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투시합을 보면 체급별로 다른 양상을 볼 수 있다. 헤비급 선수들은 별로 움직이지 않다가 한두 번 펀치로 KO 시키는 반면, 경량급 선수들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계속 펀치를 날리곤 한다. 만일 권투시합의 게런티 지급기준을 펀치 횟수로 한다면 헤비급 선수들은 얼마 받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헤비급 선수의 펀치 한 방은 경량급 선수의 펀치 여러 방과 맞먹는 ‘규모의 경제’가 있기 때문에 펀치 횟수를 기준으로 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다소 과장이 있긴 하지만 경량급 권투선수의 게런티를 헤비급 선수의 펀치 횟수만큼만 주겠다는 것과 유사한 정책이 修身과 齊家보다 治國에 관심이 큰 어느 정치인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정책이 ‘세금을 돌 려준다’는 미명으로 포장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 국민도 솔깃하기 쉽다는 것이다. 내용인즉슨 100억 원을 넘는 건설공사, 즉 헤비급 선수의 단가산정에 사용되는 ‘표준시장단가’를 ‘표준품셈’을 적용하여 산정하는 100억 원 미만 공사, 즉 경량급 선수에게까지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표준품셈 방식은 품셈에서 제시한 수량(재료, 노무, 경비)에 단가를 곱하는 원가계산방식을 말하고, 표준시장단가는 공사 공종별로 시공결과 물의 입찰가격, 계약가격 및 실제 시공가격을 조사하여 만들어지는 산정방식을 말한다. 표준품셈 방식은 펀치 횟수를 기준으로 게런티를 주겠다는 것이고 표준시장단가는 한 방이 있는 선수가 거둔 전적을 기준으로 지급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렇듯 경량급 선수와 헤비급 선수 각자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지급하던 게런티를 경량급 선수에게 불리한 헤비급 선수 방식으로 통일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줄인 비용(사실은 경량급 선수에게서 뺏은 게런티)을 경량급 권투선수 육성에 쓰거나 관중들의 입장료 지원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동네 주민들 야유회 비용이나 회식비로 쓰겠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표준품셈보다는 표준시장가격이 다소 낮게 산정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표준시장가격이 표준품셈보다 낮은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산정방식이 우월해서가 아니라 ‘규모의 경제’가 있는 대규모 공사를 기준으로 산정되었기 때문이다. 산정방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방식을 적용한 대상이 무엇이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공사단가를 낮출 수 있는지와 관련 하여 가격산정방식은 허위변수이다. 공사의 단가를 결정짓는 것은 공사의 규모이기 때문이다.

  최근들어 사회적 가치(social value)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불합리한 게임의 룰을 들이밀어 절감한 비용을 공공이 재분배하는 것과, 업역에 맞는 적절한 대가 지급을 통해 민간이 임금 형태로 분배하는 것 중에 어느 방식이 더 사 회적 가치를 높일 수 있을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국민들에게 지지를 잃은 건설업계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당한 주장을 해도 집단이기주의 세력으로 매도당하는 현실은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저질스러운 자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라고 한 플라톤의 혜안과 ‘모든 국가는 그에 걸맞은 정부를 가진다’라고 한 조제프 드 메스트르(Joseph de Maistre)의 일갈이 21세기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깊은 울림을 갖는다는 것은 모두가 반성해야 할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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