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연구가 활발한 이성애자 커플의 사례를 중심으로 작성됐다.

  봄이 시작됐다. ‘봄’ 하면 떠오르는 것은 벚꽃, 그리고 연애다. 또한 ‘대학 생활의 꽃은 연애’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연애는 대학가의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 잡았다. 많은 대학생들이 연애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과팅 △소개팅 △미팅 등 연애를 위한 수많은 자리도 마련되고 있다. 그리고 그 연애에 따라오는 것은 단연 데이트와 섹스다. 연애와 데이트, 그리고 섹스. 대학생들이 향유하고 있는 이 문화는 어떤 모습으로 어떤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을까.

 

  연애와 데이트

  요즘 젊은 세대는 이른바 ‘N포 세대’로 불린다. ‘N포 세대’는 경제적·사회적 상황으로 인해 여러 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세대를 가리키는 신조어다. 본래는 ‘3포 세대(연애·결혼·출산)’, ‘5포 세대(3포에 내 집, 인간관계 추가)’였으나, 이것이 확장돼 이보다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세대를 가리켜 N포 세대라고 부르게 됐다. 다양한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이미 연애를 하고 있는 청년들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과거에는 남성이 데이트 비용을 더 많이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져 왔으나, 점차 데이트 비용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됐다.

  온라인 리서치 기업 마크로밀 엠브레인이 지난 2016년 10월 10대에서 50대 사이 남녀 천 명을 대상으로 한 ‘데이트 비용 관련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데이트 비용을 누가 더 부담해야 하냐는 질문에 △남녀가 똑같이 내야 한다: 남성 31.6%, 여성 34.8% △여유 있는 사람이 모두/더 많이 부담해야 한다: 남성 27.8%, 여성 37.2% △남자가 많이 내야 한다: 남성 35.2% 여성 23.4%와 같이 응답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여성은 ‘경제적으로 더 여유 있는 사람이 모두/더 많이 부담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이 가장 높았지만, 오히려 남성은 ‘남자가 여자보다 좀 더 많이 내야 한다’는 응답이 가장 높았다는 지점이다. 이에 남성이 스스로를 ‘맨박스’에 가두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맨박스’란 가부장제 아래에서 남성에게 씌어지는 억압, 즉 남성이 남성다울 것을 강요하는 프레임을 의미한다.
 

  여전히 사회·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가부장제 타파가 핵심 과제라는 해석도 있다.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이나영 교수는 “여성의 경제참여율이 아직 남성과 동등하지 않은 것이 데이트 비용 부담이 불균등한 현실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명절 노동이나 육아처럼 가부장제적 전통이 채 바뀌지 않아 여자가 부담해야 하는 미래의 가사노동에 대한 가치가 현재 데이트 비용에 반영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신경아 교수는 “현재는 남자가 모든 경제활동을 하고 의사결정권을 가졌던 전통적 구조에서 서서히 양성평등 체재로 바뀌어 가는 과도기”라며 “지금은 남자가 70%를 부담하더라도 곧 60%, 50%로 균형을 잡아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 외에도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지속됐던 관습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우리나라 문화에서 연장자와 연소자가 식사할 경우 연장자가 돈을 내는 문화가 자리 잡혀 있는데, 남녀 커플의 경우 남성이 연상인 경우가 많아 이러한 데이트 비용 문화가 정착했다는 해석이다. 또한 여성의 매력과 남성의 경제력을 등가 교환한다는 성차별적 인식이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마크로밀 엠브레인의 설문조사에서 ‘외모가 준수한 애인을 만나기 위해서는 데이트 비용을 좀 더 많이 부담해야 할 것 같다’에 긍정한 응답자는 여성 14.6%, 남성 27.8%로 남성이 두 배가량 높게 나타났다.

  지금 당장 데이트 비용이 부담스러운 연인들이 택하고 있는 방법은 데이트 통장이다. 최근 데이트 통장을 사용하는 연인이 늘어나면서 데이트 통장에 최적화된 통장 서비스도 개발되고 있는 추세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안이환 교수는 “돈은 사람의 관계를 종속 관계로 만드느냐 독립 관계로 만드느냐를 결정짓는데 남녀 관계도 예외가 아니다”라며 “경제력에 차이가 있어 5대 5의 비율로 비용을 지출하는 것이 힘들더라도 서로가 일정 부분 지출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해 데이트 통장 사용을 권장했다.

