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도시가 되도록
사람 사는 도시가 되도록
  • 이상혁 (문예창작 졸)
  • 승인 2018.10.08 00:00
  • 호수 12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 정부에서 국가정책과제 중 하나로 내걸고 있는 ‘도시재생’은 그 자체 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인 것은 아니다. 인류가 문명을 구축하며 집단거주를 위해 도시를 건설한 이래, ‘도시 재생’은 그 이름과 개념이 달랐을 뿐 고대부터 현대까지 끊임없이 이어져 온 이슈라고 말할 수 있다. ‘도시재생’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도시의 쇠락한 지역이 자생력을 갖출 수 있게 하여 쇠락한 지역을 다시금 활력 있게 재생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 혹은 그 사업으로 인해 지역이 재생되는 현상 자체’라 할 수 있다.(*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2조(정의) : ① 이 법에서 사용 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도시재생”이란 인구의 감소, 산업구조의 변화,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 주거 환경의 노후화 등으로 쇠퇴하는 도시를 지역역량의 강화, 새로운 기능의 도입·창출 및 지역자원의 활용을 통 하여 경제적·사회적·물리적·환경적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도시재생’에 대해 명확히 이해하려면 우선 ‘도시 재개발’과 ‘도시재생’이 개념적으로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에 알아둘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도시 재개발’은 ‘낡은 도시 구역의 전면 철거’를 기본 전제로 한다. ‘도시 재개발’은 신축한 건축물과 새로이 갖춘 인프라 덕분에 거주환경의 개선 및 부동산 가치상승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갖는다. 허나 원래 그 지역에 살던 원주민 중 다수가 높은 액수의 부담금을 감당할 수가 없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게 되고, 이 때문에 오랜 시간과 많은 사회적 자본을 들여 형성·유지되어온 지역공동체가 해체된다는 부작용을 피할 수 없다. 일련의 부작용은 ‘철거민’을 소재로 하여 그간 많은 영화·드라마·문학작품 에서 다룬 바 있으니 이해가 쉬울 것 이다. 비근한 예시를 들자면, 판자촌에 아파트를 짓기 위해 마을 전체가 철거되고, 주민들은 보상금을 받기는 하나 그 보상금으로 새로 지은 아파트에 입주하기는 턱없이 부족한 형편인 것, 이주에 반대하는 원주민들 이 소위 ‘용역’에 의해 정든 삶의 터전을 파괴당하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부작용이 반복된다면 ‘낡은 도시’는 새롭고 쾌적한 환경을 갖춰 ‘리모델링한 도시’가 될지언정, 경제력을 갖추지 못한 이들은 주변부로 내몰고 경제력을 갖춘 이들의 입성만을 허용하는 ‘그들만의 도시’가 되어버릴 것이다. ‘하드웨어’만 갖춰져 있고 ‘소프트웨어’는 부실한데 도시가 잘 돌아갈 리도 만무하다. ‘도시재생’은 일련의 부작용에 대한 반성으로 시작된 것으로, 서구에서는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혹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도시가 쇠퇴하는 것 자체를 막을 방법은 없다. 쇠퇴한 도시지역의 물리적 철거도 공익과 필요에 부합하는 일이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낡았으니 파괴하고 새로 지었으니 좋은 것이다’ 라는 단순무식한 논리로 도시정책이 굴러가서는 안 될 것이다. 도시의 어원을 파고들면 도읍(都邑)과 시장(市長)의 기능과 성격이 합해져 도시(都市)인 것으로, 과거의 도시는 ‘정치‧행정‧경제의 중심지’로 설계·형성되 었다. 허나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품어 주는 공간’으로서의 도시이자, ‘공동체’로서의 도시다. 도시의 주인은 권력을 지닌 자도 재력을 지닌 자도 아닌,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인 것이다. 인구절감의 시대, 우리 도시의 ‘성장’은 기대할 수 없지만 정신적 가치의 축적으로 ‘성숙’해 나가길 기대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