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탈코르셋 운동’이 여성들 사이에서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코르셋(corset)’이란 16세기 이후부터 20세기까지 여성들 사이에서 사용됐던 보정 속옷이다. 코르셋을 착용하던 여성들의 일부는 갈비뼈가 부러져 숨지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코르셋은 강요된 여성성을 상징하게 되었으며, 그에서 벗어나자는 취지를 가진 운동이 탈코르셋 운동이다. 이렇듯 탈코르셋 운동이 커지며 기업이나 단체 등 사회에서도 이에 반응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탈코르셋이 더 이상 여성들만의 관심사가 아니게 된 것이다. 이어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나 SNS(Social Network Service)에서도 탈코르셋과 관련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중이다. 이러한 관심은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탈코르셋 운동의 시작

 
탈코르셋 운동이 시작된 것은 1960년대다. 지난 1968년 미스 아메리카 대회장 앞에서 열린 미스 아메리카 대회 반대 시위는 대표적인 여성해방운동 중 하나이자 탈코르셋 운동이다. 시위는 그 해 창설된 급진주의 페미니스트 모임인 ‘뉴욕의 급진 여성들’이 ‘노 모어 미스 아메리카’를 외치며 ‘자유의 쓰레기통(Freesom Trash Can)’에 코르셋, 하이힐, 브래지어, 화장품 등등을 버리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국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시위가 개최됐다. 바로 ‘안티 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이다. 해당 시위는 계간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의 주최 아래 지난 1999년부터 2009년까지 꾸준히 열렸으며, 미스코리아 대회 공중파 방영 금지를 끌어낸 바 있다. 한편, 1920년대 우리나라 신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했었던 단발 또한 탈코르셋 운동의 일부라는 의견도 있다. 그 유행은 1922년 기생조합인 한남권번의 기생 강향난에 의해 시작됐다. 당시 그녀가 단발을 했던 것은 남자에게 의존하던 지난날을 잊고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분석된다. 연세대학교 젠더연구소 손희정 박사는 신여성들 사이 단발 유행에 대해 “단발을 하고 하이힐을 신는 것이 유교 가부장제가 여성들에게 강요했었던 규범성을 탈피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SNS에 올라온 탈코르셋 운동 인증 사진 중 하나다.
SNS에 올라온 탈코르셋 운동 인증 사진 중 하나다.

  현재의 탈코르셋 운동,
  개인 참여 늘어…


  최근 확산되고 있는 탈코르셋 운동은 지난 20세기와는 다른 유형을 띄고 있다. 과거에는 시위형식인 단체가 주최하던 운동이 많았다면, 최근 탈코르셋 운동들은 개인적인 참여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소셜미디어 중 하나인 ‘인스타그램’에 ‘#탈코르셋’을 검색하면 수천 개의 게시물을 발견할 수 있다. 탈코르셋 운동에 참여하는 여성들은 여성들에게만 암묵적으로 강요돼오던 ‘꾸밈 노동’을 버리자고 말한다. 이 중에는 긴 머리를 자르는 여성도 있고, 화장품을 모두 부순 여성도 있다.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윤김지영 교수는 탈코르셋 운동에 대해 “탈코르셋은 여성들에게 모두 머리를 자르고 바지를 입으라고 하는 것이 아닌, ‘여성은 일관된 기준에 따라 예뻐야 하는가’라는 명제에 의문을 제기하는 운동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개인적인 참여 형식 이외에도 시위 형식으로 진행되는 탈코르셋 운동 또한 찾아볼 수 있다. 지난 6월 페이스북 코리아 사옥 앞에서 상의 탈의 퍼포먼스가 진행돼 논란이 일었다. 페이스북 코리아는 지난 5월 ‘불꽃페미액션’ 회원들이 월경페스티벌에서 촬영한 상의를 탈의한 사진을 ‘나체 이미지 또는 성적 행위에 관한 페이스북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해당 사진들을 삭제하고 1개월 계정 이용 정지 처분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불꽃페미액션 회원들은 페이스북 코리아 사옥 앞에서 “우리는 음란물이 아니다”라고 외치며 상의 탈의 시위를 진행했다. 불꽃페미액션은 “농구장이나 축구장에서 웃통을 벗은 채로 운동하는 남성들은 종종 볼 수 있지만, 여성이 그렇게 하는 것은 보기 드물다”라며“여성의 몸은 섹시하게 드러나되 정숙하게 감춰야 하는 대상으로 요구받아왔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시위는 결국 페이스북 코리아의 사과와 삭제된 게시물의 복구로 끝이 났다. 또한, 지난 6월 서울 혜화역 인근에서 열린 ‘불법촬영 편파수사 2차 규탄 시위’에서는 집회 참가자 6명이 무대 위에서 삭발을 하기도 했다.

