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육이란 말이 학대의 핑계가 돼선 안 된다
훈육이란 말이 학대의 핑계가 돼선 안 된다
  • 홍영민 기자
  • 승인 2018.11.05 00:00
  • 호수 12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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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마저 폭력의 공간이라면 이 세상에서 안전한 곳은 없다. 이런 말을 듣는다면 이에 가장 공감되는 이는 누구일까? 폭력적인 가정에서 유년 및 소년기를 보낸 이들일 거란 생각이 든다. 가정은 우리들에게 ‘1차 집단’이라 규정될 정도로 기본적인 공간이며, 안식처이기에 그곳에서의 폭력은 모든 사람들에게 더욱 견디기 힘들고 괴로운 것이겠지만 특히 스스로 안식할 곳을 찾을 수 없어 가정에 돌아가야만 하는 어린 아이들에게 더욱 치명적이다.

  
  특히 가정 내에서 어린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학대는 자칫 ‘훈육’이라 여겨질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학대라고 특정하거나, 특정하더라도 처벌하기 어렵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훈육이란 이름으로 폭력이 정당화되는 것이 아직도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시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들도 다른 누구와 마찬가지로 인격과 주관, 권리가 있는데 많은 부모들은 교육이란 핑계를 대며 그것을 묵살한다.


  더욱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아이들이 사랑과 교육의 방식을 부모에게 배운다는 점이다. 학대하는 부모에게서 자란 아이가 별 탈 없이 자라더라도 그 아이가 미래에 고스란히 아동 학대 가해자가 될 수 있단 것이다. 학대의 악순환이다.


  이때, 학대란 수직적 관계를 전제하고 있단 것에 주목하고 싶다. 수평적 관계에 있는 이들이 서로에게 가한 폭력을 학대라고 부르진 않는다.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를 먹여 살림과 동시에 훈육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훈육할 의무가 수직적 관계 형성의 근거가 되진 않는다. 그 어떤 인간도 자신의 위에 누군가를 세우고 그에 굴복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정에서 그러한 관계를 만든다면 아이들의 안식처가 얼마나 숨 막히는 공간이 되겠는가?


  다른 가정의 아동 학대를 인식하는 시선 역시 바뀌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이를 외부에서 훈육이라 생각하고 지나치기 때문에 아이들이 더욱 고통 받게 되는 것이다.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있는 사이라면 서로의 삶에 간섭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자식이 부모에게든 아니면 부모가 자식에게든 마찬가지다. 그 간섭이 모든 가정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길 바란다. 아동 학대를 빠르게 근절해야만 다음 세대로 이어질 폭력까지 저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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