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은 빠르게 확산돼 우리나라 정계, 스포츠계, 연예계 곳곳에 숨어있던 성범죄 사실을 밝혀냈다. 이에 힘입어 최근 페이스북 페이지 대나무숲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친족 간의 성범죄 피해를 고발하는 글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 ‘가장 가까운’ 친족 간 발생한 성범죄 피해에 대한 미투 운동이 ‘가장 늦게’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이들은 성범죄 피해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친족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줄곧 ‘너만 입다물면 된다’는 무언의 압박을 받아왔기 때문 이다. 또한 오히려 가해자를 두둔하거나 성범죄 피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피해자의 의도와 반대로 범죄 사실이 은폐되곤 했다. 이러한 이유로 실제 친족 성범죄는 신고율이 집계조차 어려울 정도로 낮아 암수율이 높은 범죄라고 한다. 가족에게 성폭력을 당한 충격과 또 다른 가족들로부터 외면 받은 상처는 오롯이 피해자의 몫이 돼버린다.

  이뿐만 아니라 친족 간 성범죄 피해가 밝혀 지지 못한 것은 친족 간 성범죄 피해자의 대부분이 인지능력이 미비한 미성년자이기 때문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발표한 ‘2016년 한국 성폭력상담소 상담 통계’에 따르면 친족 성범 죄 피해자의 55.5%가 7세 유아였고, 49.9%가 8~13세 아동인 것으로 밝혀졌다.

  오랜 세월 고통을 안고 살아왔거나 성인이 된 후 뒤늦게 알게 된 친족 간 성범죄 피해자들은 미투 운동에 힘입어 피해 사실을 고발했다. 그러나 용기를 낸 그들은 공소시효가 지나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현행법상 모든 성범죄 처벌에는 공소시효가 존재하지만 인지능력이 미비한 만 13세 미만의 피해자 및 장애가 있는 피해자에 대해 공소 시효를 배제하는 특례 조항을 두고 있다. 그러나 해당 특례 조항에는 친족 간 성범죄 피해자는 포함돼있지 않다. 결국 어렸을 적 그들의 피해 사실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나 가해자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를 받기는커녕 가해자에 대해 처벌을 할 수도 없게 됐다.

  아무 의미 없이 흘러간 공소시효 10년, 이들은 10년을 가해자와 마주하며 악몽 속에 살아 왔다. 어느 누구한테도 보호받지 못한 이들이 낸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는 그들의 아픔을 헤아리고, 공소시효 특례 조항에 친족 간 성범죄 피해자를 포함하는 등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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