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 에베레스트 정복 세계 4위 전갑수 산악인

 

전갑수 산악인과의 만남은 조금 독특한 장소에서 이뤄졌다. ‘암벽훈련 연습장’에서 만난 그는 21일 대학생암벽등반대회에 졸업생 자격으로 출전하기로 해 굳이 약속 장소를 이리로 잡았다고 말했다. 암벽등반 뿐 아니라 겨울엔 빙벽등반, 국내 및 국외 등반, 오지 탐사에 이르기까지 20대 못지 않게 열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그를 만나보았다.



과학과 등산만 안다


물리학 교수지만 등산 경력이 고등학교때부터 거진 30년이 넘어간다는 독특한 이력에 대해 질문하자 그는 멋쩍은 듯 “사실 난 그 두 개밖에 몰라요.”라고 답했다. 다소 이질적인 조합일 수도 있지만 자연을 좋아하다보니 산을 즐겨 찾게 됐고, 과학 역시 자연의 법칙과 사물의 이치를 발견하는 학문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대학에 가서도 물리학과 수업을 들으며 등산부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고 말하는 그는 그 분야에서는 책도 출판한 바 있다고 했다. 등산과 관련해서는 ‘암벽등반의 세계’, 과학에 대해선 ‘물리법칙으로 이루어진 세상’이란 과학교양서적을 냈는데, 후자는 작년 말 한국과학재단에서 과학문화지원사업을 했는데 도서분야에 선정되기도 했단다.



등산은 힘들지만 아름다운 도전


그의 대학생활 때 등산 관련해 특별히 기억나는 일에 대해 묻자 그는 “태백산맥 종주”라 답했다. 79년, 그러니까 그의 대학교 2학년 때 소속돼 있던 연세대 산악부에서 30일간 능선을 따라갔단다. 시기가 여름이라 장마와 맞물리는 바람에 텐트에 물이 차 둥둥 뜨는 침낭 속에서 자기도 했고, 산돼지를 만난 것도 빈번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종주등반을 하는 사람이 적어 길이 나 있지 않아 고생이 많았다”고 한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등반이 “기억에 남는 추억”이라 얘기했다.

대학원 때는 첫 해외 원정을 나갔는데, 당시는 해외여행이 자율화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여권을 받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어찌어찌 해서 간신히 발급받은 여권으로 후배와 알프스를 갔다고 한다. “당시 다녀온 곳이 알프스 봉우리 중에서도 난이도가 높은데, 사전 정보가 없어서 고생했어요.” 얼마나 위험한지를 몰라서 당일치기로 다녀오려고 장비를 들고 가지 않은 것이다. 결국 내려오는 길에 해가 저물었고, 해가 뜰때까지 밤을 하얗게 새웠다. “그 때 밤하늘 별이 얼어붙는다는게 어떤 느낌인지 체험했죠.”


직장도 그만두고 다녀온 에베레스트


대학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원정을 다녀온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등반은 무엇일까. 남극을 비롯해 오지탐사까지 다녀왔으니 고르기 어렵지 않을까 싶었으나 그의 대답은 빨랐다. 팀 막내로서 허영호 선배와 88년 다녀온 동계 에베레스트 원정. 당시 이 원정을 갈 때 이미 대덕연구단지 원자력 연구소를 다니고 있었는데, 담당자가 자리를 비워 원정허가를 받지를 못했다고 한다. “날짜는 다가오는데 초조해지고, 결국엔 직장을 그만뒀죠.”

직장까지 그만두고 다녀온 에베레스트 원정 성공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 성공인데다, 겨울에 오른 것으로는 세계에서도 네 번째였다. “에베레스트 자체가 봄?가을 외엔 오르고 어려운 기후예요. 여름엔 몬순기후 때문에 산 밑은 비, 산 위는 눈이고 겨울에는 제트기류가 있어서.” 그래서 이 원정으로 다녀와 체육훈장도 받았다.

당시만 해도 거의 미답지역인 만큼 힘들지는 않았는지를 묻자 그는 ‘그랬다’며 당시의 기억을 회고했다. “어렵긴 어려웠죠. 히말라야 4개월 등반, 하면 다들 멋있겠다고들 하는데 사실 하늘은 푸르고 돌은 검고 산은 눈 때문에 희거나 회색이라 흑백사진처럼 참으로 볼 것이 없어요. 눈 오면 화이트아웃 때문에 온통 하얗게 되고. 날씨는 말할 것도 없죠.”

