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부족이 아닌 부재
공감의 부족이 아닌 부재
  • 박현철 수습기자
  • 승인 2018.04.30 0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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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6일(월)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많은 모습들이 있었다. 그러나 당일 대학생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게시판에서 인기를 얻은 게시물들은 달랐다. “슬픔을 강요하지 마라.”, “공감하지 못하겠다.” “세월호는 추모하면서 천안함 사건 같은 다른 사고들은 왜 추모하지 않느냐?”, “고작 수학여행 가다가 애들 죽은 거로 왜 이렇게 유난이냐”, “배타고 놀러가다 죽은 애들이 나라 지키다 죽은 군인보다 소중한 거냐?”라는 등 익명의 가면 속에서는 실제 사회와 달리 많은 비난이 이어졌다.

  사설을 통해 “정치적인 이용은 할 만큼 하지 않았나”라며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중단을 주장하는 조선일보만 봐도 세월호 참사에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완전히 소수라고만 볼 수도 없을 것 같다. 어쩌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이렇게 되었을까. 분명 4년 전 참사 당시 우리는 모두 진정으로 분노하고 슬퍼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세월호 참사는 다른 참사들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먼저 참사 당시 정부는 무능하고 무책임했 다. 정부와 언론은 국민의 눈을 가리느라 구조는 뒷전이었으며 7시간 동안이나 컨트롤타워가 부재했다.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았고 사고 이후에도 유가족들은 진정한 사과조차 받지 못했다. 진상조사 역시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정부는 보상으로 유족들의 슬픔과 분노를 잠 재우려고 하기 바빴다. 몇몇 보수단체들이 이들에게 자식 팔아 한 몫 챙긴다는 프레임까지 씌웠다. 위로받아야 할 유가족은 비난을 받고 있었다. 천재, 그 이상의 인재였다. 불행에 순 위를 매기자는 것은 아니지만 바로 이 점이 다 른 사건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점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겠다는 것은 우리 모두 당사자가 되기 전에는 그 심정을 알 수 없기에 이해할 수도 있다. 때문에 사회는 강요한 적도, 비난의 화살을 던진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사회의 추모를 불편하게 느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당신들이 공감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유가족들은 수학여행 간 자식이 돌아오지 못하는 슬픔을, 자식을 구하지 못한 정부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면 안되는가? 자신의 언행이 타인에게 줄 고통마저도 고려할 수 없는 것이라면, 공감하지 못하겠다는 익명의 당신들은 단순히 공감하기 싫었던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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