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유에서건 본교의 구성원이 덜 됐구나. 청소노동자들의 생활을 밀착 취재하던 이번 주 내내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다른 무엇보다도 인식의 차원에서 그러하다.

  우선 본교의 구성원들 중 학생, 교수,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청소노동자들 역시 숭실의 이름을 빛내는 것에 기여하는 하나의 구성원이라고 여기는 이는 얼마나 있을까? 특히 학생들 중 대부분은 청소노동자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을 꺼릴 만큼 그들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청소노동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같은 벤치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빤히 쳐다보거나 옆에 다가오는 것을 꺼려하는 학생들이 다수 있는 듯했다. 만약 학생이나 교수가 옆에 앉았더라도 그러한 거부의 행동을 취했을지 의문이다.
 
  심지어 직원들 역시 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물론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학교의 입장을 취재하는 과정에서는 관리팀 직원들은 ‘여사님’이란 존칭을 사용하거나 자신들도 최대한 노력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직원들에 대해 의문을 품은 것은 그러한 겉면적 태도가 아니다. 청소노동자들의 식사하거나 몸을 쉬이는 휴게실에는 여느 학생회실이나 강의실, 혹은 직원들이 생활하는 사무실처럼 이름표가 붙어 있지 않았다. 그들이 어느 곳에서 생활하는지 외부에 보이는 게 부끄러웠기 때문이었을까? 혹은 이름표를 붙이는 데 드는 틀림없이 적은 비용이 아까워서였을까? 그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교내 3주체와 동격으로 존중한다면 이와 같은 소외가 있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러한 기존 구성원들의 의도한 혹은 의도치 않은 소외 탓에 노동자들 역시 스스로를 외부인 마냥 생각하고 만다. 캠퍼스 내에 있는 벤치에 앉는 것도 망설이고, 학생들과 마주하는 것을 피하려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처우 개선에 대해 당당히 요구하는 것조차 망설인다.
 
  이에 생각해보아야 할 따름이다. 살피재 고개에 자리잡은 우리 숭실 캠퍼스의 아름다운 전경을 매일 같이 쓸고 닦는 것은 누구인지 말이다. 과연 우린 누구의 덕으로 쓰레기 없는 복도를 거닐고, 맑은 창문으로 풍경을 내다보는지 곰곰이 생각해본다면 아마 쉬이 누군가를 꺼리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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