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뫼의 눈물’을 극복하고 젊은 도시로 재탄생되고 있는 말뫼

 도시는 좋은 것으로만 기억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사건으로 오명(汚名)을 뒤집어써 도시 안의 좋은 것들도 다 가려져 버릴 때가 있다. 순식간에 벌어진 안 좋은 일로 긴 세월에 걸쳐 쌓아온 도시의 이미지가 훼손되기도 한다. 스웨덴 최남단의 도시 말뫼(Malmö)가 좋은 예이다. 말뫼는 유럽의 조선업계에서 선두 주자였던 코쿰스(Kockums)사가 있던 곳이다. 코쿰스는 도시의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창조하는 회사였다. 시민들은 코쿰스라는 회사 덕분에 윤택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고, 말뫼가 스웨덴 전체에서 담당하는 경제적 영향력도 상당했다. ‘코쿰스 크레인’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기계는 높이 128미터, 폭 164미터의 위용을 자랑했고, 세계 최대의 크레인으로 기록되었다. 이 거대한 크레인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선박이 건조되었고, 근로자들의 행복도 영원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코쿰 스사는 글로벌 경쟁에서 패배하며 파산하였고 한국의 현대중공업은 코쿰스크레인을 단돈 1불에 인수하였다. 크레인을 해체할 돈조차 없어 해체비용을 현대중공업이 부담하는 조건으로 헐값에 매각한 것이다. 크레인이 해체되어 한국행 운송선에 실리는 장면을 보며 말뫼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이런 모습을 스웨덴 국영방송은 장송곡과 함께 보여주면서 ‘말뫼의 눈물(Tears of Malmö)’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으로 옮겨진 크레인의 부품들은 미포조선소에서 다시 조립되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스웨덴 남부의 아름다운 도시 말뫼를 ‘말뫼의 눈물’로 기억한다. 불과 16년전인 2002년 9월 25일의 일이었다.

 2007년 여름, 나는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배를 타고 덴마크의 프레데릭스하운에 도착한 후, 알보그, 오르후스를 거쳐 코펜하겐에서 5일을 보냈다. 그리고 덴마크와 스웨덴을 이어주는 외레순대교(Öresundsbron)를 건너 스웨덴의 말뫼로 가는 여정을 택했다. 배를 타고 ‘작은’ 반도국가 덴마크에 들어왔 다가 기차를 타고 다시 ‘거대한’ 반도 국가 스웨덴으로 들어가는 기분은 ‘무한 자유’라는 말로만 표현할 수 있었다. 길이가 7,845미터에 달하는 외레순대교는 도로와 철도를 모두 이용할 수 있는 병용교(倂用橋)이다. 다리가 개통된 이후, 대도시 코펜하겐과 작은 항구 도시 말뫼는 국가는 다르지만 같은 지역으로 분류되어 공동으로 도시행정을 운영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라고 한다. 행정이란 이용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북유럽식 합리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의 부산과 일본의 후쿠오카가 다리로 이어져 서로 출퇴근할 수 있는 생활권이 되었을 때, 양국의 정부는 이용자들의 편의를 위해 공동 도시행정을 펼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북해와 발트해의 관문이라는 지정학적 위치를 십분 이용하여 조선업의 메카로 번영하였던 말뫼는 잘 나가던 회사의 몰락으로 암울한 시기를 보내기도 했지만 지금은 35세 이하의 젊은 인구가 유입되며 다시 태어나고 있다. 23만 명까지 줄었던 인구가 40만 명으로 늘어났고, 공장이 있던 곳은 IT 분야로 유명한 말뫼대학교 캠퍼스로 확장되었고, 변전소로 사용되었던 곳은 말뫼현대미술관의 전시공간으로 재탄생되고 있다고 한다.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말뫼에도 아름다운 교회와 파란 눈의 미녀도 꽤 많았는데 왜 나는 경제와 관련된 말뫼의 비운만을 생각하며 이 도시를 돌아다녔는지 나 스스로도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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