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썰

 

  “의병이 되고 싶니, 친일파가 되고 싶니?” <미스터 션샤인>이라는 드라마가 끝난 뒤에 어느 엄마가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저학년인 자녀에게 물었다. 그 엄마는 의병들의 삶이 얼마나 고생스러웠고, 친일파는 얼마나 오랫동안 벌 받지 않고 떵떵거리면서 살았는지를 말해 주어 아이들의 고민을 더 깊게 했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대답을 할까? 한참 고민을 하던 한 아이가 이렇게 대답했다. “난 의사가 될래” 넉넉하고 편하게 살면서도 위험 부담이 없는, 나름 영리한 대답을 찾아내었다. 하지만 그 답은 선택지에는 없다.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이 질문을 꼰대가 던졌다고 가정해 보자. 학생들도 나름대로 무엇이 최선의 선택일지를 고민할 것이다. 대담하게도 “나는 친일파가 되겠다”라고 말할 학생도 나올 것이다. 의롭지 못한 욕망의 표출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진 시대이니까. 하지만 그런 상황이 오면 오히려 꼰대가 부끄러워진다. 

  혹시 내면적으로 그런 갈등을 겪는다면 그건 솔직한 것이다. 사실 의병의 길의 선택은 “하고 싶어서” 하는 선택이 결코 아니다. 누가 사서 고생하려 하겠는가? 누구든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원하지 않겠는가? 누군들 하고 싶은 사랑이 없겠는가?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이라고 다 해서는 안 되고, 하고 싶지 않아도 피할 수 없는 일이 있다(“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조심히 읽어주기 바란다).

  문제는 선택지에 있지 않고, 그런 선택지만을 남겨 놓은 상황에 있다. <미스터 션샤인>이 보여준 상황에서 친일파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비루한 일인지가 분명하고, 힘들지만 의병이 되는 길은 얼마나 당당한지가 분명하다. 우리는 항상 당당한 선택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분명한 선을 그어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역사의 시간에서 훨씬 뒷편에 서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제대로 된 선택은 역사를 보는 눈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말이다. 시간을 길게 보는 안목이 있어야 삶에 대한 참된 선택과 평가를 할 수 있는 혜안(慧眼)이 생긴다. 

  지혜와 현명함이란 주어진 상황에서 가야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을 잘 구별하는 데서 나타난다. 이런 것은 국가적 상황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인 삶에서도, 쉽게 돈을 더 벌 수 있는 유혹의 길을 걷지 않고 힘들고 고생스런 길을 걷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아는 것은 현명한 일이다. 이런 삶을 가치 있게 볼 수 있는 눈이 참 행복을 볼 줄 아는 눈이다. 

  주위를 돌아보면 크게 두드러지지 않아도 자신의 일을 성실하게 살아내는 사람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극심한 불경기 속에서도 끙끙대며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눈여겨 보자. 손쉽지만 추한 길을 선택하지 않고 힘들지만 최선을 다하는 삶은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 그들에게 존경을 표하는 것은 친절할 뿐 아니라 지혜로운 일이다. 

  그런데 좀 다른 일에 관심을 쏟는 사람도 있다. “의병”이냐 “친일파”냐를 선택할 필요가 없도록 이 나라를 정의롭고 강한 시민의 나라로 만드는 데 노력하는 이가 있다. 추한 길을 쉽게 선택하지 않고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꿋꿋이 걸어가는 사람들이 불행해지지 않도록 나라의 시스템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이가 있다.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나쁜 사회적 가치들을 비판하고 새로운 물길을 만들어 내는 문화운동과 시민운동에 전심을 다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을 공적 행복이라 부른다. 지난 촛불혁명의 광장에 섰던 사람들이 맛보았던 바로 그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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