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정적으로는 대한민국 최남단의 섬 마라도보다 멀리 있을 것 같은 남북한의 군사분계선(MDL)은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의 용산구에서 꽤 가까운 거리에 있다.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에 ‘판문점’이라고 치면 거리로는 63킬로미터가 나오고, 시간으로는 49분이 걸린다고 뜨는 것을 보면 무서운 생각마저 든다. 마치 북한군이 쏜 대포가 저 멀리에서 날아오는 것이 보일 것 같은 물리적인 거리감으로 다가온다. UN군과 북한군이 관할하는 공동경비구역(JSA)과 실향민들의 망향(望鄕)을 달래는 임진각이 있는 일대를 우리는 판문점(板門店)이라고 부르지만, 기억하기 싫은 기억처럼 판문점의 존재는 무의식적으로 뇌리에서 지워지는 것 같다.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만을 기억하는 습성이 있는데, 판문점은 분단과 잘못된 전쟁의 트라우마를 상징하는 장소로 한국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각인되었을 것이다. 굳이 분단된 조국의 현장을 애써 기억할 필요는 없는 것이니까.

 판문점의 원래 이름은 널문리였다. 정확히 말하면 경기도 파주시 널문리. 그러나 한국전쟁 휴전협상의 당사자 중 하나였던 중국이 한자로 ‘板門’ 이라는 이름을 붙여버렸다고 한다. 어감상 ‘판문’보다는 ‘널문’이 훨씬 부드러운데 왜 판문으로 붙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라가 힘이 없어지면 도시의 이름마저도 남이 일방적으로 개명(改 名)한대로 쓸 수밖에 없다. 이곳의 이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판문점이 주는 위압감 때문에 인터넷으로 찾아가며 탐구할 의욕은 전혀 생기지 않았다.

군사 분계선이 있는 판문점 내 공동경비구역
군사 분계선이 있는 판문점 내 공동경비구역

 2006년, 그러니까 평양에서 제 2차남북정상회담이 있기 한 해전, 나는 주한 덴마크 대사관의 외교관 일행과 함께 판문점 견학의 기회를 얻었다. 25인승 버스를 대절하여 편하게 이동하였고, 판문점에서 근무하는 UN군 소속 장교의 특별 안내를 받는 좋은 조건이었다. 그러나 돈을 내고 시간을 들여 혼자서 가라고 하면 절대 하지않았을 꺼림칙한 견학이었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공동경비구역 근처에 있는 평화의 집은 전혀 평화롭게 보이지 않았고, 덴마크 사람들도 서울에서 불과 50분 거리에 북한군이 상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못 믿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덴마크 사람들도 여행할 수 있는 북한에 왜 나는 갈 수 없을까라는 생각이 판문점을 더 비참한 지역으로 보이게까지 했다.

 2018년 4월 27일. 오래 전에 가봤던, 그러나 유쾌하지 않았던 판문점이 각 종매체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남북한의 정상이 이곳에서 만나는 믿기지 않는 역사적인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 다. 북한의 지도자가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군사분계선을 넘나드는 모습에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전쟁의 위협으로 ‘생존 배낭’을 사야한다고 호들갑을 떨었던 내 자신이 심히 부끄럽다. 회담의 결과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는 현재로서는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더 많은 사람들이 군사분계선을 자유롭게 왕래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언젠가 군사분계선이 없어진 판문점을 통해서 다시 이어진 남북한의 열차를 타고 평양에 있다는 숭실대학교의 옛터에 진정한 의미의 견학을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정치적인 성향을 떠나 콧등이 시큰해지는 이유는 내 마음속에서 오래 전에 자취를 감췄던 통일의 희망이 작게나마 회생하고 있어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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