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대한 어머니 신사임당과 위대한 아들 이율곡이 태어난 오죽헌

  일본의 오천엔 지폐에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천재 여류소설가 히구치 이치요(樋口一葉)가 인쇄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의 오만 원 지폐에는 한국 사람이면 모두가 동의하는 위대한 어머니 신사임당이 있다. 신사임당은 안견(安堅)에 필적하는 화가, 그리고 문인, 수필가로도 그 명성이 대단하지만 오만원권의 주인공에 선정된 이유는 바로 어머니라는 이름에 방점을 찍었기 때문일 것이다. 화가나 소설가는 직업이 될 수 있지만 어머니는 직업이 아니다. 어머니는 그 자체가 위대한 역할이고 존재다. 일본의 최고액권인 만엔 지폐에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 후쿠자와 유키지(福澤諭吉)가 들어가 있는데 반해, 한국의 최고액권에 어머니의 사표(師表)인 신사임당이 등장한 것은 그 의미가 작지 않다. 하물며 신사임당의 아들 율곡 이이(李珥) 선생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위인이 아닌가. 정확히 조사해보지는 않았지만 한 나라의 지폐 중 어머니와 아들이 각각 들어가 있는 사례는 한국이 최초일 듯싶다. 갑자기 지폐의 주인공을 말하고 있지만 지금 돈보다 중요한 것은 이 도시 강릉이 위대한 어머니와 위대한 아들을 배출했다는 사실이다.

  강릉은 백두대간의 한 축을 이루는 도시다. 한반도의 허리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강원도는 한국에도 있지만 북한에도 많은 부분이 걸쳐 있다. 한반도가 분단된 이후 북한의 행정구역 이름은 생소하게 변하였지만 강원도는 한국과 북한이 동시에 같은 이름으로 부른다.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강원도의 이미지와 북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강원도의 그것은 비슷한 것일까. 남북한이 같이 부르는 강원도의 강릉에 너무 신선해서 머리가 텅 비어 버릴 것 같은 바닷바람을 맞으며 도착했다.

  강릉에 와서 제일 먼저 갈 곳은 오죽헌(烏竹軒)으로 정했다. 학창시절 교과서에 많이 등장하여 친숙한 오죽헌이 이렇게 가까이 있었는데 나는 왜 외국의 도시들만 칭송하며 떠돌았는지. ‘검은 대나무 집에서 훗날 십만양병설이라는 탁견(卓見)을 제시한 아이의 뛰노는 모습을 상상하며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율곡은 오죽헌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성장하여 학문을 시작하는 이들의 기본서 격몽요결(擊蒙要訣)을 집필하였다. 물론 이 책은 오죽헌에 있다.

  강릉 중앙시장에서 감자전과 도토리묵을 먹고 있자니 옆 식탁의 여행객으로 보이는 사람이 강원도는 강릉의 자와 원주의 자를 따서 만들었다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랑 전혀 상관이 없지만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발성하는 소리는 가끔 큰 가르침을 준다. 왜 이 말이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을 채웠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원주도 조만간 가고 싶어졌다. 여행 중에 스쳐지나간 사람들은 종종 내게 중요한 지리 선생님이 된다.

  이제 평창올림픽과 패럴림픽의 감동은 모두 끝났지만, 행사 기간에 강릉에서 공연하고 응원했던 북한 동포들의 마음에 이 도시가 오래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강릉의 음식과 자연, 신사임당과 이율곡을 생각하면서 언젠가, 그러나 의외로 빨리 다가올 것 같은 조국 통일의 그날을 위대한 강원도의 대표도시 강릉에서 생각해 본다. 강릉과 서울에서 들었던 노래 가사 백두와 한라가 서로 손을 잡으면 삼천리가 하나 되는그날을 차분하게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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