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구성원들은 사회가 제시하는 이상, 즉 사회적 가치관에 부합하는 사람과 부합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뉜다. ‘사회적인’ 사람은 주변의 인정을 받으며 사회에서 그 지위를 공고히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사회에서 배제당할 우려가 있다. 이렇게 힘을 지닌 강자와 그렇지 않은 약자가 나타난다. 그런데 힘을 가지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약자를 억압하지는 않는가?

  사실 자신이 힘을 가졌는지, 그 힘으로 약자를 억누르지는 않는지 판단하긴 어렵다. 개인은 여러 모습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회는 다양한 가치를 중시하므로 개인은 자신이 그 가치에 부합해 힘을 갖는지 파악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사회 구성원들은 자신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 파악하고 약자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약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본인의 일상적인 사고방식과 행동으로도 약자를 억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예로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에게 가지는 편견을 들 수 있다. 비장애인들 중엔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 보는 이들이 있다. 이번 2018평창동계패럴림픽 홍보 기사에도 ‘장애를 극복하고 새로운 희망을 꿈꾼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사고는 장애를 삶의 일부로 여기면서 살아가는 장애인들을 억압할 수 있다. 비장애인들의 관점에서 장애인들의 장애를 ‘극복’해야 하는 존재로 여기는 것은 장애를 불행한 것으로 규정한다는 뜻이며 장애인들의 삶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어서다. 그러므로 사회 구성원들은 사회에 약자가 존재한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자신이 사회에서 어떤 힘을 갖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나아가 자신이 힘을 가졌다면 약자를 이해하고 그들의 입장을 고려하며 힘을 사용해야 한다.

  세계 인권 선언문도 다음과 같이 언명한다.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 적 또는 기타의 견해,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또는 기타의 신분과 같은 어떠한 종류의 차별이 없이, 이 선언에 규정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향유할 자격이 있다. (…후략…)” 

  평등한 사회를 위해 모든 사회 구성원들은 약자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고 약자에게도 힘을 부여할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공동체적인 힘이 생기며, 곧 ‘나’뿐만 아니라 ‘우리’도 힘을 갖게 된다. 자신의 힘을 활용해 ‘우리’에게 힘을 주는 사회, 다른 이들에게 힘이 되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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