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촬영, 성별, 그리고 온도 차
불법촬영, 성별, 그리고 온도 차
  • 조연우 기자
  • 승인 2018.05.21 00:00
  • 호수 1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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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일(금)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사이트에는 ‘여성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성별  관계없는 국가의 보호를 요청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제기됐다. 해당 청원은 글이 게재된지 이틀만인 지난 13일(일) 청와대의 공식적인 답변을 받아낼 수 있는 20만 명을 돌파했으며, 지난 19일(토) 기준 39만여 명이 참여했다. 청원이 큰 호응을 얻으며 SNS상에서도 ‘#동일범죄동일처벌’ 해시태그 운동이 시작되기도 했다.

  청원이 제기된 배경에는 지난 2일(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누드 크로키 수업에서 발생한 불법촬영 범죄(이하 홍대 불법촬영 범죄)가 있다. 이는 한 여성 모델이 피해 남성 모델과의 말다툼 이후 피해 남성 모델의 나체 사진을 불법촬영해 여성우월주의·남성 혐오 커뮤니티 ‘워마드’에 유포한 사건이다. 이를 수사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언론과 경찰 등이 여성이 피해자인 범죄와 전혀 다르게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 청원의 기본 골자다. 청원인은 “피해자가 남성이기 때문에, 가해자가 여성이기 때문에 수사를 달리하는 국가에서는 남성 역시 안전하지 않다”라며 “누구나 범죄를 저질렀다면 벌을 받고 누구나 피해자가 되었다면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대한민국을 절실히 바란다”라고 말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이하 한사성)는 “남성 피해사례와 여성 피해사례의 다름을 이야기 하는 것은 남성 피해자에 대한 공격이나 사소화가 아니며, 어째서 지금에야 이렇게 이례적인 일 처리와 피해자 보호가 이루어졌는지는 현장 단체로서 반드시 질문을 던져야 할 지점”이라고 말했다. 또한 “홍대 누드 크로키 수업 사건의 가해자가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를 하는 동안 여성 피해자가 포르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리는 것이 현실이다”라며 “이 차이에 대해 고민하지 않은 채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라고 덧붙였다.

 

  경찰

  홍대 불법촬영 범죄가 페이스북 페이지 ‘홍익대학교 대나무숲’을 통해 공론화된 것은 지난 2일(수)이다. 서울 마포경찰서에 따르면, 경찰이 홍익대학교로부터 수사를 의뢰받아 내사에 착수한 것은 지난 4일(금)이다. 이후 경찰 측은 6일(일) 수사 단계에 전환해 당시 수업에 참여한 학생 전원과 피해자를 제외한 나머지 누드모델 등 20여 명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다. 피의자가 긴급 체포된 것은 지난 10일(목)이고, 다음날인 11일(금) 피의자의 구속 영장이 신청됐다. 피의자가 구속된 것은 영장 신청으로부터 하루 뒤인 12일(토)이다. 사건 발생 시점이 공론화 하루 전인 지난 1일(화)이었기 때문에 2주도 안 되는 단기간 내에 신속한 조치가 이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반해 한사성에 따르면 지난해 5월부터 올해 4월까지 센터에 접수된 300여 건의 피해사례 중 가해자에 대한 구속수사나 압수수색이 이뤄진 적은 한 번도 없다.

  지난 10일(목) 페이스북 페이지 ‘서강대학교 대나무숲’에는 불법촬영 범죄 피해자의 글이 게재됐다. “인터넷에 두 자리 수에 가까운 내 동영상이 돌아다닌다”라고 글을 시작한 피해자는 “나는 용의자가 한 명이었는데 조사해주지 않았다”라며 “미안하지만 우리도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한 “처벌할 수 없다고, 우리나라 법이 그렇다고 하더니 왜 이번 건에서는 일사천리인지 모르겠다”라며 “이번 사건을 조사할 수 있다면 왜 내 사건은 조사할 수 없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주민 서울경찰청장은 지난 14일(월) “경찰이 성별에 따라 수사 속도를 늦추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 청장은 “이번 사건은 범행 장소가 미대 교실이고, 학생들만 있었고, 참여했던 사람도 20여 명으로 수사 장소와 시간이 특정된 상태였다”라며 “용의자 20여 명의 휴대폰을 임의 제출 받아 수사하는 도중 피의자가 최근에 휴대폰을 교체한 사실이 확인돼 바로 피의자로 특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처벌

