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1980년대 말까지 <자본론>(Das Kapital)은 금서(禁書)였다. 이 책을 읽으면 마치 공산주의자 또는 사회주의자가 되는 것처럼 군사정권은 호들갑을 떨었고, 인쇄와 출판은 엄격히 금지되었다. 군사정권 하에서의 교육은 모든 것을 이분법(二分法)으로 나누어 사상을 통제하는 방식을 취하였는데, 예컨대, 자본주의의 적은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라는 식으로 가르쳤다. 그런 암울한 시절을 겪다 보니 아직도 자본주의의 반대말을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로 답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는 참 많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망치는 것은 사회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타락한 자본주의’임을 공부를 계속해나가면서 깨달았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여 부정한 이익을 축적하는 그릇된 모습. 이런 모습이 횡행했던 대한민국이야말로 반(反)자본주의, 반(反)민주주의 국가였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가 선정한 지난 천년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 <자본론>과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상가인 카를 마르크스(Karl Marx)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국민의 정서를 오염시키는 ‘나쁜 책’과 ‘빨갱이’로 매도(罵倒)되었다. 


  카를 마르크스는 1818년 독일의 트리어(Trier)에서 태어났다. 갈리아 제국의 수도였던 트리어는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평가받는다. 도시의 곳곳에 로마 시대의 유적이 흩어져 있는데, 모젤(Mosel)강가 근처에 마르크스의 생가도 있다. 찬란했던 고대도시 트리어를 보기 위한 것이 아닌, 트리어에 있는 그의 생가를 둘러보기 위해 이 도시에 온 것을 보면 나는 아직 왜곡된 한국 교육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일까. <자본론> 원본이 그의 생가에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원본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국제사회역사연구소(IISH)에 있다는 사실에 준비되지 못한 나의 여행을 질책했다. 


  유대인인 그는 가업(家業)인 변호사가 되려고도 했었지만, 산업혁명기의 영국 노동자들의 처참한 삶을 목도하고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독일에서 태어난 그였지만 저술 활동을 하며 생을 마감한 곳은 영국이었다. 영국의 자본주의가 적나라하게 보여준 자본주의의 부작용은 그로 하여금 ‘능력껏 일하고 일한 만큼 공정하게 분배받는 사회’를 꿈꾸게 했다. 중요한 것은 그가 꿈꿨던 세상은 내가 사는 한국에서조차 요원(遙遠)하다라는 것이다. 


  얼마 전 중국 정부는 마르크스 탄생 2백 주년을 기념하여 높이가 5.5미터에 달하는 그의 청동상을 트리어 시에 기증했다고 한다. 그러나 동상을 세우는 것이 온당한 일인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동상이 세워진 며칠 후에는 방화 사건이 일어났다고 한다. 모든 것이 합리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질 것 같은 독일 사회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 이데올로기란 사회와 문화를 규정하는 중요한 변수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단점을 극복하고 자본가와 노동자가 상생하고 협력하는 바람직한 모습의 자본주의를 보면 2백  살 된 마르크스는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해지는 노동자의 날이 있는 5월의 주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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