  한편 또한 1985년 데브라 프리드먼 등에 의해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데이트 비용 지불 문제는 남성의 섹스에 대한 합의를 왜곡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데이트 강간에서 남자가 모든 데이트 비용을 부담했을 때가 여성이 데이트 비용을 나누어 부담했을 때보다 ‘강간이 정당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강하게 나왔다. 지난 2010년 수잔 바쏘 등에 의해 발표된 논문에서도 남성은 비싼 데이트를 할수록 여성에게 섹스를 기대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연애의 그림자, 데이트 폭력

  경찰청이 지난 2016년 3월 발표한 ‘데이트 폭력 집중 신고기간 1개월간 운영 결과’ 자료에 따르면 데이트 폭력 피해자의 성별은 △여성: 92% △남성: 4.1% △쌍방: 3.9%로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또한 경찰청이 집계한 데이트 폭력 검거 인원이 2014년 6천 7백여 건에서 2016년 8천 4백여 건으로 큰 폭 상승해 데이트 폭력 범죄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시 데이트 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데이트 폭력 피해자의 60% 이상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응답해 실제 데이트 폭력 피해자는 더욱 많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에 최근 여성들 사이에서는 ‘안전이별’이라는 신조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추세다. 지난 1월 30일(화) 서울시가 서울 거주 여성 2천 명을 대상으로 데이트 폭력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1,770명(88.5%)가 데이트 폭력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서울시는 세부적인 데이트 폭력 사례를 △행동통제 △신체적 폭력 △성적 폭력 등으로 분류했다. 행동통제 사례로는 ‘누구와 있었는지 항상 확인했다’가 62.4%(중복응답)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옷차림 간섭 및 제한’이 58.8%로 뒤따랐다. 신체적 폭력에서는 ‘팔목이나 몸을 힘껏 움켜잡음’이 35%로 가장 높은 응답 비율을 보였다. 성적 폭력에서는 ‘원하지 않았는데 몸을 만짐’이 44.2%로 가장 높았다. 데이트 폭력 피해 비율이 높게 나타난 반면 전체 응답자 중 69.5% 이상의 응답자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여성의 대부분이 ‘데이트 폭력을 경험했다’고 응답할 정도로 데이트 폭력이 심화되고 있고, 이에 대한 인식 수준도 높아지고 있지만 법적인 조치는 미비한 실정이다. 가정폭력의 경우 가정폭력범죄특례법에 따라 출동한 경찰관이 격리 조치할 수 있지만, 데이트 폭력은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가정폭력방지법의 대상 범죄에는 가족 구성원 간의 폭력만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박남춘 의원이 지난 20대 국회에서 데이트 폭력 방지법을 발의했으나, 아직 데이트 폭력과 관련된 아무런 법적인 조치가 없는 상황이다.

  해외의 경우 데이트 폭력을 법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미국은 1994년 제정된 ‘여성폭력방지법’을 통해 데이트 폭력을 여성 폭력으로 규정해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정폭력에 적용하던 ‘보호명령’ 제도를 스토킹과 데이트 폭력에도 확대 적용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2013년 ‘가정폭력 방지법’을 개정해 가정폭력의 범위에 데이트 상대까지 포함시키도록 했으며, 영국은 ‘가정폭력 정보공개제도’를 시행해 데이트 상대의 폭력 전과를 공개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데이트 폭력 가해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소유욕”이라며 “상대방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유물로 보는 인식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한 “상대를 설득해서 바꿔보겠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며, 가해자가 전문가의 치료를 받아야 하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피임 거부도 데이트 폭력의 일종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며 피임을 여성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나 잘못된 피임 방법 사용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2014년 서울대보라매병원 비뇨기과 박주현 교수팀이 발표한 ‘한국여성의 성생활과 태도에 관한 10년간의 간격연구: 한국 인터넷 성별 설문조사 2014’에 따르면 남성 콘돔 착용률은 11%에 불과했다. 이는 35.2%로 나타났던 2004년에 비교해 오히려 줄어든 수치다. 2011년 여성들이 주로 사용한 피임 방법으로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인 것은 질외사정(61.2%), 생리주기 조절(20%)이었다. 그러나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피임생리연구회 홈페이지에서는 피임 방법으로 △자연주기법(생리주기 조절법) △먹는 피임약 △콘돔 △불임수술 △살정제 △응급피임약 등을 다루고 있고, 질외사정은 아예 피임 방법으로 다루고 있지 않다. 또한 자연주기법의 경우 “주기법을 통한 피임은 실패율이 매우 높으므로 임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임신이 되더라도 분만이 가능한 경우에만 이 주기법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권고하고 있다.