  홍대 불법촬영 범죄 피의자의 처벌 수위 여부도 큰 이목을 끌고 있다. 피의자의 구체적인 처분은 나오지 않았으나, 사회적으로 큰 이목을 끌었던 만큼 가벼운 처벌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여론이 크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제14조)에 따르면 불법촬영 범죄 피의자는 최대 징역 5년,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게 돼 있다. 그러나 그동안 불법촬영 피의자들이 큰 처벌을 받지 않아 만약 홍대 불법촬영 범죄 피의자가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된다면, 이 또한 차별적인 기준이 적용된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지난 12일(토)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에는 ‘홍대누드남 여자 모델 선처를 부탁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제기됐다. 청원인은 그동안 집행유예를 받은 불법촬영 범죄 사례를 언급하며 “여자 모델(홍대 불법촬영 피의자)도 초범이기 때문에 집행유예를 받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지난 2015년 12월 경기도의 한 대학 의전원생은 8개월에 걸쳐 여성 183명의 치마 속을 촬영한 혐의로 입건됐지만, 성폭력 관련 교육을 이수하는 조건으로 기소 유예됐다. 기소되지 않은 이유는 우발적인 범행으로 인정받았고, 피의자가 뉘우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당시 변호사의 소견서에는 벌금 이상의 형이 내려졌을 때 의사로서의 꿈이 좌절될 수 있다는 문구가 있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녹색당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는 지난 13일(일) 의전원생 사건과 2017년 현직 판사가 불법촬영 범죄를 저지른 후 처분이 약식 기소에 그쳤던 사건을 언급하며 “그런데 이번에는 왜 달랐는지 질문할 수밖에 없다”라며 “피해자가 남성이었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지난해 경찰청이 발표한 범죄통계에 따르면 카메라 등의 이용촬영죄 검거는 2015년 7천 4백여 건으로 97.6%의 검거율을 보였다. 그러나 기소율은 31.2%에 불과해 가해자 대부분이 약한 처벌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6년 여성변호사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서울 각급 법원에서 1심 선고된 카메라 등 이용 범죄 관련 판결 1,540건을 분석한 결과 △벌금형: 71.97% △집행유예: 14.67% △선고유예: 7.46% △징역형: 5.32%로 나타났다. 벌금형을 선고받은 경우에도 79.97%가 3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징역형의 경우 87.8%가 1년 이하의 징역을 선고받았다.

 

  2차 가해

  경찰 관계자는 이번 홍대 불법촬영 범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2차 가해자에 대한 자료수집도 병행하고 있다”라고 밝힌 바 있고, 피해자의 고소장을 바탕으로 2차 가해에 대한 수사도 함께 진행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2차 가해는 ‘2차 피해’라는 어휘로 학술 연구가 진행됐던 어휘로, 국내에서 2차 피해를 유발하는 행위자에게 초점을 맞추기 위해 ‘2차 가해’라는 용어가 대체어로 제안됐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정의에 따르면, 2차 피해는 사건이 일어난 이후 △사법기관 △의료기관 △가족 △친구 △언론 등에서 보이는 피해자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으로 인해 피해자가 입는 △정신적 △사회적 △경제적 불이익이나 피해자 스스로의 심리적인 고통을 겪는 것이다.

  대학가에서 벌어진 불법촬영 범죄에서도 2차 가해 사례를 찾을 수 있었다. 지난해 8월 페이스북 페이지 ‘서울시립대 대나무숲’에는 “자신의 집 화장실이 촬영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가해자가 우리 학교 학생”이라며 “추가 피해자가 수십 명에 이르는데 신원을 확인할 수 없어 경찰도 모든 피해자를 찾고 있지는 못하다”라는 내용의 글이 게재됐다. 해당 글이 게재된 후 학생들이 글에 이상한 지점이 있는 것 같다며 익명·실명으로 지적했고, 자작극이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됐다. 그러나 9월 같은 페이지 관리자는 “사건 당사자와 연락을 통해 실제 사건임을 확인했다”라는 내용의 공지를 게재했고, 같은 날 총학생회도 대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을 통해 “동대문경찰서에서 해당 사건이 사실임을 확인해주었고, 검찰 송치가 됐다는 답변을 들었다”라고 밝혔다. 이는 일부 학생들이 사건을 ‘자작극’으로 몰아가고, 동대문경찰서 112 종합상황실 등에 전화를 걸어 직접 진위 파악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례와 더불어 2차 가해의 유형에는 △피해자를 향한 의심 △피해자에게 범죄 발생의 책임을 돌리는 것 △가해자의 삶을 강조하는 것 △피해자다움을 강조하는 것 등이 있어 빈번하게 발생해왔다. 그러나 피해자가 직접 2차 가해를 수집해 경찰에 신고해도 처벌이 불가했던 과거와 달리 경찰이 직접 2차 가해에 대한 자료 수집까지 나선 것은 지금까지 없던 일이다.

