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독일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도시 함부르크

  나는 독일이 좋다. 독일을 좋아하다보니 전공도 아닌 독일어 수업을 12학점이나 수강했다. 지금도 독일 여행이 다른 나라보다 수월한 이유는 그 때 익혔던 독일어가 크게 한몫하기 때문이다. 독어 강독 시간에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상어가 사람이라면>을 읽어나가면서 권력자들의 사악한 행태에 경악(驚愕)했었다. 국가에 순응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교육받았던 내게 브레히트의 작품들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마르크스주의자로 낙인찍혀 조국인 독일에서 덴마크로 망명하고, 미국에서도 도망쳐야 했던 브레히트는 아직도 나에게는 괴테와 실러 이상의 작가다. 성인이 된 후 독일맥주 마니아가 되고 독일 사람들의 정확함에 감동받기 훨씬 전부터 난 독일을 동경했었다. 단명(短命)했던 나치의 독일이 아닌 나에게 비판적 사고의 힘을 키워준 브레히트의 독일을.

  통일 독일의 수도 베를린과 옥토버 페스트(Oktoberfest)가 열리는 뮌헨은 독일에 도착하면 우선적으로 가려고 계획했던 도시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내려서 ICE를 타고 제일 먼저 방문한 곳은 독일 제 1의 항구도시 함부르크였다. 기록과 계획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도 있듯이 1990년대 초반의 베를린은 통일의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현상 때문에 왠지 치안 문제가 걱정되었고, 맥주의 도시 뮌헨으로 처음부터 내려가면 하루 종일 호프브로이 하우스에서 맥주에 탐닉하다 다른 도시 여행을 포기해야 할 거 같은 얄팍한 느낌이 나를 흔들었다. 구차한 변명을 더하자면 ‘햄버거’의 어원이 함부르크에서 나왔다는 그럴듯한 설명과 분데스리가의 전설적인 명문팀 ‘Hamburg SV’가 그 순간에는 더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여행 중 내 발성기관을 통해 터져나오는 ‘함부르크’는 언어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소리’일 뿐이었는데, 그것도 그럴 것이 현지 사람들은 모두 ‘함부억’이라고 발음했기 때문이다. 독일어에 관한 한 함부르크에서의 좌절감은 참으로 큰 것이어서 나는 몇 년 후에 실제로 독일로 어학연수를 오기까지 했다. ‘함부억’은 정말 ‘억소리나는’ 충격이었고 언어적 트라우마로 현재까지 남아있다. 그리고 언어는 현지에서 부딪치며 배워야 한다는 것이 내 철칙이다.

  항구도시는 내륙도시보다 한결 진보적이고 자유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뮌헨을 필두로 한 바이에른(Bayern)주에 속한 남부 도시들에서는 뭔가 폐쇄적인 그들만의 리그가 있는 것 같았고,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가 형식적이라는 기분이 많이 들었는데 함부르크 사람들은 짙은 저지(低地)독일어 사투리와 함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우리 집에 와서 문을 두드리라”고 말하는 것 같은 태도를 보여주었다. 멘델스존과 브람스가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것이 더 의미 있게 다가오고, 부조리에 대한 비판기사로 유명한 시사주간지 슈피겔(Spiegel)의 본사가이 도시에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 같다.

  함부르크시의 정식 명칭은 ‘자유와 한자도시 함부르크(Freie und Hansestadt Hamburg)’이다. 자유와 여러 나라가 동맹한 ‘Hansa’의 도시답게 함부르크는 독일을 더 독일답게 만드는 자유도시다. 나는 미래학자는 아니지만 난민에게 문을 닫는 독일보다는 문을 여는 독일이 결과적으로는 더 발전한다는 것에 한 표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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