문화와 놀이문화, 선후배간의 위계질서가 권력관계로 자리 잡은 대학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에 성균관대 사회학과 구정우 교수는 “소위 대학 내 ‘젊은 꼰대’는 군대문화가 변형돼 나타난 것”이라며 “군대를 가지 않은 학생들도 오랫동안 이어진 조직 내 집단주의적 문화를 받아들이면 이 같은 행동을 당연시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 내 인권 문제에 대한 제보를 받을 수 있는 기관을 갖춘 학교는 극히 일부”라며 “잘못된 문화를 폭로하는 내부 고발자가 지속적으로 나올 수 있는 시스템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새터 음주 도중 발생하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인 언행이 논란이 되기도 한다. 술 게임에서 자주 사용되는 ‘병신샷(술 게임 도중 규칙을 어긴 경우 마시는 벌주)’, ‘게이샷(남성끼리의 러브샷)’, ‘레즈샷(여성끼리의 러브샷)’등이 그것이다. 이에 지난해 4월, 일부 대학생들은 비영리단체 ‘애칭정하기’를 만들고 ‘장애인을 비하하거나 희화화하는 언어를 조심하자’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동국대학교 총학생회와 총여학생회는 외모평가 발언, 비하와 조롱 의미를 담은 발언, 성차별적 어휘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긴 자치규약을 제정해 배포했다. 동국대 성임은 총여학생회장은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비하 발언에 대해 ‘장난인데 안 되냐’는 말이 많았지만, 지금은 ‘병신샷’은 물론 동성끼리 마시는 술을 일컫는 ‘게이샷’, ‘레즈샷’ 등까지 비하 발언으로 인지하고 삼가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평등한 새터를 위해 변화하는 대학가
  키워드는 ‘인권’

  이러한 새터의 악습을 인식한 일부 대학들은 건전하고 평등한 새터 문화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
 
  본교와 유사하게 과거 ‘장기자랑 강요’로 논란이 된 서울대는 의대·자연대·약대 등 일부 단과대를 중심으로 ‘장기자랑 프리(free)’ 선언을 진행했다. 장기자랑 프리 선언이란, 강요 없는 장기자랑을 위한 3가지 조건을 각 단과대가 성실히 수행할 것을 릴레이로 선언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선언에는 ‘장기자랑에 대해 자율적으로 신청을 받을 것, 학번·나이별 장기자랑 의무 인원을 할당하지 않을 것, 장기자랑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없어야 할 것‘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서울대 내엔 장기자랑 프로그램을 다른 프로그램으로 대체하는 단과대도 있다. 인문대는 장기자랑 시간에 새내기 영상제를 진행하고, 경영대는 직접 제작한 인권 관련 동영상을 시청하는 등 새터 프로그램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되고 있다.
  
서울대학교 ‘장기자랑 프리 선언’에 동참한 약학대 학생회가 교체한 학생회 페이스북 페이지 프로필 사진 사진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학생회 페이스북
 
  또한 소수자 인권 침해논란에 대해 서울대 인문대는 ‘어울림/페미니즘’ 교육을 통해 내부에서 인권 침해 문제를 논의하는 프로그램을 정착시켰고, 총학생회는 학내 인권센터와 함께 ‘학생회 대표를 위한 서울대 인권학교’라는 이름의 인권 관련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작년 동국대는 새터 기간 동안 ‘인권 팔찌’를 제작·배부했다. 2016년에도 시행해 매우 좋은 반응을 얻었던 인권 팔찌는 술을 마시고 싶지 않거나 기타 거부 의사가 있는 신입생들을 위해 팔찌를 착용함으로써 완곡한 거부의사를 드러내도록 만들어진 팔찌이다. 4년 동안 새터에 참가했다는 동국대 재학생은 “술자리에서 인권 팔찌의 효과가 좋았다”며 “인권 팔찌를 찬 신입생들에겐 선배들이 자발적으로 술을 물이나 음료수로 대체해주었다”고 말했다.
 
동국대학교 ‘인권 팔찌 프로젝트’에서 받은 인권 팔찌를 차고 있는 동국대 학생들 사진 동국대학교 공식 페이스북
 
 
  올해 2월, 한양대의 공대 학생회는 새터 기간 동안 ‘여성주체’라는 직책을 만들었다. ‘여성주체‘란 명찰을 달고 다니는 학생들을 지정해, 새내기들이 술자리에서 겪는 고충을 쉽게 털어놓을 수 있도록 도운 것이다. 해당 학생회 여성주체·인권홍보 담당인 이태림(21)씨는 “최근 성폭력 이슈가 커지고, 한양대에서 발생한 사건들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새내기들에게 안심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고려대 △성균관대 △건국대 또한 총학생회 주최의 인권·안전 교육 실시, 평등한 공동체 지향을 내용으로 한 선언문 발표, 성희롱 예방·안전 관련 매뉴얼을 제작했다. 고려대 문과대학은 페이스북에 ‘아니라면 아닌 거지’라는 페이지를 만들어 새내기를 대상으로 직접 새터에 대한 의견을 받기도 하고, 건전한 새터 문화를 만들기 위한 카드뉴스나 동영상을 제공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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