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등급을 벗다?
장애인, 등급을 벗다?
  • 조연우 기자
  • 승인 2018.09.03 00:00
  • 호수 12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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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7년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장애 추정 인구수는 267만 명에 달한다. 지난달 27일(월) 통계청에 게재된 2017 인구주택총조사 전수집계 결과에 따르면 해당 연도 총인구는 5천 142만 명으로, 장애 인구는 전체 인구의 약 5%에 해당한다. 또한 장애 발생 원인의 대부분이 후천적 원인(88.1%)에 있다. 즉, 장애 관련 정책은 비장애인에게도 어느 정도 관련성이 있는 사안인 것이다. 지난달 22일(수) 복지부는 오는 10월 2일(화)까지 장애인복지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일부개정안을 입법 예고한다고 밝혔다. 이는 지금까지 존재해왔던 6등급 장애 분류 체계를 폐기하는 것으로, 장애인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꿀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장애등급제란?

  장애등급제는 지난 1989년 12월에 시행된 장애인복지법에 기초하는 제도로, 장애인의 의학적 장애 정도를 1급부터 6급으로 나누어 차등적으로 의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이다.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에 따르면 장애 유형은 15개(△지체장애인 △뇌병변장애인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언어장애인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 △정신장애인 △신장장애인 △심장장애인 △호흡기장애인 △간장애인 △안면장애인 △장루요루장애인 △뇌전증장애인)로 분류돼 있는데, 모든 장애유형이 1급부터 6급까지의 등급으로 나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지체장애 △뇌병변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는 1급부터 6급까지 분류돼 있고, △지적장애 △자폐성장애 △정신장애는 1급부터 3급까지로 분류돼 있다. 그 외의 장애도 다양한 등급제로 운영되고 있다.

  본래 장애 등급 판정은 복지부에서 지정한 전문 의사에게 장애 등급 판정을 받고, 이후 진단서를 지방자치단체(이후 지자체)에 제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2011년부터는 주민 센터에 장애인 등록을 신청하고, 의료기관의 전문 의사에게 장애진단을 의뢰한 후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장애등급을 판정받는 방식으로 변경됐다. 이때 판정받은 등급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고, 장애등급의 변화가 예측되는 시기를 지정해 장애등급 재판정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최초 장애등급 판정 시 장애 정도가 상당히 고착돼 더 이상 호전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 최초 판정과 한 번의 재판정 이후 재판정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또한 장애등급조정이 필요한 경우에도 재판정 신청이 가능하다. 장애인 등록이 완료되면 △생활지원 △건강지원 △고용지원 △교육지원 등의 각종 지원을 등급별로 받을 수 있다. 또한 △지하철 요금 지원 △인터넷 요금 할인 △전화 요금 할인 등 지자체나 기업이 제공하는 각종 공제·감면 혜택이나 서비스가 등급별로 이루어지고 있다.

  현행 장애등급제의 문제점은 끊임없이 지적돼 왔다. 가톨릭대학교 재활의학교실 김윤태 교수는 지난 2010년 7월 장애등급제 대토론회에 참석해 “현행 장애등급 판정은 장애인 당사자의 환경과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의학적 판단에만 의존해 결정되기 때문에 판정 과정에서 장애인 개별 욕구와 복지수요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다”라고 주장했다. 등급에 따라 획일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필요한 서비스를 등급 미달로 받을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한다는 의미다. 이런 경우, 필요한 서비스를 받기 위해 등급 재심사를 신청했다가 오히려 등급이 하향 조정돼 기존에 받던 서비스가 끊기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는 결국 장애인들이 복지 사각지대로 내몰려 목숨을 잃거나 힘들게 생활을 유지하는 상황으로 이어지게 된다.

  또한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는 것이 반인권적 행위라는 문제도 제기됐다. 장애등급제가 장애인에게 등급이라는 낙인을 찍는, 단순히 행정상의 편의만을 위해 존재하는 제도라는 주장이다. 지난해 3월 장애등급제 개편 3차 시범사업을 규탄하는 전국동시다발기자회견에서 장애인 참가자들은 ‘나는 등급으로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정당한 사회 서비스를 받고 싶다’는 내용의 글씨를 쓰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서비스를 받기 위해 장애인이 스스로의 어려움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이에 따라 지난 2012년 8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광화문 역사 내에서 장애인단체들의 농성이 1,842일간 진행되기도 했다. 이들은 농성에서 ‘3대 적폐’ 폐지를 요구했는데,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자의무자기준폐지 △수용시설 폐지가 그에 해당된다. 농성은 지난해 8월 복지부 박능후 장관이 농성장을 방문해 ‘3대 적폐’ 폐지의 구체적인 계획을 논의하는 민관협의체를 구성하기로 약속하면서 해제됐다.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는?

