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지방선거가 찾아온다. 본교생들을 비롯한 수많은 서울시민들이 최근 공약을 발표하거나 선거 유세를 펼치는 후보들에게 주목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지난 선거들에 비해 후보들의 공약에 청년에 관한 얘기가 자주 언급된다. 이는 많은 정치인들이 언급한 것처럼 지난 촛불혁명의 참여에 청년들이 앞장선 것이 영향을 줬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정치인들이 청년들을 대하는 유권자로서의 대우에 안주할 때는 아니다.


  그들의 많은 청년 공약들이 취업 얘기에 국한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 청년들은 취업하고 돈 버는 기계가 아니며, 지금 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어른들 못지않게 복잡하고 고달픈 문제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개중에는 가령 연애 문제 등의 개인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들도 있지만 분명 구조 속에서 불가피하게 겪게 되는 것들도 많다.


  가령 정체성 확립의 문제가 그렇다. 사회는 자본주의의 논리를 통해 수많은 주변인들과의 지나친 경쟁을 요구했고, 청년들은 피폐한 투견처럼 스스로를 갈고닦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주변의 누군가나 존재조차 알 수 없는 누군가를 따라잡기 위해 혹은 넘어서기 위해 내면으로부터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본인이 누구며 무엇을 하는 이가 될 것인가에 관한 질문은 외면해야 했다.


  이와 같은 구조 탓에 청년이 떠안는 문제들은 적지 않다. 잘 생각해보자. 우리가 흘렸던 눈물이 스스로의 무능에서 비롯됐는지, 아니면 도저히 대응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보이지 않는 잠잠한 폭력에서 비롯됐는지.


  지금이 적기다. 사회는, 또 이 나라의 대표 격인 정치인들은 드디어 청년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사회와 구조를 고발해야 한다. 지금의 청년들처럼 스스로에 대해 고민해보지 못한 아이들이 더는 생기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갓 유권자가 된 우리가 어른들의 눈을 돌려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수단은 어렵지 않다. 중요성이 줄곧 강조됐던 투표다. 누구를 뽑건 누구를 뽑지 않고 무효표를 던지건 상관없다. 청년들이 정치인들에게 얼마나 많고 적은 표를 던져 당락을 결정시킬 힘을 가졌는지 보여줘야 한다. 우리를 구하고, 우리의 동생과 후세대를 구하는 것은 이제 어른들이 아니다. 드디어 투표용지를 쥐게 된 청년들 스스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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