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실대학의 모태가 되는 숭실학당의 옛터가 평양성에 위치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북한의 국보 1호인 평양성에서도 가장 중심에 위치한 내성에 자리를 잡았다는 점은 평양의 심장부에서 숭실이 비롯되었음을 말해준다. 베어드 선교사의 평양 사저에서 13명의 학생으로 시작한 ‘숭실학당’의 처음은 어찌 보면 초라하게 보였을 수 있었겠지만 120년이 지난 지금 숭실의 모습을 보면 가히 한 산맥을 이루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한국 사회 각계에 자취를 남기고 있다. 한국 유일의 이산 대학으로서 2000년도에 평양 캠퍼스 복원 계획을 세울 정도로 뿌리를 찾으려는 강한 열망을 보였던 우리로서는 ‘평양 숭실’ 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를 다시금 새길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한 뿌리 찾기 차원을 넘어 숭실이 또 다른 100년을 위한 발전과 도약의 계기가 될 것이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회가 온다면 반드시 이뤄야 할 꿈으로 지니고 있어야 한다. 현재 한국 대학이 이전에는 겪지 못했던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고자 다각도로 자구책을 모색하는 현실에서 ‘평양 숭실’은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돌파구가 될 수 있 다. 숭실의 현재 상황이 그에까지 신경을 쓰기에 다소 어렵다 하더라도 적어도 ‘평양 숭실’ 복원에 대한 청사진은 시간이 걸린다 해도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

  남북으로 분단된 상황에서 우리의 열망이 국내외 정세라는 예측하기 어려운 환경에 좌우된다는 어려움이 있지만 꾸준히 준비하고 기다리다보면 뜻밖의 순간에 기회가 오기에 언제라도 그 순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 준비되어 있어야 하며 그 순간을 포착하는 지혜와 기민함이 필요하다. 꾸준히 두드리다 보면 닫힌 문은 언젠가는 열리고 바람이 아무리 거세다 해도 언젠가는 잠잠해지며 사방이 칠흑처럼 캄캄한 밤이라서 아무 희망도 보이지 않는 듯해도 해는 다시 떠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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