  이러한 여론에 따라 박근혜 전 정부는 지난 2013년 4월 장애등급제 폐지를 국정과제로 지정했다. 그러나 이후 장애등급제 폐지 대신 ‘중·경증 단순화’로 뒤집게 되는데, 이는 장애인 관련 사회 서비스 중 다수가 등급제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전면 폐지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또한 중증장애인 우대 제도에 차질이 생길 수 있고, 기업들의 감면·할인 서비스가 폐지되거나 축소될 우려도 있었다.

  이후 2015년 6월부터 12월까지 장애등급제 개편 1차 시범 사업이, 2016년 6월부터 11월까지 2차 시범 사업이 진행됐다. 6개 지자체가 참여한 1차 시범 사업과 10개 지자체가 참여한 2차 시범 사업의 주된 목표는 서비스종합판정 및 전달체계 개편 모형의 검증이었다. 특히 1차 시범 사업에 대해 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은 기존 자원을 기존 등록 장애인의 욕구와 잘 연결한 결과로, 종합판정 및 전달체계 구축을 통해 장애인의 욕구가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반면 일각에서는 공공 및 민간 서비스 연계를 통해 연계율 실적은 올렸으나, 실질적인 서비스 개편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일기도 했다. 지난 2017년 4월부터 10월까지 진행된 3차 시범 사업에는 18개 지자체가 참여해 현장방문을 통해 중위험군(장애인 독거가구, 부모 이외의 가족이 장애인이 경우 등)을 추가로 발굴해 복지서비스 대상자를 늘리고, 읍면동 허브화를 이용한 서비스 연계율 향상 등의 성과를 이뤘다.

  3차에 걸친 시범 사업 결과를 토대로 해 준비과정을 거친 후, 지난 22일(수) 복지부에서는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통과된 장애인복지법 일부개정안에 관련된 장애인복지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일부개정안을 마련해 지난달 23일(목)부터 오는 10월 2일(화)까지 입법 예고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내년 7월부터는 1급부터 6급으로 구분하던 장애등급제가 폐지된다. 대신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과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아니한 장애인’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기존 1~3급 장애인은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으로, 4~6급 장애인은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장애심사를 다시 받거나 장애인 등록증을 새로 발급받을 필요는 없다. 또한 이와 같은 장애 정도의 구분을 서비스 지원 시 참고자료로만 활용하고, 별도의 종합조사를 시행해 서비스 지원을 결정한다. 일률적인 서비스 제공 대신 개별 서비스 목적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지원기준을 마련해 꼭 필요한 장애인이 적합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현행법상 1~3급 중증 장애인 위주로 지원된 주요 서비스인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현행법상 신청 자격: 1~3급) △특별교통수단 이용(1~2급) △장애인 연금(1~2급 및 3급 중복 장애인)을 필요에 따라 4~6급 장애인도 지원받을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현행법상 뇌병변장애 4급 환자인 A씨는 일상생활에 도움이 필요하지만, 활동지원 신청 자격이 1급에서 3급으로 한정돼 있어 신청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법안이 개정되는 내년 7월부터는 A씨도 기존 장애등급에 상관없이 활동지원을 신청할 수 있고, 종합조사 결과에 따라 실제 필요한 하루 3시간의 활동보조를 이용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우선 내년 7월 일상생활지원분야 4개 서비스(△활동지원급여 △장애인 보조기기 교부 △장애인 거주시설 이용 △응급안전서비스)를 신청하는 경우에 한해 종합조사를 우선 적용한다. 또한 오는 2020년에 이동지원 분야 서비스(장애인 전용 콜택시, 주차구역 이용 등) 제공을 위한 종합조사, 2022년에 소득·고용분야 서비스(장애인 연금, 장애의무고용 대상 포함 등) 제공을 위한 종합조사를 단계적으로 마련하고 확대할 계획이다.

  이러한 개정에 따라 지난 3월 5일(월) 발표된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2018년~2022년)이 수립됐다.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은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1998년부터 5년마다 수립하는 범정부계획으로,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은 ‘장애인의 자립생활이 이루어지는 포용사회’를 비전으로 △5대 분야 △22개 중점과제 △70개 세부과제로 이루어져 있다. 대표적으로 장애인연금 기초급여 인상, 장애수당 인상 등이 추진될 예정이며, 교육권 보장을 위해 특수학교와 특수학급이 증설될 전망이다. 또한 장애인에 대한 통합문화이용권 지원을 늘리고, 장애인이 활동의 제약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열린 관광지 100개소를 조성할 계획이다. 

  한편 지난 5월에는 20개 부처가 참여하고 협력하는 ‘장애등급제 폐지 시행 준비단’의 1차 회의가 개최됐다. 이날 회의에서는 현재 장애등급을 활용하고 있는 79개 서비스의 기준 개편 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으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회의를 개최해 △서비스 기준 개편 △예산 반영 △법령 개정 △정보시스템 개발 등 부처에서 추진해야 할 사항을 논의하고 지원할 계획이다.
 

