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로서의 모든 기능을 갖추었던 군칸지마
도시로서의 모든 기능을 갖추었던 군칸지마

  올 1월이었다. 나가사키 항구에서 이 작은 섬으로 가려고 했으나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씨는 나의 상륙을 허락하지 않았다. 한국인인 나를 거부라도 하듯이 여행기간 내내 날씨가 좋지 않아서 배를 탈 수 없었다. 일본 정부가 근대화의 상징이라고 그토록 자랑해오던 이 섬을 사람들은 ‘군칸지마(軍艦島)’라고 부른다. 나가사키 사람들도 원래 이름인 하시마(端島)라고 물어보면 고개를 갸우뚱하지만 군칸지마라고 하면 금세 알아듣는다. 멀리서 보면 정말 그럴 듯하게 군함처럼 보이는 군칸지마를 일본인들은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1940년대 강제 징용된 조선인 노동자들이 이 섬에서 하루 12시간의 중노동에 시달리며 살았다는 걸 알기는 하는지. 해저 1km 속에 있는 탄광에서 채탄 작업을 하던 800여 명의 조선인 노동자들 중 122명이 죽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사실과는 별개로 군칸지마는 2015년 7월 5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의 권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섬의 슬픈 역사는 쏙 빼고 메이지시대 일본산업혁명의 증거물이라고만 설명하는 일본 정부에 좀 화가 났다. 군칸지마는 음식 좋고 인심 좋은 나가사키 현의 ‘옥의 티’다.

  직접 보지 못한 아쉬움에 미리 일기 예보를 확인하고, 폭염이 한창이던 7월 중순 나는 드디어 군칸지마행 배에 올랐다. 나가사키 항구에서 불과 18km 떨어진 섬으로 이동하는데 심리적으로는 수백 킬로미터처럼 느껴졌던 이유는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일본어 설명 때문이었을 것이다. 미쯔비시 조선소에 정박 중인 자위대의 군함을 설명할 때는 소름이 돋는 듯했다. 일본 근대화를 계속 자랑하는 스피커의 음량은 주변의 크고 작은 섬에 서있는 카톨릭 성당을 가리키며 이 곳이 외국 문물을 받아들인 시발점이었음을 강조한다.

  35분간의 짧은 항해를 마칠 즈음 사진으로 보고 영화로만 봤던 길쭉한 군함처럼 생긴 섬이 눈에 들어왔다. 군함이 아닌 다른 것으로는 묘사가 되지 않을 정도로 군함 같았다. 그 당시로서는 신개념 거주지였던 아파트도 보였다. 아주 폐허인 줄 알았더니 철제 빔에 콘크리트가 상당히 붙어있어 화려했던 그 당시를 상상하게 해주었다. 다만 저 현대식 아파트에서 살 수 있었던 사람은 일본인이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섬에 들어가니 통제 구역이 많았지만 수영장과 극장이 있던 자리, 석탄을 운반할 때 쓰던 기계가 있었고, 섬의 꼭대기에는 그럴 듯하게 신사(神社)도 있다. 완벽한 자족도시였다. 남북으로 480m, 동서로 160m짜리 섬에 있을 건 다 있다. 전쟁을 위한 에너지를 생산했던 섬에서 생뚱맞게 일본 조경문화를 느끼는 나.

  1974년까지 사람들이 살다가 지금은 석탄 산업의 침체로 무인도가 된 이 섬을 나는 ‘나의 도시 리스트’에 올리 기가 싫다. 그러나 누군가 돌아보지 않으면 육지에서 떨어진 이 섬에서 벌어졌던 인권 유린과 참극을 기억하지 않을 것 같아서 도시의 기능적인 면만을 생각하여 도시로 인정한다. 나가사키는 몇 번을 가도 좋은 도시이고 의미 있는 볼 곳도 참 많은데 내가 왜 이 ‘특별한 무인도’에 가보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보고도 찜찜한 곳에서 여행의 의미를 생각한다. 여행이란 안 보고 후회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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