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배신>은 미국의 교육 시스템을 논하고 있지만 그건 바로 우리의 이야기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주입하는 교육 시스템”이나 “스펙 경쟁”이라는 키워드만 보아도 그렇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자라나는 청년들에게 실패에 대한 두려움만 주입하는 것이 아니다. 대놓고 너는 실패자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생물체인 인간을 20살까지 살아온 인생으로, 그것도 대부분 부모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인생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국가적인 손실이 아닐까?).

 광기 어린 “스펙 경쟁”의 경우 저자는 주된 원인으로 “특권을 세습하려는 엘리트의 이기심”을 들고 있다. 이러한 이기심의 막강한 후원을 받아 소위 명문대에 입학한 학생들을 저자는 “똑똑한 양 excellent sheep”(이것이 이 책의 원제이다)이라고 부른다. 주어진 일은 똑 부러지게 잘하지만 절대로 독립적이지 못한 아이들이다. 이러한 아이들은 아마 대학에서도 좋은 성적을 받아 원하는 직업도 쟁취할 것이다. 때론 취업 인터뷰까지 과외 받아가면서 말이다.

 문제는 그 다음일 것이다. 이러한 “똑똑한 양”들이 사회 지도층이 되었을 때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을까? 생각과 느낌도 경험이다. 자신의 욕구에만 주목해 온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신들과 다르게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단지 하나의 사물에 불과할지 모른다. 

 저자는 멕시코 만에서 기름이 유출됐을 때 사고를 일으킨 회사의 최고경영자는 오직 자신만을 걱정했다는 일화를 들려준다. 요컨대 “미국의 지배층은 국민에게 등을 돌렸다. . . . 이들의 논리는 똑같다. 모두 자신만 안다.”라고 일축한다. 
그래서 저자는 대학이 해야 할 일을 누누이 강조한다. 바로 자기성찰 능력과 주체적인 사고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따라서 교수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학생을 엄격하게, 즉 정확하고 끈기 있으며 책임감 있고 단호하게 생각하도록 이끄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주장한다. “물질적인 만족으로 얻을 수 없는 두 가지 행복이 있는데 하나는 다른 이와 교감하고 있다는 느낌이고 다른 하나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라는 것이다.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을 찾기 위해서는 자기성찰과 주체적인 사고를 해야 하고 삶의 의미를 통해 충만한 느낌을 가지고 있는 자아가 비로소 다른 자아와 교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의 학생들이 교감할 줄 아는 이웃, 교감할 줄 아는 리더가 되는데 일조하는 교수가 되기를 꿈꾸며 새 학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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