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수많은 기적이 등장하지만 그중 압권은 하나님의 은사(恩賜)를 받은 모세가 홍해(紅海)를 갈라 동족을 구한 기적일 것이다. 우리가 ‘모세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이 ‘충격적 사건’은 과학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한 힘을 보여준 기적 중의 기적이다. 한때 우상처럼 여겼던 배우 찰톤 헤스톤(Charlton Heston) 주연의 영화 <십계>에서 홍해의 물이 좌우로 갈라지고 노예였던 유대인들이 이집트 군대의 추격에서 벗어나는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초등학교 때 동네 극장에서 봤던 이 영화를 통해 나는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이 진정한 믿음이라는 집안 어른들의 가르침 위에 ‘보고 믿는 믿음’도 중요하다는 의견을 살짝 올려놓게 되었다. 비록 영화 속 장면이었지만 정말 저렇게 바다가 갈라졌다면 그것은 위대한 힘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음을 자각했다. 하나님의 힘은 때로는 인간이 만든 기술로 그럴듯하게 재현되어 신앙심을 더 돈독(敦篤)하게 만들기도 한다.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 홍해의 관문 에일랏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 홍해의 관문 에일랏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난 시점에 나는 네덜란드 룸메이트와 홍해 여행을 계획했다. 해발 826 미터의 스코푸스(Scopus)산 위에 건설된 캠퍼스에서 조망하는 겟세마네 동산과 예수님 눈물교회의 광경은 예루살렘 밖으로 나를 좀처럼 내몰지 않았다. 해조(海藻)가 풍부하여 물의 색깔이 붉은빛을 띤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홍해로 드디어 예루살렘을 벗어나 떠나는 이유는 단 하나, 모세의 기적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싶어서였다. 이스라엘의 최남단에 위치하고, 요르단의 아카바(Aquba)항이 저 멀리 보이는 홍해의 관문 에일랏(Eilat)에 도착했다. 예루살렘에서 무려 네 시간이나 걸렸는데 누가 이스라엘을 작은 나라라고 했던가.
 

  구약 성경에서는 ‘엘시온 게벨’로 불리우고 솔로몬 왕의 무역항이었던 에일랏. 이스라엘은 중동 지역에 있어서 일 년 내내 더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예루살렘의 겨울은 상당히 추워서 눈이 올 때도 있다. 그러나 이 도시는 나의 외투를 금방 벗어버리게 만들었다. 사시사철 수영을 즐길 수 있는 휴양도시로 유명하지만 에일랏은 이스라엘과 아랍의 평화협상이 수없이 이루어졌던 ‘협상의 도시’이기도 하다. 좋은 기후는 성공적인 협상에 영향을 미치는 주된 요소다. 해변에서 옷을 훌러덩 벗어던진 누드족들 때문에 잠시 시선처리에 곤란을 겪었던 나에게 유스호스텔에서 만난 독일 친구는 내일 반드시 볼 곳부터 알려 주었다. 모세의 기적과 가장 관련이 높은 도시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누드족이라니. 시나이(Sinai)산에서 어렵사리 십계를 가져왔던 모세가 다시 한번 십계가 적힌 석판을 내동댕이칠 것 같은 기분이 몰려오는 건 왜인지. 햇빛이 귀한 나라에서 온 룸메이트도 어느덧 모세가 개탄스러워할 홍해 해변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한국인들의 한계는 이런 상황에서 민첩하게 행동하지 못한다는 것이리라.
 
  인구가 오만 명이 채 안 되는 작은 항구도시 에일랏에서 나는 모세의 기적을 느낄 수도 없었고, 파랗게만 보이는 바다를 왜 ‘붉은 바다’라고 부르는지도 잘 이해가 안 되었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기로 기록된 1994년에 나를 이곳에 보내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이스라엘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후, 모세의 기적으로 기억되는 이 도시에 미사일이 떨어졌다. 모세의 기적이란 바다를 가르는 것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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