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에서 만 19세 이상의 성인 6천 명과 초등학생(4학년 이상) 및 중·고등학생 3천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7년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갈수록 떨어지는 종이책 독서율과 독서량과 더불어 독서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도 줄어드는 것으로 보인다. 17년 조사결과에서 자기 독서량이 ‘부족하다’는 의견은 성인 59.6%, 학생 51.5%로 과반수다. 허나 자기 독서량이 ‘부족하다’라고 답한 성인은 ’11년 74.5% → ’13년 67.0% → ’15년 64.9% → ’17년 59.6%로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반대로 ‘만족한다’라는 의견은 증가하는 추세로, 독서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자책 이용자가 증가했다고는 하나, 이들을 대상으로 한 통계에 따르면 주로 모바일을 통해 웹소설을 보기 위한 것으로 드러났다.) 독서율 감소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짐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아직도 ‘책을 읽지 않는 사회’가 얼마나 중대한 문제인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하기만 하다.

  시카고 대학의 경우, 아무리 책을 읽지 않는 학생들이라도 책을 읽을 수 밖에 없도록 하는 대학 제도로 문제를 해결했다. 시카고 대학은 1890년 미국의 석유재벌 록펠러에 의해 설립된 이후, 1929년까지 이 학교는 소위 그저 그런 학교에 지나지 않았다. 시카고 대학이 책읽는 대학으로 변모하게 된 것은 1929년 서른의 나이에 시카고 대학의 5대 총장이 된 로버트 허친스가 시카고 플랜을 도입하면서부터다. 시카고 플랜의 요지는 ‘인류의 지적 유산인 철학 고전을 비롯한 각종 고전 100권을 달달 외울 정도로 읽지 않은 학생은 졸업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은 대공황의 후유증으로 경제상황이 혼란스럽고 취업난도 심각했기에 시카고 플랜 도입초기에는 학생들의 저항은 물론 교수진의 반응도 회의적이었다고 한다. 취업에 도움되는 학문이나 직업훈련을 시키는 것에 집중해도 부족할 판에 뜬금없이 무슨 인문고전을 읽히냐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허나 허친스 총장은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고 시카고 플랜을 관철시켜나갔다. 시간이 흘러 어떤 결과가 나왔는가 하면 시카고 대학은 1929년을 기점으로 2014년까지 8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고 현재 최고의 명문대학 중 하나로 세계에 이름을 떨치고 있다. 고전에는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고, 고전을 통해 지성을 계발하고 이성을 훈련시키는 것이 참된 교육이라는 허친스 총장의 교육신념이 꽃을 피운 것이다. 시카고 플랜은 학생들에게 인문고전의 내용을 외우라는 암기식 독서법이 아니다. 고전을 읽으면서 자기만의 질문을 찾고 같은 책을 읽은 다른 학생들과 토론하는 방식의 독서법을 요구한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시카고 대학 학생들은 인문고전을 읽으면서 인문고전의 저자인 위대한 사상가들의 사고능력을 물려받게 된다. 그 결과 시카고대학 학생들은 누군가에 의해 제시된 문제와 그에 따른 답이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문제와 자기만의 답을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 ‘독서의 위기’라느니 ‘인문학의 위기’라느니 자극적이고 과장된 표현으로 책을 읽길 호소해봤자 독서를 왜 해야 하는지, 독서를 통해 내 삶에 어떤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지에 대한 비전이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책을 집어들지 않는다. 내가 생각해보지 않았던 영역의 것을 독서를 통해 체험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어보는 문화를 만드는 것. 우리가 시카고 대학의 성공과 시카고 플랜에서 배워야할 점이 단순히 독서목록만은 아닐 것이다.

이상혁(문예창작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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