  경찰은 고소장이 제출된 인터넷 커뮤니티 ‘워마드’ 회원 2명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는 한편 워마드 전체에 대한 강제 수사도 병행할 방침이다. 워마드 회원 2명은 워마드 상에서 2차 가해를 일삼아 모욕 혐의를 받고 있는데, 이는 워마드 전체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실제로 미국 구글 본사에 ‘워마드 관리자’의 신원을 파악할 수 있는 이메일 정보 확인을 요청했다. △불법촬영물 △‘리벤지 포르노(헤어진 연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유포한 성관계 동영상)’ △연예인 합성사진 등 음란물의 주요 유통지였던 ‘소라넷’이 17년간 제재 없이 운영됐고, 지난 2015년 워터파크 여자 샤워실 불법촬영물이 유포돼 언론이 집중 조명하면서 폐쇄된 것까지 2년을 소요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움직임이다. ‘소라넷’의 미뤄지는 폐쇄에 대해서 경찰 측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사성은 “일사천리로 수사를 진행하는 유능함뿐만 아니라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세심함 또한 인상 깊었다”라며 “피해자의 자살을 염려하는 모습도 새로웠지만, 2차 가해 증거를 직접 수집했다는 점이 특히 고무적이다”라고 밝혔다. 또한 “드디어 경찰 차원에서 2차 가해까지 신경 쓰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그동안 직접 채증을 해야 했던 피해자들과 수사 과정에서부터 수많은 2차 가해를 당하고 수사관에게 골칫거리 취급받았던 피해자들에게 큰 진보로 다가올 것으로 생각된다”라고 평가했다.

 

  언론

  지난 12일(토) 홍대 불법촬영 범죄 피의자가 포토라인에 선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포토라인은 일종의 취재경계선으로, 신문·방송사의 기자들이 취재 편의를 위해 접근하지 않기로 합의한 사진 촬영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배복주 대표는 “이미 편파수사 의혹이 번진 상황에서 피의자를 포토라인에 세운 것은 여성들의 문제 제기에 공감하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11월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제출받은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5년간 불법촬영 범죄로 검거된 1만 6천 2백여 명 중 98%에 해당하는 1만 5천 7백여 명이 남성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불법촬영 범죄 피해 사례 2만 6천 7백여 건 중 여성이 피해자인 사건은 84%에 해당하는 2만 2천 4백여 건으로 집계됐다. 남성은 2.3%, 성별 판별 불가가 13.7%를 차지했다. 그럼에도 불법촬영 범죄 피의자로 처음 포토라인에 선 것은 여성이었다.

  보도 방식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언론이 성범죄를 다뤄 온 보도 방식과 홍대 불법촬영 범죄를 다루는 방식에 차이를 보인다는 의견이다. 지난 2016년 학부형과 주민이 관사에 머물던 교사를 성폭행한 사건은 언론상에서 ‘섬마을 여교사 성폭행 사건’으로 명명됐다. 지난 2017년 남자 고등학생들이 여학생들에게 집단 성폭력을 가해했던 일이 5년 만에 밝혀진 사건은 ‘여중생 집단 성폭행’으로 보도됐다. 홍대 불법촬영 범죄와 같은 날 공론화된 여자고등학교 불법촬영 범죄는 ‘여고생 기숙사 몰카’라는 사건명이 붙었다. 그 외에도 기사 제목에 ‘짧은 옷’, ‘늦은 밤’ 등의 어휘를 사용해 피해자에게 원인을 돌리는 모습도 나타났다. 가해자의 좌절된 미래를 강조하고, 구체적인 어휘 대신 몹쓸 짓·실수 등의 어휘 사용으로 가해 사실을 삭제하는 편파적인 보도도 지속됐다.

  반면 홍대 불법촬영 범죄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언론에서 이번 사건을 가리키는 말은 ‘홍대 누드 크로키 사건’으로, 사건 이름에서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명시했다. 또한 대부분의 기사에서 △홍대 누드 크로키 몰카범 △홍대 누드 크로키 유출범 △홍대 누드 크로키 사진 유포 여성 모델 등 가해자를 확실하게 언급하고 있다. 일부 언론사에서는 ‘몰카女’라는 호칭을 사용하기도 했다. ‘OO녀’는 본래 피해자가 여성인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를 대상화하는 호칭으로 사용됐다. 또한 피해자의 잘못된 행실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기존의 언론과는 달리 피해자의 심리적 부담감이나 가해자의 가해 경위가 명시됐다.
 


