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전 11시에 타종하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르 대성당

  체코의 프라하는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와 더불어 동유럽을 대표하는 관광도시다. 동유럽을 여행했다는 사람이 이 두 도시를 방문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그건 코끼리의 발톱을 만지면서 코끼리가 이렇게 생겼을 것이라고 왈가왈부(曰可曰否)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것이다. 프라하와 부다페스트 는 압도적인 아우라로 동유럽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도 미도(美都)로 통한다. 그러나 큰 나무의 그림자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들풀 같은 곳도 많다. 큰 나무가 태양을 독점하며 계속 그 잎사귀를 뻗어나갈 때 들풀은 은은한 향기를 발하며 소리 없이 그 자리에 존재한다. 


 나는 체코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라고 하지만 규모 면에서 프라하와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도시 ‘브르노(Brno)’ 에 세 번이나 갔었다. 지금이야 스마트폰의 지도 앱을 켜고 작은 촌락의 구석구석까지도 탐험해나갈 수 있지만 25년 전에는 공항에서 받은 종이 지도 한 장을 들고 ‘묻지마 관광’ 내지는 ‘닥치고 여행’을 하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우연히 방문한 도시가 브르노였다. 도시를 대충 둘러본다면 2시간도 안 걸리는 아담한 도시 브르노. 물론 브르노가 작다고 하면 서러워할 몇 십 채의 집이 전부인 마을도 많지만 말이다.

 체코는 크게 두 지역으로 나뉜다. 동부 지역을 보헤미아(Bohemia)라 부르고 서부 지역을 모라비아(Moravia)라고 한다. 보헤미아를 대표하는 도시는 단연 프라하이고, 브르노는 모라비아 왕국의 수도였다. 두 지역의 분위기는 사뭇 다른 것이어서 나의 관점으로는 보헤미아가 자유롭고 경쾌하고 항상 움직이는 것이라면, 모라비아는 안정적이고 색깔로 말하면 단색(單色)이며 온화해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보헤미아에서 맛좋은 체코 맥주에 들떠 있었다면 모라비아에서는 아로마 향기에 힐링받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공부를 통해서 안 사실이지만 프라하가 행정 수도라면 브루노는 문화와 교육의 수도라고 한다. 이 도시에서 느낀 나의 감정이 책에 묘사된 것과 그다지 다른 것은 아니어서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새롭다. 이런 좋은 기분이 비엔나에서 한 번, 프라하에서 두 번이나 이 도시로 향하게 했던 것 같다.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수줍은 표정의 청소년과 어린이를 볼 수 있었는데, 프라하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색다른 매력이었다.

 도시의 중앙에 우뚝 솟아있는 모라비아를 대표하는 건축물 성 베드로 와 성 바오로 대성당(Cathedral of St. Peter and St. Paul)은 일반적인 성당과는 다르게 타종을 오전 11시에 한다. 30년 전쟁 당시 이 지역을 침공한 스웨덴 군대가 정오까지 브르노를 점령하지 못하면 공격을 중지할 것이라고 만용(蠻勇)을 부렸는데, 브르노의 시민들은 오전 11시에 타종을 함으로써 무시무시한 바이킹 후예의 군대를 속였다고 한다. 비록 정정당당한 방법은 아니었지만 브르노는 전쟁에서 살아남았다. 도시란 모르고 보면 2시간이면 끝나지만 알고 보면 며칠도 모자란다.

 절대적으로 큰 것에 눌려서 명성은 덜하지만 스토리와 콘텐츠만큼은 전혀 뒤지지 않는 소도시를 찾아 떠나는 것이 내 여행의 시즌 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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