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 이름이 명망가의 곰 사냥에서 유래한 세계문화유산 베른
 

 

 

  스위스의 도메인은 ‘SW’일 것 같지만 ‘CH’로 표기된다. 보통 도메인은 국명(國名)의 이니셜을 따라 만들어지는데, 예컨대, 한국은 KR이고 프랑스는 FR로 부르는 식이다. 그런데 스위스는 이런 공식 아닌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스위스의 정식 명칭은 아직도 라틴어인 ‘Confederatio Helvetica’이다. 우리말로 하자면 ‘헬베티카 연방’ 정도가 될 것이다. 헬베티카 연방의 이니셜을 따서 도메인은 CH가 되고 스위스 프랑은 SF가 아닌 CHF로 쓰게 된 것이다. 사실 스위스는 다언어국가로서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어, 그리고 로망슈어가 혼용된다. 그래서 독일어로 Schweiz, 프랑스어로 Suisse, 이탈리아어로 Svizzera, 로망슈어로 Svizra로 불린다. 어쩌면 CH는 국가의 구성원 모두를 만족시키는 중립적인 이니셜일 것 같다. 중요한 것은 국토면적이 대한민국의 절반보다도 작은 스위스가 연방제 국가라는 것이다. 스위스의 작은 주들은 국방과 외교에 대한 권리만 없을 뿐 모두 동등한 지위를 누린다.
 
  한창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고산병 증세를 융프라우요흐에서 실감하고 베른 주의 주도이며, 스위스 연방의 수도 베른(Bern)으로 이동했다. 베른은 독일어로 곰을 뜻하는 Bären에서 나왔는데 이 도시를 건설한 체링겐(Zähringen)가문 사람들이 사냥에서 처음 잡은 동물이 곰이어서 베른이라고 명명(命名)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구시가의 끄트머리에 곰 공원(Bärengraben)이 있다. 심오해야 할 것 같은 도시 이름이 사냥한 동물의 이름에서 나왔다고 하니 좀 허탈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도시 안에 6천 평방미터라는 작지 않은 면적을 곰을 위한 공원으로 조성했다는 것이 존경스러워졌다. 우리라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더 놀라운 것은 곰 공원 안에 살고 있는 곰은 모두 네 마리로 ‘동물복지’까지 실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베른은 도시 자체가 문화유산이다. 어떤 단체가 몇 년도에 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는 사실과 상관없이 ‘문화유산스러워’ 보이고 내가 심사위원이라고 해도 문화유산으로 지정했을 것 같이 아름답다. 베른 시내에는 100여 개의 분수가 각기 다른 스토리텔링을 뽐내며 서있는데 주의 깊게 본 것은 ‘모세의 분수’, ‘식인귀의 분수’, ‘백파이프 연주자 분수’다. 모든 일에서 은퇴를 하고 나서 베른의 모든 분수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말로 써보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빅맥지수(Big Mac Index) 1위 국가답게 패스트푸드를 먹어도 우리 돈으로 2만 원 가까이 되어서 제대로 된 레스토랑에 들어가는 것이 꺼려지는 스위스였지만 이 도시에서는 고풍스러운 풍경을 즐기며 스위스의 대표 음식 퐁뒤(Fondue)를 먹고 싶어졌다. 녹은 치즈가 마치 각각 다른 지역의 주가 연방의 형태로 단합하는 스위스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찍어 먹는 재료가 각기 다른 맛을 내는 것을 느끼면서 스위스 안에 존재하는 다양성을 생각했다. 다행히도 10만 원 정도 나올 것을 각오하고 찾았던 퐁뒤 식당이었지만 맥주와 함께 3만 5천 원 정도밖에 나오지 않아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겨울철에 가서 곰 공원 근처에 있는 장미정원(Rosengarten)을 즐기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언젠가 곰이 사는 스위스 연방의 수도 베른에 가족과 함께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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