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이탈리아 음식은 외식메뉴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내 스스로 가 한 달에 최소한 몇 번씩은 이탈리 아 음식을 먹고 있기 때문이다. 종류도 늘어나서 뇨키(Gnocchi)와 라자냐 (Lasagna) 정도는 누구나 아는 음식이 되었고, 깔조네(Calzone)나 브루스 케타(Bruschetta)도 꽤 보편화된 메뉴가 되었다. 이탈리아에 처음 갔을 때, ‘Gnocchi’를 ‘그누치’라고 읽었던 기억이 새로울 뿐이다. 메뉴를 가리키며 그 누치를 연발하는 나를 보며 식당 종업원이 재미있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었다. 피자와 스파게티가 이탈리아 음식의 대명사였던 예전에 비해 이제는 이탈리아에서 맛보는 모든 메뉴를 즐기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이탈리아 식당에서 음식을 고를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당연히 ‘볼로냐 스파게티(Spaghetti Bolognese)’다. 솔직히 볼로냐가 이탈리아의 어디에 있는 도시인 줄도 몰랐고, 소고기를 다져 만든 이탈리아식 면 요리가 볼로냐 스파게티였다는 것도 나중에 안 일이지만, 볼로냐라는 도시가 나에게 ‘좋은 트라우마’를 안긴 것만은 분명하다.

  유학 시절 주말에 기숙사에서 가장 많이 만들어 먹었던 음식은 당연히 스파게티였다. 그것도 볼로냐 스파게티. 네덜란드 룸메이트는 직접 소스를 만들어서 먹었고, 나는 삶은 면에 마트에서 사온 소스를 부어 먹었다는 것이 유일한 차이였다. 나에게 있어 제일 만들기 쉬운 음식 이름에 붙었던 이탈리아의 도시 볼로냐는 이렇게 기억 속에 자리 잡았다. 음식으로 먼저 인연을 맺은 도시 볼로냐를 처음 간 때는 2008년 1월이었다. 1997년 초에 로마 여행을 한 것에 비하면 꽤 늦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여행 수필집 <먼 북소리>에서 “피렌체는 관광객을 많이 상대해 닳고 닳은 구석이 있다. 로마는 불친절하고, 밀라노는 상점이 너무 많아 몸이 파김치가 된다” 라고 쓰면서 이탈리아의 주요 도시를 비교했다. 볼로냐는 하루키의 비교 대상에 끼지 못했고 그저 며칠 쉬어간 도시였다. 그의 수필집을 읽은 것은 불과 몇 년 전이었지만 그의 도시 묘사에 많은 부분을 공감한다. 내가 그의 책에 한 문장 첨언(添言)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볼로냐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볼썽사나운 모습에 눈을 감지도 않고, 천천히 걷다가 떠나도 기억에 남는 도시다”

  볼로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있는 도시다. 볼로냐 대학은 1088년에 개교를 했다는 것으로도 놀라움을 주지만 기호학의 거두(巨頭) ‘움베리 토 에코(Umberto Eco)’가 교수로 있는 대학이라서 더 유명하다.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이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에 비해 젊어 보였던 것이 나만의 느낌은 아닐 듯싶다. 도심에 있는 광장 피아 자 마조레(Piazza Maggiore) 주변에 있는 카페에도 이상하리만치 젊은이들이 많았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젊은이들이 많은 도시는 그냥 걷기만 해도 기운이 나는 것 같다. 볼로냐에 사는 친구를 만나 원조 볼로냐 스파게티와 리소토를 주문했다. 음식을 가져다주는 사람도 역시 예상대로 젊은 사람이었다. 젊은이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주고 있는지 훌륭한 맛이었지만 가격은 착했다.

  꼭 어디를 가서 무엇을 보았다고 ‘리스트 업’하지 않아도 되는 도시 볼로냐. 인지도보다는 실력과 실속으로 말하는 이 도시에서 이탈리아 여행의 여정을 다시 세웠다. 관광객을 거부하는 이탈리아 북동부의 어떤 도시에 비하면 볼로냐는 이탈리아 북부를 빛내는 보석이다.

 

볼로냐의 마조레 광장은 언제나 길거리 공연으로 풍성하다.
볼로냐의 마조레 광장은 언제나 길거리 공연으로 풍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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