  한편 미국 시애틀 워싱턴 대학교의 스테파니 페이지 교수 연구진이 부작용이 거의 없는 남성용 경구피임약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해 보다 안전한 피임 방법이 생길 전망이다. 여성용 경구 피임약은 부정출혈이 흔한 부작용으로 여겨질 정도로 크고 작은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돼 왔지만, 이번에 개발된 남성용 경구피임약의 부작용은 여성용 경구피임약에도 나타나는 체중 증가 외에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기존 남성용 경구피임약 후보 물질들의 경우에는 몸에서 빠져나가는 속도가 너무 빨라 하루에 2회 이상 복용해야 효과가 있었으나, 이번에 연구된 피임약은 해당 단점을 보완했다. 남성용 경구피임약은 5년 내 시판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개방되는 성 문화,
  뒷받침돼야 할 교육은 부족


  개방된 성 문화로 첫 성 경험 연령이 낮아지고 있고, 많은 학생들이 연애를 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 성은 여전히 ‘숨겨야 할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의 별칭이 무색하게, 대학 내에서는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 △혐오표현 사용 등의 고발이 계속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간호과학대 하주영 교수는 “성은 개인적인 성향보다 사회문화적인 교육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성인이 된 이후부터는 의무적으로 이수해야하는 성교육이 없고, 청소년기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성교육은 현실에 동떨어져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교육부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발간한 ‘제13차(2017년) 청소년건강행태온라인조사 통계’에 따르면 전체 청소년 중 ‘성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학생은 5.2%였다. 그러나 성 경험 학생들 중 피임 실천율은 49.9%로 절반 이하에 그쳤다. 또한 ‘섹스’, ‘콘돔’ 등의 단어는 대형 포털의 연령 제한에 따라 청소년기 학생들이 검색 결과를 조회할 수 없어 정보를 얻기 어렵다. 그리고 ‘네이버 지식인’과 같은 질문 플랫폼이나 여성 전용 커뮤니티 등에는 성관계와 관련된 다양한 고민이 올라오지만, 온라인 공간을 벗어나면 정보를 얻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네이버에 '콘돔'을 검색한 결과

  이러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것은 성교육이지만, 지난 2015년 교육부에서 공개한 ‘학교 성교육 표준안(이하 성교육 표준안)’에 많은 문제점이 발견돼 사실상 성교육이 유명무실한 상태다. 남성들은 폭력적이고 본능적인 것을 ‘남성성’으로 인식하게 되고, 여성들은 수동적이고 성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여성성’으로 학습하게 되면서 성 문화를 지배해온 가부장제와 남성 중심적인 문화를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송인자 교수는 “가부장적·남성중심적 문화도 캠퍼스 성범죄 발생의 원인”이라며 상대방의 성적 결정권을 존중하고 배려하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지적이 시작된 이유는 성교육 표준안에 ‘여성은 무드에 약하고 남성은 누드에 약하다’와 같은 문구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또한 “남성의 성욕은 여성에 비교해 매우 강하다”는 성차별적 사고를 그대로 반영했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한채윤 활동가는 “남성이 성욕이 강한 본능임을 학습한 남성들은 자신의 성욕은 순수한 본능이며, 그러한 남성을 유혹한 여성이 잘못된 것이라는 억울함을 주장하게 된다”라며 “남성이 누드에 약하다는 것을 배웠으니 여성은 남성을 자극하지 않도록 복장을 주의하라는 요구를 받게 되는데, 이는 결국 성폭력에 대한 해석을 뒤바꾼다”라고 분석했다.

  교육부는 비판이 거세지자 지난해 새 표준안을 배포했으나, 여전히 남성은 모험적·경쟁적이며 여성은 민감하고 다정하다는 등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서술이 남아 있어 논란이 됐다. 또한 성폭력 피해자가 되고 싶지 않으면 확실히 싫다고 말하라는 등 성폭력 문제를 피해자의 대응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도 문제나 성소수자 관련 정보는 전혀 담지 않았다는 등의 문제가 반복해서 제기됐다. 수정안에도 비판이 거세자 교육부는 올해 하반기까지 개편안을 마련해 자문회의와 공청회 등을 거쳐 의견을 수렴하기로 했다. 이 과정을 거쳐 내년 상반기에 확정해 보급할 예정이다.

  성교육 표준안은 개편되지만, 입시 등의 이유로 성교육이 터부시되는 현실에서 제대로 된 성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의 여부는 불투명하다. 서울대학교 성희롱성폭력상담소의 하혜숙 전문위원은 “우리나라의 교육 환경상 청소년기가 대학까지 유예되며 중·고등학교 때는 자아나 성 의식 형성을 고민할 기회가 제대로 없다”며 “그렇기 때문에 중·고등학교 때 성교육보다 대학에서의 성교육이 더 중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푸른아우성 이충민 교육팀장은 “대학에서는 생식기와 성교에만 초점을 맞춘 성교육이 아니라 사회에서의 성 역할, 성 평등, 성차별, 성폭력, 성 소수자 문제 등에 심도 깊은 교육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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