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의 경계 표현 ‘이전/이후’ 살펴보기
한국어의 경계 표현 ‘이전/이후’ 살펴보기
  • 김영일 초빙교수(국어국문학과)
  • 승인 2018.05.21 04:44
  • 호수 1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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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자/필자가 전달하려는 내용과 의도를 청자/독자가 쉽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다면 소통은 단절되고 서로 답답함과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오해로 인해 둘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우리가 별다른 생각 없이 사용하는 단어와 표현 중에도 불명확하고 모호한 것들이 있습니다. 화자/필자는 자신이 원하는 단어와 표현을 선택할 수 있지만 청자/독자는 그럴 수 없다는 점에서 불통의 소지는 화자/필자에게 좀 더 많은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독백하는 것이 아닌 바에야 언어를 사용하는 상황 에는 항상 상대방이 존재하므로 상대방을 고려해 단어와 표현을 정확하게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경계를 포함하고 있어 두 가지 의미로 전달되고 해석될 수 있는 ‘이전/이후’를 살펴 보겠습니다.

  ‘2017년 이후’면 2017년이 포함될까요, 포함되지 않을까요? 반대로 ‘2017년 이전’이면 2017년이 포함될까요, 포함되지 않을까요? 먼저 ‘2017년 이후’는 2017년이 포함되는 ‘2017년~’과 2017년이 포함되지 않는 ‘2018년~’이 둘 다 가능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2017년 이전’도 언뜻 보기에는 2017년이 포함될 수도 있고 포함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헷갈릴 때는 ‘2017년 이후(2017년 포함)’, ‘2017년 이전(2017년 포함)’처럼 괄호 안에 정확한 시점을 병기하기도 합니다.

  답을 말씀드리면, ‘이전/이후’ 모두 기준이 되는 수를 포함하는 것이 옳습니다. 앞의 수를 포함하는 ‘이상/이하’를 떠올리시면 됩니다. 따라서 ‘2017년 이후’ 는 2017년을 포함하므로 ‘2017년~’이 되고, ‘2017년 이전’도 2017년을 포함하므 로 ‘~2017년’이 됩니다. 여러분의 직관과 배치될지 모르겠지만 2017년 12월 31일 도 ‘2017년 이전’에 포함됩니다. 그러나 실제 사용을 보면 ‘이전/이후’를 그때그때 다르게 사용하는 것 같아 주의가 필요합니다. ‘이전/이후’를 저마다 다르게 판단하다 보니 서비스 적용 기간을 놓고 고객과 기업이 유권 해석에서 차이를 보여 소송이나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한 통신사에서 고객에게 “2018년 4월 1일 이후에 가입하신 고객님은 데이터 무제한 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라는 안내문을 발송했습니다. 내가 그 통신사에 4월 1일에 가입했다면 데이터 무제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정답은 ‘이용할 수 없다’입니다. ‘4월 1일 이후’는 4월 1일을 포함하므로 3월 31일 오후 11시 59분 59 초까지 그 통신사에 가입한 사람만 데이터 무제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자격이 됩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2015년 이전에 자격증을 취득한 자는 장학금 수혜 대상에서 제외함.”이라고 안내했습니다. 내가 2015년 1월 3일에 자격증을 취득했다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정답은 ‘받을 수 없다’입니다. 어떤 수업에서 교수님이 수강생들에게 “오후 9시 이전에 이메일로 과제를 제출할 것.”이라고 안내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오후 9시 정각에 과제를 제출했습니다. 이 경우 기한 내에 제출한 것일까요, 기한이 지난 것일까요? 정답은 ‘기한 내에 제출한 것’입니다. 9시 0분 59초까지 는 ‘9시 이전’에 포함됩니다. 물론 아슬 아슬하게 내는 것보다 좀 일찍 내는 게 현명하겠지요.

  ‘이전/이후’와 형태가 비슷한 ‘전/후’ 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전’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의 풀이에 따르면 ‘전’에는 ‘이전’과 같은 뜻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전의 용례를 보면 ‘이전’과 용법이 다를 뿐만 아니라 ‘전’에 는 ‘이전’의 ‘이’가 빠진다는 점에서 ‘후’ 와 마찬가지로 기준점을 포함하지 않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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