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뿐만 아니라 장년층에게도 술기운을 빌려 연애를 시도해보는 일은 낯설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최근 ‘연애를 위한’ 주점의 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는 것은 과연 바람직한지 재고해야 한다. 우린 제정신으로 가장 기본적인 욕망조차 채울 수 없는 사회에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대학생들을 비롯한 청년들에게 클럽이나 헌팅주점 등의 사교적 공간은 매우 익숙하다. 홍익대학교나 건국대학교 등의 대학가 인근에도 그러한 술집이 다수 위치해 있으며, 항상 그 유흥가의 주변은 인파가 흘러넘친다는 점에서 주점의 시장 규모는 작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때 주목해야 할 점은 넘치는 인파 속에 거의 모든 청년들이 한 번쯤은 합류해봤다는 것이다. 물론 술을 마시기 위해서나 마음 편히 놀기 위해서일 수도 있지만 그 중 많은 청년들이 연애를 위해서 유흥가를 찾곤 한다.
 
  하지만 그러한 술집은 바람직한 연애를 만들기 위해 적합한 곳인가? 적어도 멀쩡한 정신으로 스스로의 연애 대상을 찾기는 어려운 곳이다. 어두운 공간에서의 지나치게 화려한 조명은 눈을 현혹시키고, 시끄러운 음악은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없게 하며, 술기운은 정신마저 온전치 못하게 한다. 이에 연애는커녕 범죄의 공간이 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청년들이 연애를 위해 그러한 공간으로 떠나는 이유는 아마 현실의 각박함 때문일 것이다. 주변에 있는 이성에게 관심을 쏟을 만큼의 여유조차 갖기 어려워 인위적인 사교장을 찾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인 것만 같다. 주변인들의 매력을 발견하기 어렵지 않은 상황이라면 굳이 멀리 돌아갈 이유가 있겠는가? 심지어 주중에도 ‘인파’를 이룰 만큼의 수많은 청년들이 말이다.
 
  이에 앞서 말한 것처럼 연애를 위한 주점의 시장 규모가 커지는 일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그저 청년들이 예전과는 다른 순정적인 사랑에서 벗어났다는 것에 눈을 맞출 것이 아니라 왜 청년들이 그처럼 어두운 공간으로 틀어박히게 됐는지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변태적인 연애 혹은 성욕 때문만은 아닐 테다.
 
  주점에서 만난 연인들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연애도 아름답다. 하지만 그것이 주류 문화가 되고, 곧장 미래 세대에게 물려줬을 때 전혀 부끄럽지 않을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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