덕분에 불을 낸 에피소드도 있단다. 날씨가 추워 텐트안에서 스토브를 피워 놓다가 가스를 교환할 때의 실수로 불이 붙은 것이다. 순식간에 텐트 안으로 번지는데 겨울 텐트라 방한을 위해 곳곳에 끈이 묶여 있고 두터워 빠져나가기 어려운 구조였다. “죽었구나 싶었는데 입구부분이 타서 뻥 뚫려버리는 거예요, 얼른 거기로 나가서는 몸에 붙은 불을 끄려 눈밭을 데굴데굴 굴렀죠.” 그런데 나중에 보니 구르던 그 옆이 크레바스였다는 아찔한 사실. 연달아 목숨이 위태로웠던 아찔한 기억이란다.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


직장을 그만뒀으니 돌아와서 고민이 많지 않았을까? 그런 질문을 묻자 그는 “사실 그만둘 때는 이후 유학을 갈 생각이었다”라 답했다. 하지만 히말라야 원정을 성공하니 계속 원정을 다닐 생각은 없냐는 권유가 많이 들어와 고민이 됐다고. “공부를 할 것인가 원정을 다닐 것인가, 그렇지만 결국 공부를 하기로 했어요.” 당시 등반에는 ‘프로’란 개념이 없었고 아마추어 정신, 도전, 극복, 그런 것이 주가 됐다고 한다.

 결국 전문적으로 산악인의 길을 걷는 것은 포기하고 박사과정을 밟았단다. “의학물리학을 부전공으로 해서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 있다가 을지대 방사선과에서 일했어요.” 그러나 병원에 있어서는 하고싶은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다시 그만뒀다고 한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쉽게 읽는 과학 관려 도서를 쓰고 싶었는데, 병원에선 그게 힘들더라구요.” 지금 그는 출판사를 세우고 직접 책도 쓰고 있다. 현재 쓰는 책은 ‘두뇌 사용설명서(가칭)’. 굉장히 여러 분야에 걸쳐 늘 열정적인 삶을 산 비결이 무엇인지에 대해 묻자 쑥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그는 “삶에 대한 애정”이라고 답했다. “나는 인생이 등산과 같다고 생각해요. 성공과 실패가 되풀이 되는 것도 그러하고, 그 난이도도 갖가지고, 장애물도 때론 나타나잖아요. 장애물이 나타났을 때 보통은 돌아가지만 그렇게만 하다보면 뒤처지지 않겠어요? 등산처럼 도전의식을 갖고 그걸 즐기려는게 필요하다고 봐요.” 그는 목표 자체를 그래서 자기가 할 수 있는것 보다 크게 잡는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을 목표로 삼기보다는 더 큰 목표를 잡아 그걸 극복하고 성취감을 맛보려 한 게 열심히 사는 삶의 원동력이 되지 않나 싶어요.”



두려움을 극복하고 열정으로 나아가라


이번 하계 방학 동안에도 2008대한민국청소년오지탐사대에서 대학생 인솔교사로 활동하는 등 대학생과 많은 교류가 있는 그가 보는 20대는 어떨까. “같이 등반에 참여한 대학생들에게서 매우 바람직한 점이 대부분 리더십이 있다는 거예요.” 그것도 옛날처럼 ‘내 말대로’를 강조하는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아니라 최근 중요시 되고 있는 서번트 리더십, 참모형 리더십을 갖고 자기가 할 바를 다 함으로써 조직이 잘 돌아가도록 하는 모습이 매우 바람직해 보인단다. 그들에게 조언 한 마디를 부탁하자 그는 “보다 멀리봤으면….”이란 감상을 말했다. 당장의 불이익을 너무 겁내다 보니 장기적으로 손해 볼 선택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젊은이가 가질 수 있는 특권 중 하나가 열정과 도전할 수 있는 기회”라고 한 그는 대학생들이 “두려움을 극복하고 열정으로 나아갔으면” 한다는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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