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영국의 일러스트레이터 조해너 배스포드의 『비밀의 정원』(원제 Secret Garden)이 성인들(주로 직장인과 대학생)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일이 있다. 『비밀의 정원』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하자면 작가가 흑백으로 그려낸 세밀화에 독자가 자신이 원하는 색을 칠하는 것으로, 어린아이들이 즐겨하는 색칠놀이의 성인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어린아이도 아니고 도대체 누가 색칠놀이 책을 사겠나 싶을지 모르지만, 조해너의 책은 출간 이후 종합 베스트셀러 최상위권에 오래도록 머물렀었고, 현재에도 누적 판매부수 수십만 부를 넘어선 스테디셀러다. 그저 흑백의 세밀화들이 담겨진 그림책에 불과한데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선뜻 지갑을 열었으며 왜 그리도 적극적으로 색칠했을까. 그것은 조해너의 책이 독자에게 그 무엇도 강요하거나 재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위 ‘자기계발서’라는 이름을 단 책들은 속도와 경쟁에 지치고, 이미 만들어진 틀에 자신을 끼워맞추느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우리에게 단 한 줌의 위로도 되어주지 못한다. ‘성공 하려면 누구처럼’ 혹은 ‘성공하려면 무엇을 해라’라는 메뉴얼은 마치 이대로만 따라하면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세상살이의 비법을 독자 개인에게만 은밀히 전수해주는 듯 그럴싸하게 쓰여 있으나 사실은 이렇게 하지 않으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너는 도태되고 말 것이라는 함의가 숨어있어 일종의 협 박에 가깝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는 사회 전반의 모든 것이 기계화·자동화된 도시문명이다. 사회 안에서 우리는 기계와 같이 합리적·분석적 특질을 지닐 것을 요구받게 된다. 개인의 개성이나 생각의 자유 같은 것은 뒷전으로 미뤄진다. 나에 대한 평가기준이 모두 타인이 정한 것이기에 자기만족보다는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을 중시하고, 혹 부정적인 평가를 받진 않을까하고 불안과 초조, 강박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자기 자신을 돌볼 마음의 여유가 없고 신경이 온통 외부에 분산된 상황에서, 남의 평가 따위 신경 쓰지 말고 그저 내 마음 가는 대로 색을 채워 나가보라는 조해너의 『비밀의 정원』은 독자에게 온전히 자기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되어주 었을 것이다. 조해너는 우리나라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책 속에 스스로를 풀어놓고 잠시나마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 바 있는데, 그녀의 바람대로 사람들이 흑백의 그림에 색을 칠하는 짧은 시간 동안이라도 마음의 평화를 찾았기에 『비밀의 정원』이 아직까지도 디지털 디톡스와 안티 스트레스를 위한 책으로 꾸준한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저마다의 내면에 간직한 ‘비밀의 정원’은 조해너가 창조한 『비밀의 정원』보다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비밀의 정원’의 주인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잊고 정원의 관리를 타인에게 맡겨두고 살았던 것은 아닌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사진이나 영상을 SNS에 올려 남들에게 ‘좋아요’를 받는 것에 집착하다보면 순전히 재미와 휴식을 위해 했던 일도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만다. 남에게 ‘좋아요’를 받는 것에 앞서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자. ‘내가 진정 이것을 좋아하는가?’, ‘이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인가’라고 말이다. 스스로에게 자기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과정은 자기 내면에 그림을 그리고 색을 채워가는 일이다.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우리는 어느 순간 자기 내면이 스스로 찾아낸 삶의 의미로 충만해져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