  한계점도 분명해…

  과거 박근혜 정부에서 중·경증 단순화 계획을 내놓았을 때 성신여대 사회복지학과 이승기 교수는 “등급제 단순화는 사실상 이름만 바뀔 뿐 현행 체제를 그대로 가져가는 것이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또한 “등급제가 폐지되면 늘어날 예산을 우려해 정부가 이렇게 결정한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개정안이 현실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다양한 방면에서 제기되고 있다. 개정 이후 제공될 서비스가 현행법상 받을 수 있는 서비스와 양적이나 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인식이 확산된 원인은 불투명한 예산 집행과 개편됐다고 단언하기 힘든 장애 정도 구분 체계다.

  우선 장애등급을 단순화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별다른 변화가 없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현행법상 6개의 장애 등급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현재 제공되고 있는 서비스의 대부분은 1~3급(중증), 4~6급(경증)으로 구분해 제공되고 있다. 따라서 장애 구분에 차이가 없으므로 서비스에도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대해 복지부 장애인정책과에서는 “장애등급을 폐지하면서 장애 정도에 따른 구분을 유지하는 것은 그동안 서비스 기준으로 활용돼 온 장애등급이 일시에 폐지됨에 따른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이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1~3급 중증의 장애인에게 인정돼 오던 우대혜택과 사회적 배려를 최대한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다”라고 말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측에서도 장애등급에서 장애 정도로 변화된 표현을 사용할 뿐, 서비스 확대나 보장을 위한 예산 확충은 없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본래 부여하던 등급을 종합조사표에 따른 점수로 환원할 뿐, 개선되는 사항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세 차례의 시범 사업을 거치고, 종합조사표에 대해서도 꾸준히 논의하고 있으나 본래 제공하던 서비스의 틀에서 크게 다양화되지 못했다는 의견도 개진됐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양영희 회장은 “우리가 등급제 폐지를 주장했던 것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고 편안하게,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온전히 행사하며 살고 싶어서였다”라며 “그러나 정부안을 보면, 행정적 변경 이외에 장애인의 실질적 삶이 변화될 수 있는 내용은 없는 것 같다”라고 비판했다.

  등급제 폐지를 통해 중·경증 장애인이 구분 없이 똑같은 지원을 받게 돼 중증 장애인이 받던 혜택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우려도 일었으나, 복지부 장애인 정책과에서는 참고자료를 통해 이를 해명했다. 장애인 등급제 폐지는 장애인 복지 서비스를 의학적 판정에 의한 장애등급이 아닌 장애인 개인의 욕구나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맞춤형으로 지원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장애인 개인별로 꼭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새로 도입되는 종합조사에서도 장애 정도를 충분히 고려하게 되며, 일상생활수행능력 등이 떨어질수록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개편이 줄곧 탈시설을 요구해온 장애계의 목소리에 반해 역행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번 개편안에서 종합조사표를 통해 제공되는 서비스에는 거주시설 입소가 포함돼 있다. 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가 지난달 8일(수) 기자회견에서 설명한 바에 따르면, 장애인 수용 시설의 신규 입소를 막고 일 년에 천 명씩 탈시설을 지원해도 3만 명이 넘는 거주인이 모두 나오는 데 30년이 걸린다. 그러나 정부 측에서는 오는 2019년에 130명의 탈시설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거주시설 입소를 정부가 열어놓는다면, 장애인 수용 시설은 결코 완전히 폐지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거주시설에 대한 욕구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원책을 마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거주시설의 문을 열어놓는다는 점에서 정부의 탈시설 정책 의지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기존 복지 체계에서 늘어난 것도, 달라진 것도 없고 수용시설은 유지하는 기만적 시스템으로 31년간 유지됐던 장애등급제라는 차별의 긴 역사를 종식하겠다는 정부의 태도에 분노한다”라고 말했다.

  시각장애인계에서는 복지 축소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며 특정 유형 장애인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윤상원 서울지부장은 종합판정표가 “시각 장애인들의 급여량이 약 7.6%정도 깎이게 되어 있다”라며 “활동보조처럼 시각장애인 분야가 역차별 받는 일이 없도록 장애유형간 힘센 단체나 목소리 큰 단체에 혜택이 집중되지 않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오늘(월) 오후 2시 여의도 이룸센터에서는 35개 장애인단체가 참여하는 토론회가 개최된다. 이는 장애등급제 폐지 추진방향 및 그간의 민관협의체 논의경과에 대해 장애계와 공유하고 의견을 수렴하기 위함이다. 또한 내년 7월 일상생활지원 분야에 새롭게 도입되는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안)의 기본 방향에 대해서 설명하고, 장애인단체의 의견을 수렴한다. 복지부는 이번 토론회를 시작으로 하반기 중에 장애인단체와 지속적인 소통과 논의를 실시하고, 이를 토대로 장애등급제 폐지 추진방안을 마련할 전망이다. 토론회에서 복지부 장애인정책과 이상진 과장은 “장애등급제 폐지는 장애인 복지정책이 획일적 장애등급이 아니라 장애인 개인 중심으로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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