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족이 늘고 있다. 집에서 굳이 어딘가로 나가지 않고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을 만큼 기술이 발전했기에 그러한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공상과학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제자리에서 대부분의 여가생활을 즐기고 식사를 하고 잠을 잘 수도 있는 미래의 모습이 보인다. 홈족은 단순히 트렌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래 인간의 표준적인 형태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긍정적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의 운동량이 줄어든다는 것이며, 동시에 사람들 간의 교류도 줄어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영화를 보기 위해 더 이상 누군가와 함께할 필요가 없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도 곧 사라질지 모르겠다.  


  더불어 인간은 무언가에 적응한다면 그것에 크게 의존할 수도 있다. 최근에도 그러한 의존은 적잖이 볼 수 있다. 가령 청년세대들만 보아도 길을 찾기 위해, 혹은 누군가에게 연락하기 위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10년 전만 해도 중요한 전화번호는 줄줄이 외우고 다녔으며 길도 종이 지도나 약도를 보며 찾아가곤 했는데, 이러한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다. 더 아랫세대인 유소년층들의 경우 더욱 그렇다. 육아에 관련된 이슈 중 항상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스마트폰 중독 문제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러한 의존 자체가 아니라 그렇게 의존함으로써 인간 스스로 무언가를 하려는 의지와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기술과 반비례 관계인 것처럼 퇴화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진보된 기술이나 편리한 세상에서 멀어지자는 얘기는 아니다. 단지 우리가 그것을 이용하고 있는지 그것에 지배당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자는 얘기다. 말에서 떨어질까 무서워 말을 타지 못하는 장수는 없다. 단지 말을 잘 길들이는 법을 연습해야 할 뿐이다.


  이에 정부 입장에서의 대책이 필요하다. 진보되는 기술을 사람들의 삶에 잘 녹아들게 하면서도 그것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게끔 만드는 방법이 말이다. 그리고 당연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용자들의 경계적인 태도다. 편리함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편리함을 이용할 줄 아는 우리 인간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