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로 구성된 브레멘 음악대의 동상.당나귀 앞발이 변색되어 있는 것이 재미있다.
동물로 구성된 브레멘 음악대의 동상.당나귀 앞발이 변색되어 있는 것이 재미있다.

  당나귀와 개, 고양이와 닭이 도시의 음악대가 되기 위해 여행길을 떠나는 동화 <브레멘 음악대(Die Bremer Stadtmusikanten>는 어렸을 때 한번쯤은 읽은 적이 있을 것이다. 동물을 의인화하여 많은 재미를 주는 작품이라고 여겨지지만 사실 작가인 ‘그림 형제(Brüder Grimm)’는 주인에게 충성을 바쳐 일하다가 이용가치가 없어져 버려진 사람들을 표현하고자 했다.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하층계급의 애환을 동물을 통해 풍자했던 것이다. 그러나 동물이 등장하는 만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뮤지컬 버전에는 해학적인 대사들로만 가득 차 있다. 함부르크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면서 도시의 이름으로 시작하는 문학 작품을 생각해 봤지만 그다지 떠오르는 이름이 없었다. 프랑크푸르트, 함부르크, 라이프치히 같은 ‘독일어스러운’ 이름의 도시를 다니다가 ‘브레멘’이라는 다분히 부드러운 이름을 가진 도시에 오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여행의 피곤함을 달래는 ‘상냥한 바람’마저 불어왔다.  


  브레멘은 브레멘 주(州)의 주도이다. 브레멘 주는 독일에서 가장 작은 주인데 주 안에 있는 도시가 브레멘과 브레머하펜(Bremerhaven) 두 곳 밖에 없다. 브레머하펜은 ‘브레멘의 항구’라는 뜻인데, 그래서인지 독일 사람들은 브레멘을 하나의 도시면서 하나의 주라고 말한다. 뮌헨이 있는 바이에른 주나 브레멘 주를 감싸고 있는 니더작센 주에 비하면 그 크기가 50분의 1도 안되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레멘은 큰 의미가 있는 도시다. 독일 민중을 선동하여 전쟁의 광풍(狂風)으로 밀어 넣었던 아돌프 히틀러는 여러 도시를 돌며 순회 연설을 하였는데, 브레멘은 들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브레멘 사람들의 반골(反骨)기질을 익히 알고 있어서 열광적인 지지를 얻어낼 수 없다는 것을 미리 간파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림 형제는 브레멘의 저항정신을 알고 수많은 독일의 도시 중에 브레멘이라는 도시를 작품의 제목으로 선정하였던 것일까. 정말 그러한 것인지 독일어 문학을 전공하시는 선생님께 물어봐야 할 것 같다. 


  브레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는 단연 브레멘 음악대의 동상이다. 시청사 바로 옆에 위치한 동상은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핫 스팟’이다. 특히 네 마리의 동물 중 가장 아래에 있는 당나귀의 앞발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어서 그런지 당나귀의 앞발은 관광객들의 수많은 ‘터치’로 광이 날 정도로 변색되어 있다. 이 정도 되면 ‘No Touch’라는 푯말이 세워질 법도 한데 그런 푯말은 어디에도 없다. 개, 고양이, 닭을 위에 태우고 있는 당나귀는 가장 고생을 많이 하는 민초(民草) 중의 민초가 아닐까 싶다. 거대한 시청사가 바로 옆에 있음에도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동물 음악대의 동상이라는 것이 새삼 재미있었다. ‘브랜드’란 바로 이런 것인 듯싶다. 제일 먼저 생각나고 제일 먼저 집어 드는 것이 브랜드일 것이다. 13세기에 지어진 페트리 대성당(St. Petri Dom)이 지척의 거리에 있는데도 함부르크에서 이 도시로 온 이유가 동화 속의 동물 때문이었다니. 


  브레멘은 목조 건물과 좁은 골목길이 특히 많아 더 ‘동화’스럽다. 한자(Hansa)동맹의 주요 거점 도시라는 교과서적인 설명보다 동화 속의 메타포(Metaphor)가 나에게 더 어필했던 이유는 독재자도 꺼려했던 민초들의 저항정신 때문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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