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서 초여름에 이르는 4월과 5월, 그리고 6월은 한국 현대사회를 뒤흔들었던 사건들이 많았다. 가까이는 온 국민의 심금을 울렸던 세월호 침몰부터 멀리는 독재정치를 종식했던 4·19 혁명, 또 다른 독재정치를 잉태했던 5·16 쿠데타, 신군부의 쿠데타를 반대하며 민주주의를 촉구했던 5·18 민주화 운동, 현충일, 그리고 근 30년에 걸친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본격적으로 한국의 민주주의를 연 87년의 6월 항쟁, 그리고 여전히 한겨레를 둘로 나누고 있는 한국전쟁 등 굵직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난 때이기에 해마다 이맘때가 돌아오면 우리의 마음가짐도 여느 때와는 다르게 된다.

  위의 역사적 혹은 사회적 사건들의 공통점은 사람들의 욕심과 그 욕심을 저지하고자 하는 두 힘의 다툼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세상사가 그렇듯 사람이 하는 일에 무한한 것이란 없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그들의 욕심으로 수많은 이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안겨 주었지만 그 그릇된 욕심을 바로 잡는 이들도 반드시 존재해 왔다. 인류 역사가 경험한 수많은 반란이나 혁명은 이처럼 소수의 횡포에 맞서 사람다운 삶을 갈구하는 다수의 강렬한 “욕심”이 바닥에 깔려 있다.

  숭실인에게 박래전이라는 이름은 낯설 수 없다. 작년 광주에서 거행된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대통령이 민주화운동 열사의 한 사람으로 “숭실대생 박래전”을 언급할 정도로 박래전이라는 이름 석자는 형 박래군과 함께 민주화와 인권을 대표하는 여러 상징의 하나가 되었다. 평범한 국문학도인 학생 박래전을 열사 박래전으로 만든 이유 역시 다수를 억압하는 소수의 횡포에 대한 거센 저항정신이었다. 세월호를 가라앉히고 독재를 가능케 한 사람의 욕심은 여전히 다른 모습으로 우리 곁에 존재한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은 그만큼 대중의 희생으로 이루어졌다는 말이지만 반대로 대중이 항상 깨어 있다면 그만큼 희생도 줄일 수 있다. 다음 달 4일(월)은 서울 올림픽이 열리기 석 달 전 학생 박래전이 광주는 살아있다며 꽃다운 삶을 마감한 지 30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 사회가 언제까지 박래전 같은 희생자를 필요로 하는 지는 우리 모두가 얼마나 과거를 되새기며 어떤 욕심을 갖고 현재를 살아가는가에 달려 있다. 다시금 그의 숭고한 뜻을 기리며 영정 앞에 옷깃을 여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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