  온도 차 ㅣ이향진 (문예창작·17)
 

  우선 이번 ‘홍대 불법촬영 범죄’를 둘러싼 흐름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홍대 불법촬영 범죄 건과 관련된 보도를 보면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불법촬영 범죄의 피해자였기 때문에 이 일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해결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론에서는 ‘교내’라는 특수한 상황이 빠른 일처리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홍대 불법촬영 범죄 건과 달리 용의선상에 한 명의 용의자 밖에 없었음에도 아직까지 사건이 해결되지 않았다.

 

  이번 일을 둘러싸고 경찰의 대비되는 대처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 본인이 겪은 경찰은 어땠는지에 대해서 듣고 싶다.

  내가 피해 사실을 알게 된 건 지나가던 목격자가 범행에 대해서 알려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진술서를 쓸 때 경찰이 “그렇다면 용의자를 직접 본 것은 아니지 않느냐”라고 지나가듯이 물었다.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몰래 카메라’라는 이름이 붙은 건데,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무죄추정의 원칙 등을 언급하는 모습도 보여서 오히려 피해자인 내가 취조받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홍대 불법촬영 범죄 피해자는 피해자가 자살하지는 않는지 등도 경찰 측에서 세심하게 살펴주더라. 불법촬영 범죄 피해자는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왜 그동안 도움이 더 필요하고 절실한 쪽은 외면해왔는지 모르겠다. 피해 사실을 신고할 때 절차가 복잡해 용의자를 잡을 수 있는 적절한 시기로부터 계속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홍대 불법촬영 범죄 피의자가 포토라인에 섰다. 불법촬영 범죄 피의자 중에서 최초였기 때문에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크다.

  강남역 살인사건 생각이 났다. 강남역 살인 사건은 ‘살인’이었고 이번 사건은 ‘불법촬영’이었는데 두 피의자가 똑같이 포토라인에 서서 비슷한 구도로 사진이 찍혔다. 두 사건이 비슷한 무게로 취급되고 있는 것 같아서 충격을 받았다.

  또한 홍대 불법촬영 범죄 피의자에게 기자들이 남성 혐오 때문에 범행을 저지른 것인지 묻는 것을 봤다. 강남역 살인 사건 피의자는 남성 5명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여성을 살해했는데도 모두가 그 사건이 여성 혐오 범죄임을 부정했던 것과 대조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어떤 기자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피해자의 성별이 바뀌면 많은 것들이 변하는 것 같아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번 홍대 불법촬영 범죄의 피해자가 남성이기 때문에 크게 공론화됐고, 여성 피해자에 비교해 잘 해결됐다는 여론이 있다. 

  홍대 불법촬영 범죄 건이 공론화된 날 한 캡처 사진을 봤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를 캡처와 한 포르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를 캡처를 대조해놓은 사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같은 날 한 여자 고등학교 기숙사 불법촬영 피해가 공론화됐다. 피해자도 상당히 많은 사건이었다. 포르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는 고등학교 이름부터 기숙사, 해당 지역 등 다양한 키워드가 올랐다. 남성이 불법촬영 피해자가 되자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가 되는데, 여성이 피해자가 되자 포르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가 되더라. 얼마 전 유명 유튜버가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론화하자마자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던 것도 떠오른다. 

  나는 포르노 사이트의 소재지도 잘 모르고, 몇 개나 있는지도 잘 모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래 카메라를 설치하거나 찍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분명하게 아는 건, 어디엔가 내 몸, 내 얼굴이 하나쯤 돌아다니고 있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는 체념과 고통이다. 체념이라는 감정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화가 난다.

 

  ‘체념’이라는 감정에 대해 더 자세하게 듣고 싶다. 여성들이 기본적으로 갖추고 살아가게 된다는 체념이란 무엇일까.

  청원이 올라오면서 사람들이 ‘온도 차’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이 온도 차의 결정적인 근거가 여성들이 매일 마주하는 체념이라고 생각한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여성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나는 법이 구해주지 않겠구나. 나는 법이 지켜주지 않겠구나. 나는 내가 스스로 지켜야 하겠구나. 이런 종류의 체념을 학습하게 되는 것 같다.

  이번 사건으로 표면적으로는 동일 범죄 동일 처벌로 나아가는 잣대가 생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크게 기대하지는 않는다. 느낀 박탈감이 너무 크기 때문에 지금까지 마주했던 사법 기관의 침묵과 미온적인 대응이 지속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불법촬영 범죄에 신경을 더 기울여주지 않을까하는 희망적인 전망이 아니다. 여성은 누구보다도 쉽게 범죄의 대상이 되지만, 범죄를 저지르는 순간 누구보다도 법에 입각해 다스린다는 것이다.

  국가와 법 아래에서 정의롭게,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성별 구분 없이 모두 평등하게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기울어진 잣대가 드러났고 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만큼, 앞으로는 박탈감을 느낄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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