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1912년 평양부 신양리 중북부 지적원도(국가기록원 소장)
[지도] 1912년 평양부 신양리 중북부 지적원도(국가기록원 소장)

 과거 본교의 전신 ‘숭실학당’이 북한의 국보 1 호인 평양성에 위치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난 3월, 한국기독교박물관의 연구에 의해 숭실학당의 첫 번째 터가 평양성 내성에 위치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평양성은 현재 북한의 국보 1 호로, 그중 가장 중심에 위치한 내성은 숭실학당이 자리를 잡을 당시 관아와 시가가 집중된 곳이 었다. 한국기독교박물관의 연구에 따르면 숭실 학당은 평양성 내성의 서문(西門)인 보통문 동북쪽에 위치한 장로교 선교기지 내 사택에서 시작 됐으며, 이후 학생 수가 증가함에 따라 교지를 확장시켰다.

  1897년 10월,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인 베어드는 장로교 선교기지 내 사저 사랑방 교실을 열었다. 그 사랑방 교실은 장로교 선교사들의 선교 거점이었던 보통문 동북쪽에 위치했다(<지도>의 노란선). 1900년 정규 중학과정을 시작한 숭실학당은 학생 수가 증가함에 따라 평양부 신양리 39번 지에 추가 부지를 마련하고 교사를 신축, 교지를 정비했다(<지도>에서 붉은선으로 표시된 곳이 신양리 39번지). 그 면적은 2만 3천 819평에 이르렀고, 교지 왼편에는 ‘숭실 농장’을 마련해 돈사, 통조림 공장 등을 운영했다(<지도>의 푸른선). 이후 규모가 남쪽으로 점차 넓어져 1938년 폐교 당시에는 <지도>의 붉은 점선까지 확장됐다.

  그러나 일제의 강압에 의해 숭실대학은 숭실전문학교로 개편됐고, 폐교인가서를 교부받음으로써 평양 숭실은 자취를 감췄다. 이후 숭실전문 학교의 부지는 대동공업전문학교에서 잠시 사용하다가, 1945년 일본의 식민지배에서 해방된 후에는 북조선 노동당 중앙당으로 이용됐다. 하지만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사회주의 도시로의 건설과정에서 숭실의 건축물은 사라졌다.

  현재 평양의 중심지를 위성으로 살펴보면 숭실 캠퍼스가 위치했던 곳 동북쪽에는 모란봉의 을밀대와 부벽루가 남아있으며 동남쪽엔 김일성 광장이, 동북쪽엔 만수대의사당과 김일성 동상이 위치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연구를 진행한 한국기독교박물관 한명근 팀장은 “오래전부터 평양 숭실 캠퍼스의 정확한 위치를 찾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며 “최근 러시아 대사관에서 숭실전문학교의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고, 이제는 평양 숭실 캠퍼스의 위치를 정확하게 규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자료를 조사해보기로 했다”고 밝혔다.

   오는 27일(금)에 열릴 ‘2018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일각에서는 65년간 지속된 정전 협정이 한반도 평화협정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에 한국기독교박물관은 “최근 통일에 대한 기대가 한층 높아지고 있다”며 “숭실대학교는 통일시대의 통일대학을 준비하며 과거 평양 숭실의 부활을 꿈꾸고 있고, 이를 위한 첫 과제는 평양 숭실의 옛 터를 확인해보며 영광스러운 숭실의 발자취를 되새기는 일”이라며 이번 연구의 의의를 밝혔다.

  한편 지난해에는 과거 평양 숭실 캠퍼스 부지 남쪽에 위치한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관에서 숭실전문학교 농학과 숭실전문학교 2회 졸업식 기념 수석이 발견되어 언론에 공개된 바 있다.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