  한편 해외에서도 이러한 흐름의 페미니즘 운동이 여전히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미녀와 야수’에서 벨 역으로 출연한 엠마 왓슨은 진취적인 여성으로 등장하는 벨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코르셋 착용을 거부했다. 또한 지난 5월 제 71회 칸 국제영화제에 참석한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엄격한 드레스코드를 적용하는 칸 영화제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하이힐을 벗어 손에 쥔 채 레드카펫을 오른 일이 있었다. 크리스틴 스튜어트뿐만 아니라 지난 2015년 칸 영화제 영화 ‘캐롤’의 갈라 스크리닝 당시 플랫슈즈를 신은 여성들의 입장을 거부한 사건에 대한 항의로 배우 줄리아 로버츠 역시 맨발로 레드카펫에 오른 적이 있다. 또한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한 인터뷰에서 “만약 누군가 하이힐을 신지 않은 사람은 입장할 수 없다고 한다면, 나는 ‘왜 남자 배우들에게는 힐을 신지 않았냐고 묻지 않느냐’라고 말할 것이다”라고 전했다.
 

  여성에게만 화장 강요하는 사회
  여학생 교복 코르셋 논란도


  지난해, 서울의 한 대학병원의 ‘의료인 용모 매뉴얼 초안’이 성차별 논란을 일으켰다. 매뉴얼에 의하면 여성 의사들은 △생기 있는 메이크업, △마스크 착용 시에도 메이크업으로 입술 색을 화사하게 할 것, △뒤 옷깃에 닿는 머리는 올림머리로 연출하고 헤어제품을 사용해 잔머리를 완전히 없앨 것, △근무 중에도 수정화장을 할 것 등 외모에 엄격한 기준을 세운 반면, 남성 의사들에게는 △코털 정리 △로션 사용 등 용모보다는 위생에 관련된 기준만이 제시됐다. 논란이 일자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는 해당 병원에 매뉴얼을 철회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대전협 안치현 여성수련교육이사는 “의료인이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성별에 따라 역할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성 전공의들에게만 외모 관리를 추가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성차별로, 여성 전공의를 의료인이 아닌 성적 대상으로만 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종종 여성들에게만 적용되는 용모 기준이 불합리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가 지난해 발표한 ‘2017년 성차별 보고서’에 의하면 일부 외식업체, 영화관, 피시방 등에서는 아직도 여성에게만 안경 착용을 금지하거나 립스틱 검사를 하는 등 외모 기준을 남성 직원들과는 다르게 적용한다. 이 조사에 응답했던 한 여성은 결막염에 걸렸을 때조차 안경을 쓴다고 하자 관리자가 화를 냈던 경험이 있다고 토로했다. 특히 서비스업은 유독 복장 규정이 엄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13년 아시아나항공 노동조합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해 바지 유니폼을 얻어냈으나, 현장은 여전히 같다는 의견이다. 아시아나항공 24년 차 승무원이자 서울시의원인 권수정 의원은 “바지 유니폼을 위해 2년 동안 회사와 싸웠지만 6년이 지난 지금도 현장의 복장 규정은 달라진 바가 없다”라고 밝혔다. 또한 권 의원은 “여승무원들의 화장에 회사의 규칙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으며, 남승무원과는 달리 여승무원은 안경을 절대 쓰면 안된다”라고 말했다.

  최근 여학생들의 교복이 현대판 코르셋이라는 의견 또한 분분하다. 지난 7일(금) 기준으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여학생 교복을 바꿔달라는 청원이 약 150개 이상 작성됐다. 여학생 교복 관련 청원 작성자 중 한 명은, “바지 교복을 입기 위해서는 교장 선생님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그 이유를 묻자 학교 측은 ‘여성스러워야 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라며 “이는 명백한 성차별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여성단체 ‘불꽃페미액션’과 ‘초등성평등연구회’가 유튜브에 게시한 ‘교복입원프로젝트’ 영상에 의하면 여학생 교복 셔츠가 15호 아동복보다도 작은 것이 드러났다. 여학생 교복들은 작게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교복업체들이 날씬해 보인다는 ‘슬림핏’ 자켓을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우고, 교복의 ‘라인’이나 ‘핏’을 우선으로 한 교복을 디자인하기 때문이다. 이에 교육부는 교복에 관해 개선 방안을 찾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10대 학생들이 겪는 코르셋은 교복뿐만이 아니다. 소셜미디어 중 하나인 트위터에서는 최근 ‘#학생이 겪는 코르셋’이라는 해시태그가 등장했다. 이 해시태그가 이용된 수백 건의 게시글에는 화장과 다이어트를 암묵적으로 강요받는 여학생들의 항의가 올라왔다. 실제로 유튜브에서 ‘초등학생 메이크업’에 관련된 동영상을 검색하면 약 2만 개 이상의 동영상이 검색됐다. 또한 녹색소비자연대가 지난해 발표한 ‘어린이·청소년 화장품 사용 행태 보고서’에 의하면 초등학생 여자 중 42.7%, 중학교 여자 73.8%, 고등학생 여자 76.1%가 색조화장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여성들 중 화장을 시작하는 연령대가 낮아졌음을 보여준다. 윤김 교수는 이에 대해 “10대를 타깃으로 삼는 뷰티 산업 등의 매체들로 인하여 1020 여성들은 이전 세대의 여성들보다 더욱 일상화되고 강력한 외모 코르셋을 경험한다”라며 “10대 여성들이 탈코르셋 운동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기술이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4월 ‘뉴스투데이’에서 안경을 쓰고 진행하는 임현주 아나운서의 모습이다
지난 4월 ‘뉴스투데이’에서 안경을 쓰고 진행하는 임현주 아나운서의 모습이다

