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배우 캐스팅 인종차별 논란 일어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 예고편의 한 장면이다

  지난달 25일(화) 한국인 배우 수현이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이하 신비한 동물사전2)’에서 ‘내기니’ 역할로 출연한다고 밝혀져 논란이 일었다. 신비한 동물사전2는 해리포터 시리즈(이하 해리포터)의 스핀오프(원작에서 파생된 작품) 영화 ‘신비한 동물사전(2016)’의 속편이다. 수현이 맡은 역할은 해리포터에서 주인공과 대립하는 악역인 ‘볼드모트’의 애완 뱀이자 호크룩스(볼드모트의 영혼 일부를 담은 대상)다. 수현이 신비한 동물사전2에 출연한다는 사실은 지난해 7월부터 알려져 있었으나, 역할이 공개된 것은 지난달 25일(화) 예고편이 공개되면서다. 예고편에서 서커스 단원인 수현은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뱀으로 변신한다.

  수현의 역할 공개 이후 SNS를 중심으로 내기니 캐스팅이 인종차별적이라는 의견이 제기됐다. 아시아 여성을 백인 남성의 순종적인 소유물로 그려 백인중심주의적인 시선을 담아냈다는 점 때문이다. 또한 신비로운 존재로 여겨지는 말레딕투스(저주를 받아 결국에는 동물로 변하게 되는 사람)에 동양인 여성을 캐스팅한 것은 서양에서 동양에 가지고 있는 신비롭다는 편견에 기초했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의 문학평론가 에드워드 사이드가 쓴 ‘오리엔탈리즘’에서는 서양이 동양을 대상화(주체성이 없는 도구적 대상으로 보는 것)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한다. 대상화에는 흔히 편견으로 알려진 열등한 국가로 취급하는 것도 있지만, 낯설고 신비로운 대상으로 보는 것도 해당된다. 이에 조앤 K. 롤링 작가는 개인 트위터 계정을 통해 “내기니는 인도네시아 신화에서 유래했으며, 인도네시아에는 자바인과 중국인 등을 비롯해 수백 종류의 인종이 사는 곳”이라고 설명하며 인종차별적인 캐스팅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 해명 또한 인도네시아의 신을 차용하며 한국인 배우를 캐스팅해 모든 동양인을 동일한 존재로 보는 시선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신비한 동물사전2의 인종차별 문제가 더욱 불거진 것은 그동안 해리포터가 꾸준히 백인 중심 캐스팅으로 비판의 대상이 돼왔기 때문이다. 롤링은 해리포터에서 ‘머글(마법사가 아닌 인간)’과 ‘집요정(집안일을 돕는 종족)’에 대한 차별을 다뤄 인종차별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왔으나, 해리포터 영화 첫 제작 당시 모든 주인공은 영국인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해리포터 전편에서 비중 있게 등장하는 동양인은 ‘초 챙’ 한 명뿐인데, 이 이름 또한 서양인이 동양인을 비하하는 의미로 사용하는 ‘칭챙총’에서 따온 것이라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반면 일부는 롤링이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신비한 동물사전2에서 동양인 배우를 캐스팅한 것 같다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간 서양 영화에서는 동양권 국가와 관련된 다양한 인종차별 문제가 일어왔다.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2013)’에서는 동양인 역할을 맡은 서양 배우들이 분장을 통해 가늘고 찢어진 눈을 만들었다. 이는 동양인의 생김새에 대한 전형적인 편견에서 비롯됐다는 논란이 일었다. 기존 창작물에서 백인이 아니었던 캐릭터에 백인 배우를 섭외하는 ‘화이트 워싱’은 일종의 관행으로 자리 잡아 왔다. ‘닥터 스트레인지(2016)’에서는 티베트인 신비주의자 에이션트 원 역할을 백인 배우인 틸다 스윈튼이 맡아 논란이 됐고,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을 각색한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2017)’에서는 스칼렛 요한슨이 일본인 소령 역할을 맡았다. 이외에도 ‘디 인터뷰(2014)’, ‘월드워Z(2013)’ 등 동양권 국가를 후진국으로, 동양인 배우를 악역으로 묘사한 영화는 다수 찾을 수 있다.

  한편 서양인 배우만 기용했던 과거와 달리 동양인 배우가 캐스팅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고무적인 변화라는 의견도 있다. 수현은 “내기니의 또 다른 면을 보는 것은 매우 재미있을 것”이라며 “내기니를 볼드모트의 호크룩스로만 봤겠지만 사실은 살기 원하는 약한 여성이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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