  탈코르셋 운동이
  사회에 가져온 변화들


  탈코르셋 운동이 진행됨에 따라 사회도 천천히 변화하고 있다. 얼마 전 MBC 임현주 아나운서가 안경을 쓰고 뉴스 진행을 해 화제가 됐다. 이는 방송 역사상 거의 최초인 사건이다. 임 아나운서는 한 인터뷰에서 “눈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렌즈를 껴왔지만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또한 “여성 아나운서가 안경을 쓰는 것은 금기라고 생각했으나 이번 일로 인해 여성 아나운서도 안경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린 기회라고 생각한다”라며 “여성 아나운서는 아름다움과 젊음에 초점이 맞춰진 경향이 있는 것 같지만 이런 평가는 뉴스의 본질과 다르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그뿐만 아니라, 제주항공도 지난 4월부터 객실 승무원 서비스 규정을 일부 변경해 승무원들이 기내에서 안경을 착용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이는 야간비행 때 승무원들이 종종 눈이 충혈된 상태로 비행을 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항공은 또한 지난 7월부터 객실 승무원의 구두 착용에 대한 규정을 변경했다. 뾰족구두 대신 기내화 또는 램프화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탈코르셋 운동은 대학가에까지도 영향이 끼쳤다. 숙명여자대학교와 덕성여자대학교 학생 일부는 각 대학에 탈코르셋 관련 대자보를 게시한 바 있으며, 탈코르셋 운동이 대학가 개강 풍경을 바꿔놓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동국대학교 윤원정 총여학생회장은 변화하는 대학가에 대해 “지금 당장 큰 변화가 생기지는 않겠지만 과도한 다이어트 등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이 생겨나고 있는 분위기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해외에서는 탈코르셋 운동의 일종인 ‘바디 포지티브(body positive)’운동이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프랑스 정부가 지나치게 마른 모델의 패션업계 활동을 금지하는 법안을 제정한 것을 선두로, 루이비통, 구찌 등 명품 기업들도 이에 동참하여 힘을 보탰다. 또한, 플러스 모델들이 활동하는 브랜드 ‘에어리’의 매출은 매년 20% 이상씩 증가하고 있다.
 

  탈코르셋을 둘러싼 여성들의 갈등

  탈코르셋 운동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탈코르셋 운동에 참여하는 여성들과 참여하지 않는 여성들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탈코르셋 운동에 참여하지 않는 여성들은 긴 머리나 화장 모두 자기만족 때문에 하는 것이며, 꾸미는 행위들은 자신의 자유라는 입장인 반면, 탈코르셋 운동에 참여 중인 여성들은 꾸미는 행위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며, 자유는 모든 여성들이 그 행위를 하지 않아도 될 때 꾸미는 것이 자유라는 입장이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밝힌 유명 유튜버 한별은 지난 7월 자신의 계정에 올린 다이어트 비법 영상을 두고 몇몇 사람들과 갈등을 일으켰다. 해당 영상 댓글에는 “페미니스트라면서 코르셋을 전시한다”라는 등의 비난 댓글이 다수 달렸다. 이에 한별은 “다이어트 하라는 말이 폭력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다이어트를 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 또한 또 다른 비난이고 억압이다”라며 “코르셋을 벗을지 말지에 관한 선택권은 여성 각자에게 줘야 한다”라고 답했다. 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황소현 운동가 역시 “자신이 기본적으로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 방식이 다른 것은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어떤 방식으로도 특정한 여성상을 강요하는 것은 경계해야 하는 일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렇듯 탈코르셋 운동에 동참하는 여성들이 늘어남에 따라 사회의 새로운 방향이 제시되는 중이다. 다른 한편, 탈코르셋에 관련한 갈등은 지속되고 있어 앞으로 탈코르셋 운동이 어떠한 영향을 불러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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